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육군으로 군생활을 마친 한 예비역 병장의 군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강성주님은 군 경험을 돌아보며 자신의 이야기가 공유되어 우리 사회의 징병제와 군대, 그리고 군사주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글을 기고해주었습니다. -편집자 주>
“자, 이제 좋은 데에 가야지.” 나의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던 환송회. 술자리가 끝나자 학교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성이었고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이었다. 좋은 데라니, 그게 뭘까. 알고 보니 그 말은 이른바 ‘총각 딱지를 떼러 가자’는 말이었다. 군대 가기 전, 성관계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 치러야 하는 의식, 총각 딱지 떼기. 그것은 일종의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참고로 나는 딱지를 떼러 가지 않았다. 그 말을 처음 꺼냈던 선배와 몇몇 남성들이 나 대신 ‘좋은 데’에 갔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군에 막 입대했을 무렵, 성관계 경험이 있는 남성과 그렇지 못한 남성 사이에는 일종의 위계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 총각 딱지를 떼고 온 남성들은 그걸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반면 딱지를 계속 붙이고 다녔던 이들은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뭔가 부족한 남성으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것은 소위 “남성성”에 관한 문제였다. 아직까지 총각인 사람은 남자답지 못한 사람, 즉 남성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따라서 총각 딱지 떼기란, 결핍된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해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도구화 하는 의식이다. 다시 말해, ‘총각’ 딱지를 떼고 ‘남자’ 딱지를 얻는 ‘남자 만들기 프로젝트’다. “여자들 불러서 놀자” “다음에는 꼭 여자들 불러서 같이 놀자.”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사연은 이렇다. 몇몇 선임병들과 외출했을 때였다. 단체로 노래방에 갔다. 그런데 방에 들어갔다 바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한 선임병이 여자(노래방 도우미)를 부르기로 했는데, 뭔가 사정이 안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바로 그 노래방을 나왔고, 우리 일행은 대신 비디오방에 갔다. 그곳에서 ‘성인용’ 만화영화를 봤다. 그렇게 비디오방을 나오면서 어떤 선임병이 나를 보며 말했던 것이다. “다음에는 꼭 여자들 불러서 같이 놀자.” 노래방에서 돈을 주고 여자들을 불러 성적인 접대를 받는 것. 그것은 넓은 의미의 ‘성구매’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나는 그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별다른 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일은 성구매를 하려 했던 것이다. 여성들은 남성성으로 한껏 ‘무장된’ 군인들에 의해 성적 대상물로 취급될 가능성이 많다. 특히 그런 행위들은 군대라는 격리된 공간에서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되기 쉽다. 외출, 외박, 휴가를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누구와 놀았다, 누구를 ‘따먹었다’는 무용담(?)을 자랑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도록 강요 당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보통 내무실 사람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예컨대, 선임병에 의해 후임병이 앞으로 불려 나오고, 선임병이 “너 여자랑 자고 왔지?”라는 질문을 던지면, 후임병의 ‘보고’가 이어지는 형태였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당시 부대에 있었던 여성 군무원들은 내무실 사람들에 의해 성적 농담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선임병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그에 뜻을 같이 하는 후임병들이 추임새를 넣는 형태였다. 이 모든 것이 남성성 연대를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다. 여성에게만 거수경례를 했던 이유 군대에는 위병소라는 곳이 있다. 보통 부대의 정문을 말하는데, 민간인이 면회를 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게 언제였을까. 내가 어느 정도 계급이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후임병과 위병소 근무를 하게 됐다. 주말이었는데 어떤 민간인이 위병소로 다가왔다. 누군가를 면회하러 온 것 같았는데, 보니까 여성이었다. 나는 총을 든 채로 그 여성 앞으로 살짝 다가섰다. 그리고 약간 위엄 있는 목소리로 거수경례를 하며 말했다. “충성!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을 굳이 적는 이유는, 그것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민간인을 대할 때 굳이 거수경례를 할 필요까진 없었다. 내 후임병도 내가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고 좀 의아해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했던가? 한마디로 말하면 과시하기 위해서 였다. 민간인, 게다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난 왠지 우쭐해지는 기분이었고, 그래서 괜히 한 번 폼을 잡고 싶었다. 만약 그 사람이 남성이었어도 내가 그랬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위병근무를 서면서 ‘남성’인 민간인에게 거수경례를 했던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남성들한테는 그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물을 뿐이었다. 상대가 여성일 경우에만 일부러 목소리를 가다듬고 절도 있는 모습으로 경례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의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랬음을 고백한다. 왜곡된 여성 이미지를 집단 유통시켜 내 경험에 따르면, 이처럼 군대에서 여성은 성적 쾌락 내지 남성성 과시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리고 그것이 위험한 이유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형태로 학습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부대 장기자랑 시간에 거의 항상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의 경우도, 그러한 학습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불필요하게 다리를 드러내고 과장되게 가슴을 강조하는 모습. 그 모습에 관객은 휘파람을 불고 깔깔대기에 바쁘다. 철저히 이성애자 남성 군인의 시각에서 구성된, 왜곡된 여성의 이미지가 집단적으로 소비된다. 그 이미지는 집단적으로 유통되고, 나아가 여성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로 각인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집단학습’의 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도구화 되고 타자화 된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군대에서의 경험이 제대한 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순환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이 군대를 가기 전의 남성에게 자신의 문화를 전수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수 받은 남성은 군대에 가서 그 문화를 더 깊이 체험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에는 자신이 체험한 문화를 또 다른 남성에게 전수해준다. 나에게 총각 딱지를 떼러 가자고 했던 예비역 선배의 경우가 그러했다. 직장의 그릇된 회식문화나 일상화된 남성들의 성구매 습관도 그런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여성을 ‘소비’하는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남자를 ‘생산’하게 된다. ‘남자’ 만드는 공장으로서의 군대. 그런데 과연 그 ‘남자’는 어떤 모습인가. 그 ‘남자’의 의미를 돌아보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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