[기자의 눈] 한국 ‘나이주의’의 딜레마

일본여성언론 <페민>을 방문하고

윤정은 | 기사입력 2007/04/06 [06:31]

[기자의 눈] 한국 ‘나이주의’의 딜레마

일본여성언론 <페민>을 방문하고

윤정은 | 입력 : 2007/04/06 [06:31]

최근에 일본에서 여성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언론사 <페민>을 방문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우리보다 20~30년 연배의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어른들이 잠시 젊은이들 사이에 끼여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그들의 자리에서 일하느라 분주했다. 물론 그 옆으로 우리 연배거나, 혹은 더 어리게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20대와 50대가 공존하는 문화

나이를 막론하고 한 자리에서 함께 일하는 모습, 이것이 일본 여성언론 <페민> 사무실 풍경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상석에,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그들 옆에 기대어 모여있는 모습이 아니라, 각기 자신의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돌렸고, 자리는 나이에 따라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들은 것처럼, 일본에선 젊은층들의 참여가 부진해 한국에 비해 장년 노년층의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는 편이라서 그런 조합이 이루어진 것일까.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마치고, 우린 <페민> 사람들에게 세대간 갈등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있다”라고 답변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나이에 따른 것이기 보다는 ‘운영진’과 ‘실무진’에서 오는 조직의 구조적 갈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사실은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들간 다양한 연령 구성으로 인한 갈등이나 불편함이 없는지 궁금했던 건데, 몇 번의 미팅을 통해 관찰한 결과, 같이 일하는 기자들 사이에는 큰 갈등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보다는 같은 연령대라고 하더라도 운영진에 속하느냐, 실무를 담당하는 편집부 기자냐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하고 있었다. 현재의 경험과 노동하고 있는 내용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모양이었다.

<페민> 기자들의 연령 스펙트럼을 보자면 2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 혹은 60대까지 다양했다. 다음날 월드피스나우 재팬 주최의 평화집회에 우리를 인도한 페민 기자들은 50대를 훌쩍 넘은 두 사람이었다. 집회에 함께 참여해 거리 행진을 거쳐 차를 마시며 평화운동에 대한 토론을 벌이면서도, 그들과 나이에서 오는 차이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다른 사회 문화적인 차이와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가 필요할 뿐이었다.

어쨌든 오십을 훌쩍 넘은 나이에 기자로서 무거운 가방을 메고도, 많이 걷고, 얘기하고, 현장을 찾아가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적으로도 건강할뿐 아니라 세심한 신경을 쓰며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도 심부름을 한다”

“당신들은 어떻게 그 오랜 시간 동안(약 60년의 역사이다) 보수화 되지 않고,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는가?”

첫날 만난 지 얼마 안되어 서로의 역사와 활동을 소개할 때 던진 질문이었다. 페민에서 약 20년의 경력과 데스크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 옆에 앉아있던 젊은 기자가 다른 기자들을 둘러보며, “우리가 보수화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반대로 질문을 던졌다.

그 모습에 다시금 놀랐다. 처음에는 나이 차가 큰 인적 구성에 놀랐고, 이번에는 기탄없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의례를 차리는 자리에서 한국에선 연장자가 먼저 말하고, 나이 어린 사람이 덧붙이든가 혹은 의견이 다를 때는 입을 다물고 있거나 다른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었으니 말이다.

<페민>의 20대 기자와 50대 기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한국의 언론, 또는 시민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페민>의 기자들은 ‘조직의 대표도 심부름을 한다’는 말로 조직 안의 수평적인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한 노력이 <페민>이 보수화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라는 말도 덧붙였다. <페민> 외에도 6개의 시민단체와 노조 등을 방문했는데, 역시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왔던 나이 서열과 위계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일본에 비해 탄탄하고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한국의 언론이나 시민단체 혹은 운동조직에서 50대, 60대 활동가들은 대표급 자리이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30대, 40대 ‘중견급’ 활동가들은 대표급의 ‘어른’들이 자리에서 물러나 주어야 조직 내에서 자신들의 뜻을 펼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선 공적인 관계에서 나이주의가 더 심한 듯 하다. 어떤 조직에서든 나이가 보다 많은 사람에 대해서는 나이에 따른 대우를 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이에는 논쟁이 성립하지 않는다. 나이 어린 사람이 연장자가 가진 생각에 이견을 표출하는 것은 ‘댓거리’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20, 30살 차이가 나는 (부모 자식 뻘의) 공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논쟁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적이 아닌 이상, 같은 조직 안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논쟁 구도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지도 모른다. 만약 어느 모임에 갔는데 자기보다 나이가 열살, 스물살, 서른살이 많은 사람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고 하면‘내가 낄 자리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잠자코 있거나, ‘어른’들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거나, “예, 예” 할 거 아니라면 그 자리에 갈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연령대가 다른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도, 연장자순으로 직위를 배정하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는 노인을 공경한다?

공적으로 나이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이에 따른 제도와 문화로 인해 세대간 의사소통의 문제와 위계적인 질서를 만드는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이 많은 여성이 고용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일 것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어 참 좋다’라고 자화자찬하는 소리를 몇번 들었다. 문제는 한국은 그렇게 노인을 공경하면서 노인에게 조직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 혹은 일자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곳곳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임금노동을 하는 노인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젊은 여성을 고용했으면 했지 노인여성에게 절대 그런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노인여성을 기자로 채용할 일은 더욱 없을 것이다.

어쩌면 부장이나, 편집장도 아니고, 평기자로 20년간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승진이나 진급을 못하고 저 나이에 저렇게 있나?’ 불쌍하게 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명예퇴직을 하지’ 라는 시선과 압력으로 그 여성의 일자리를 빼앗으려 들지도 모르겠다.

노인을 공경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론 함께 일할 권리를 빼앗는 것, 이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나이주의로 인한 딜레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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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지 2007/04/09 [16:01] 수정 | 삭제
  • 제가 어떤 여성단체에 갔었을 땐데요,
    나이가 40,50대 되어보이는 활동가들에게 20대 활동가가 별칭을 그냥 부르더군요.
    "하늘, 이게 어때?"
    그래서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그 4,50대 활동가을 불쌍하다고 했데요.ㅋ

    저도 어색했는데, 나이주의 라는 차별을 없애기위해 유럽에서는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더라구요.

    일본이 보여주는 모습 인상적이네요.
    "소 데스까?ㅋㅋ 쏘 데스네~"
  • 나이라는 것 2007/04/06 [15:55] 수정 | 삭제
  • 여러가지 측면에서 나이주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대표급이나 관리자급, 선배급에 있는 연장자들, 나이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동료'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에도 문제가 있죠. 선배로서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일을 진행해야할 때에도 '나를 따라와라.'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런 경우에는 나이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경우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이든 것이 권력이 아니라, 나이든 것이 핸디캡이 되어 사회적 관계나 임금노동할 권리에서 배제당하는 것도 현실이구요.

    '나이'에 따라 사람을 대하고 관계맺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을 잣대로 권력을 휘두르거나 또는 소외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참 어려운 일이죠.
  • with 2007/04/06 [15:10] 수정 | 삭제
  • 일자리 문제도 그렇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노인은 집에서 애를 보거나 공원에서 시간을 때워야 한다고 모델링을 하고 있으니까요.

    세대별 분절에 대해서 안타깝지만 별 도리가 없는 것 같군요. 이를 극복할 대안적인 모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JY 2007/04/06 [10:11] 수정 | 삭제
  •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일본과 한국은 한 50년 정도 시차가 난다고 생각해요.

    물론 뭘 어떻게 비교하는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요..

    흔히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일본과 한국이 다를 게 뭐가 있느냐
    또는 한국이 뒤떨어진다고는 할 수 없다고들 하는데

    굳이 선진과 후진이라는 시각에서가 아니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어쨌든 차이가 많이 나고
    사고나 시각에서 차이가 나는 것 또한 사실이에요.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가 나이주의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기 보다도
    과거 일본도 지나쳐온 그 과정을 열심히 지나고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윤정은님이 50대 60대가 되면
    그 때는 한국도 지금의 일본처럼 젊은 사람과
    중장년층이 섞여서 일하는 그런 사회가 될거예요.

    그러기 위한 발판을 바로 윤정은님 같은 분들이 만들어가야하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