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지인으로부터 “노숙인이 될까 봐 두렵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다. 나는 원래 경제적인 감각이 둔한 편이어서, 그런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아무리 레즈비언이 먹고 살기 힘들다지만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에 풀칠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솔직히 예전에는 ‘돈, 돈’ 하는 사람들을 경박하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 켠으로 그들을 속물처럼 여기기며 조금은 경멸했는지도 모른다. 돈을 밝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돈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줄곧 넉넉지 못한 편에 속했는데, 그랬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저들은 가난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더 두려워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이나마 유예할 수 있었던 시기인 학생 시절을 벗어나, 생계가 온전히 내 몫이 되고 나니 지인에게서 들었던 말이 이젠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삶이 이러쿵저러쿵 해도 입에 풀칠하면서 다 살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풀칠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된 것이다.
때로는 딸기도 사먹고 가끔은 영화도 보고 싶은 내 순수한 욕구조차 현실적인 고민거리가 된다는 것이 서글프다. 나의 또 다른 지인은 나혜석의 생애를 공부하고 있는데 “행려병자로 죽어갔던 나혜석의 삶을 보니, 나의 미래는 어떨까 걱정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빈부 격차
그런데 얼마 전, 신기하고 충격적인 소문을 들었다. 부자만 가입할 수 있다는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이다. 믿기지가 않아서, 실제로 그 커뮤니티의 광고 글을 찾아보았다. 그런 곳은 정말로 있었다(!) 그곳은 가입 조건으로 직업과 연봉, 보유하고 있는 차의 종류를 쓰도록 하고 있었다. ‘돈 좀 있다 하는’ 레즈비언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들은 “그런 클럽들이 생긴지 꽤 됐다”고 말했다. 심지어 어떤 커뮤니티는 가입조건으로 키나 몸무게까지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또 다른 커뮤니티는 사는 곳이 ‘땅 값 비싼’ 부유한 동네여야만 가입이 된다고도 한다.
친구들은 이런 정보를 처음 접하는 내가 오히려 놀랍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며, 이렇게 집안 좋고 돈 있고 외모도 예쁜 사람들은 별도로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논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위 ‘귀족이반’, ‘A급 이반’이라고 불린다. 집안이 좋다는 것, 돈이 있다는 것, 외모가 예쁘다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부에서 이런 식의 구별 짓기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른다. 레즈비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레즈비언 커뮤니티도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레즈비언들도 ‘돈이 최고’라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경제수준이 달라도 우리는 친구일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귀족이반’ 클럽은 이러한 레즈비언 사이 빈부 문제가 극대화되어 표현된 것일 뿐이지, 사실 레즈비언 커뮤니티 곳곳에 빈부 문제가 걸려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예전에 커뮤니티가 주로 10대, 20대, 30대, 40대 등 나이 중심으로 나뉘어진 것에 비해, 레즈비언 커뮤니티가 분화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취미활동을 하는 카페, 자취생활을 하는 레즈비언들을 위한 클럽, 기독교인 레즈비언들의 카페 등 다양한 공간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커뮤니티가 ‘취향’ 중심으로 꾸려지게 되면서, 앞으로 점점 더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빈부 문제가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인을 즐기는 클럽, 전시회를 다니는 모임, 여행 모임, 심지어 거주하는 동네에 따른 모임들조차 빈부의 문제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아직은 나조차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떨까를 생각하면 우려가 생긴다.
예전에는 방 한 칸 세 들어 살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겠다. 여기저기 몸이 아파도 의료비를 생각하면 아찔해서 오히려 병원에 안 가게 될 때도 있다. 이런 내가 멀리 ‘귀족이반’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위화감이 들고 한편으로는 체념하게 되듯이, 다른 레즈비언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그나마 나는 고등교육을 마쳤고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니 조건이 좋은 편에 속하는 지도 모른다. “노숙인이 될까봐 두렵다”던 지인에게, “우리 다같이 모여 살기로 했지 않냐”고 했더니 “사람 나름일 것”이라고 답한다. 결국에는 경제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살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갓 20대 중반인 나와 내 친구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지금은 잘 그려지지 않는, 어두운 도화지 위의 미래. 그때 ‘잘 나가는 너’와 ‘비루한 나’, 혹은 그 반대의 조합으로도 우리가 친구일 수 있을까. 여전히 친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