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삼십 대 레즈비언으로 살며
라씨 | 입력 : 2007/06/18 [15:14]
어느덧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노친네’ 소리를 듣고 있는 삼십 대 중반이 되었다. 아, 내일 모레면 40인가 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새내기인 것만 같다.
나는 남들보다 한참 늦게, 서른한 살에 벽장 밖으로 나왔다. 나에게 벽장 밖의 세계는 신세계와 같았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레즈비언끼리 모여 만나고 웃고 춤추고 술 마시며, 즐거운 일도 있을 수 있다니. 그러나 초반의 신선함도 잠깐이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참여하는 커뮤니티에도, 레즈비언 바에도, 30대는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대 모임에 나가 보았지만 왠지 거기에서도 소외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커뮤니티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람들끼리 모이는, 커플 위주의 친목 모임이었다. 그 모임에 참여한 것은 정말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였는데, 어서 애인을 사귀어야 되지 않겠냐는 주위의 시선이 나를 더 외롭게 했다. 이 나이가 되도록 애인도 없다니 내가 무능력해 보이기도 했다.
바에 가서 다른 레즈비언들을 보면 너무나 어리고 즐겁게만 보였다. 그때 옛 친구 생각이 났다. 중학교 1학년, 동성애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어 트랜스젠더를 소개한 <선데이 서울>을 보며, “우리 이 다음에 돈 많이 모아서 꼭 수술 받자”며 서로를 위로하던 유일한 친구. 얘는 아직도 레즈비언으로 살고 있을까. 과연 결혼을 했을까.
그러던 차에 친구를 우연히 찾았다. 그런데 친구는 나처럼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고 외면하는 듯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얘가 아직도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느낄 수 있어서 만나자고 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친구에게는 오랫동안 서로 좋아하던 동료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정보도 없는 채로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있어서, 자신이 레즈비언인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조차 불편해 했다.
그 친구를 보고 있으니, 나의 20대 후반을 보고 있는 듯했다. ‘둘이서만 잘 살면 되지, 뭐’하고 생각하지만, 결국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상대를 떠나 보내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슬픔을 혼자서만 감당해야 했던…. 친구 역시, 결혼을 하려고 하는 동료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커뮤니티 가입을 권유하고 레즈비언 바에도 함께 가려고 했지만, 친구는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나는 서른한 살이 되어서야 늦게 커뮤니티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에 조금 편안하다. 하지만 이 친구 같은 사람들이 우리 세대 안에는 참 많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같은 여자를 좋아해서 고민하던 친구들은 모두 어떻게 살고 있을까, 결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혹 그 중에 누구라도 커뮤니티에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우리 세대는 컴퓨터에도 아주 익숙하지 않아 미니홈피를 통해서도 찾기 힘들다. 그런 친구들을 만나서 우리가 했던 고민들을 웃으며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는 우리 세대가 약간 ‘노땅’ 취급을 받지만, 사실 삼십 대면 한창 나이 아닌가. 노땅인 나이가 어디 있나.
힘들어하고 있을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벽장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십대부터 사십 대, 오십 대, 육십 대 다양한 연령층의 레즈비언들을 커뮤니티에서도, 바에서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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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 2010/01/05 [15:35] 수정 | 삭제
- 복주 2008/11/12 [20:03] 수정 | 삭제
- 이기 2007/07/08 [20:29]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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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2007/06/19 [05:37]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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