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독립을 위한 소중한 지침서

일다에서 낸 책 <나, 독립한다>

미장이 | 기사입력 2007/11/08 [22:25]

당신의 독립을 위한 소중한 지침서

일다에서 낸 책 <나, 독립한다>

미장이 | 입력 : 2007/11/08 [22:25]

한때 독립은 나의 자존심을 은근히 세워주는 주제였다. 대학 때문에 스무 살부터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를 하며 산 나다. 경제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아무튼 대학이라는 당위성이 걸려있으니 집에서 말리지는 않았다.

사실 그 당위성 하나만을 믿었다. 대학이라는 '계급 상승'의 당위성으로 밀어붙이면 집에서도 아무 말 못할 것이라고. 고향은 답답하고 가족과도 떨어져서 살고 싶으니, 뭔가 다이나믹해보이는 서울에 보내주세요! 하고 솔직하게 말하면 당장 '생각 없는' 딸네미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대학'이라는 구실을 들이미는 것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올게요!”라고. (물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 되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좀 우울하다. 가족이라면, 물론 이상적인 가족의 경우이긴 하지만, 자기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어 보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왜 '미래의 수입'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걸까.

가족, 그리고 부모라는 존재는 지금의 세대와 생각도, 경험도 너무 달라 어떤 그럴듯한 당위성(돈이나 명예)을 가지고 설득할 대상이지, 함께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일원은 못 될 팔자인 모양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오래 같이 살아버린 걸. 지긋지긋하고 싫어서 지워버리고 싶지만, 이미 내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랄까.

일다에서 처음으로 낸 책 <나, 독립한다>를 읽고 난 뒤 바로 떠오른 생각은, 우리의 가족생활이란 건 '진득하리만큼' 구성원들을 힘들게 해서 그 흔적을 도장 찍듯 영혼에 남긴다는 것이다.

책을 쓴 8명의 여성들의 글을 읽다 보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라는 마음 속 깊이 단단히 품은 두 가지 의무감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건 가족 뒷바라지 하느라 자기 삶을 다 바치면서도 그런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는 데 익숙한, 안쓰럽지만 완고하리만큼 일그러진 그녀의 사고방식을 닮지 않겠다는 것일 테다.

하지만 엄마라는 대립 항이 정해져 버린 만큼, 엄마와 완전히 관계없이 살지는 못하겠지. '돈을 버는 경제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건, 가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부모들이 마법의 주문처럼 걸어버린 공식이기도 하다.

딸보다는 아들을 더 사랑하는 엄마, 가정폭력으로 두려움과 공포감을 심어주는 아버지… 이런 가족이라면 누구나 벗어나고 싶어 안달 날 것이다. 하지만 집을 떠났다고 만사 해결되는 건 아니다. 작고 초라하지만 아무튼 나만의 방을 구하고 짐을 정리하고 부엌에서 처음으로 밥을 지어 먹은 날, 그 날만큼은 정말로 뿌듯하다. 하지만 '나만의 방'이 가지는 환상이 깨어지는 과정을 거쳐야 정말 독립했다고 할 수 있다.

가사노동이라는 것은 만만찮은 짐이다. 매일 털어내도 사라지지 않는 먼지들하며(아직도 지저분한 방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가사노동이 몸에 배기 시작했다는 필자 희수님과 희선님이 존경스럽다) 시도 때도 없이 고장 나는 보일러에 가끔 출연하는 개미떼(내가 살던 집에서는 화장실에서 쥐도 나왔다)…

이 모든 걸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를 이해하고, 또 어머니의 그림자가 줄어드는 걸 느끼게 된다. 함께 사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다. 징글징글한 가족 관계가 남긴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는, 완전한 의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담 쌓고 지내기도 아닌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아는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 독립한다>에서 다루는 독립의 이야기는 스펙트럼이 넓다. 그냥 집에서 '탈출'한 이야기만 다루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꾸리고 싶어 독립을 선택한 장미님, 오래 전 헤어진 딸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그 딸을 잊기로 한 윤하님…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우리가 독립을 너무나 제한적으로 생각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이란, 물질적으로나 혈연으로 얽힌 관계에서 벗어나 그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의 독립을 경험하는 게 오히려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게 아닐까. 10년이면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서먹해지기 쉬운 시간인데, 하물며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갑자기 음모론 하나가 떠오른다. 독립을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경제적인 문제다. 지금처럼 여성들에게 취업의 문이 좁은 시대, 취업을 하더라도 정규직은 요원하며 짠 연봉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시대에서 독립은 정말 어렵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독립을 권장하지 않는 건 가족이라는 단위로 사람을 묶어두고 가능하면 자신들의 책임을 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 책의 여성들은 묵묵히, 성실하게, 적은 수입이라도 아끼고 버티는 법을 찾아서 살아간다. 돈을 벌어오라는 가족들의 주문을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는 수입’으로 바꾸어 소화해낸 것이다.

내 이야기로 잠시 돌아오자면, 나는 나의 은근한 자존심을 많이 지웠다. 가족과 함께 살면서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처지의 친구들일수록 독립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는 지금도, 서른이 다 되어가거나, 혹은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독립을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누구나 가족에게서 벗어난 삶을 꿈꾸는 것이다. 독립은, 삶이 다소 버겁고 힘들게 될지언정 그녀들을 더욱 강인하고 풍성한 정신의 세계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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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홍 2007/11/12 [15:47] 수정 | 삭제
  • 일다에서 냈다니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득찬 책이겠죠?
    오랜만에 책 사러 서점에 가야겠네요.
  • 똑순이 2007/11/10 [00:46] 수정 | 삭제
  • 드디어 오랜 숙원이? ^^
    책으로도 일다를 만나게 되어 기쁠 뿐입니다.
    일다에도 축하보내고요~
    독립 얘기들 좋아했는데 힘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 올리브 2007/11/09 [13:11] 수정 | 삭제
  • 꼭 읽어보고 싶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퍼감니다.
  • bbang 2007/11/09 [10:19] 수정 | 삭제
  • 희소식이구료.
    책도 재밌을 것 같은데, 먼발치에서 아는 분의 얘기도 있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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