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여성 정체성 묻는 트린T민하전

<미디어극장 아이공> 개관 첫 기획

김이정민 | 기사입력 2007/05/21 [01:36]

아시아 여성 정체성 묻는 트린T민하전

<미디어극장 아이공> 개관 첫 기획

김이정민 | 입력 : 2007/05/21 [01:36]

대안영상, 문화운동을 펼쳐온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미디어극장 아이공>을 개관했다. 개관 첫 기획으로 마련한 것은 트린 T 민하(Trinh T. Minh-Ha) 특별전. 영화감독, 작가로 불리며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버클리(UC Berkeley) 교수이기도 한 트린 T 민하는 탈식민주의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실험하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1952년 베트남에서 태어난 감독은, 베트남과 미국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인 1970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의 작품은 결코 ‘수평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전 세계적 이동과 이주, 타자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보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서구 중심의 질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트린 T 민하는 끊임없이 제1세계/제3세계, 주체/타자의 이분법을 해체하는 공간을 실험한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나타나는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는, 분리되지도 완전히 겹치지도 않는 개인적 삶의 일기와 아시아 여성으로서의 질문, 비(非)백인여성, 여성 작가, 비(非)백인 작가라는 세 가지 정체성의 질문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이주의 흐름 속에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라는 도식으로는 모두 설명될 수 없는 아시아 내 국제이주와 여성들의 이동이 커다란 사회현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를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살고 있는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변화로 주목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즈음에 트린 T 민하의 작품이 어떤 동시대적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걸어올지 만나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기획전은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며,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igong.org)나 (02)-337-2870으로 문의할 수 있다.

주요 상영작 소개

세네갈 농촌 여성들의 삶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초기작 <재집합>(Reassemblage, 1982)은 문화를 위계적으로 인식하는 서구 중심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타자화된 재현 방식을 비판하는 문화기술지 같은 작품이다.

많이 알려져 있는 <그녀 이름은 베트남>(Surname Viet, Given Name Nam, 1989)은 베트남과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오히려 초기에는 베트남을 다룬 작품을 많이 만들지 않았다. ‘베트남 출신이기 때문에 베트남을 잘 안다’, ‘내부자의 시선이기에 진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진실이면서 동시에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나 문화를 특정 시공간에 고정시키는 인식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트린 T 민하는 외부자와 내부자의 경계를 쉽게 이분화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말할 수 있는 ‘자격’과 차이에 관한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1996년 선댄스 영화제 촬영상을 받은 <사랑의 동화>(A Tale of Love, 1995), 2004년 작 <밤의 여로>(Night Passage), 최근에 제작된 사진 영상 설치작품 <사막은 보고 있다>(The Desert is Watching, 2003), <사막의 몸>(Bodies of the Desert, 2005)까지 소개돼 트린 T 민하의 작품 궤적을 훑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기획전을 준비한 김연호 아이공 대표와의 인터뷰

-미디어극장 아이공의 개관을 축하한다.

“아이공 활동 9년 만의 결실이다. 여성주의, 비주류, 소수자. 이 세 가지가 대안극장 아이공의 키워드이다. 올해 기획전은 거의 내용이 구성되어 있고, 우리 극장의 성격과 맥을 같이 하는 단체나 행사에는 무료 대관도 할 예정이다. 트린 T 민하가 첫 기획전이다.”

-극장을 개관하면서 첫 기획전으로 트린 T 민하를 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여러 감독을 두고 많이 고민했다. 몇 가지 기준이 있었는데, 현재 활동하고 있는 감독, 아시아 여성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감독, 대안영상으로 자기만의 작품을 실험하는 감독, 이렇게 기준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몇 사람 안 남더라(웃음).

트린 T 민하는 끊임없이 자기만의 영상을 실험해 나가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지금 전 세계적 흐름과 함께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의 이동과 이주, 경계 넘기에 대해, 감독이 30여 년 정도 해온 작업과 생각에 대해 함께 나눠볼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지만 한국에서 기획전으로 소개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탈식민주의 영상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이자 학자이고, 또 최근에는 비판도 많이 받은 논쟁적인 감독이다. 이산(diaspora)은 트린 T 민하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그것을 개인적인 삶에 관한 일기나 철학적 물음과 병치시킨다. 형식도 실험 영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영상을 해체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 구도를 해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7월에 감독이 한국에 오는데 그 때 아이공에서도 강연이나 작은 특별전 자리를 만들려고 한다. 그 때 또 많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 덧붙여, 대안극장으로서 아이공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후원회원도 되어주시길 부탁한다(웃음).”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이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