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현이를 만났을 때, 그는 선물 받은 자전거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자전거에 이름을 붙이다니…. 자전거 타는 걸 정말 좋아하나 보군’ 하고 생각했다. 현이는 주로 퇴근 후 저녁에 한강변 달리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느끼다 보면, 어느 새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게 돼. 그게 참 좋아. 음 또. 알겠지만, 해진 후 한강변에서 바라보는 서울 야경도 무척 아름답잖아. 그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고.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어느 새 훌쩍 한두 시간이 흘러있어. 집에 돌아오면 차가운 날씨와는 상관없이 땀에 흠뻑 젖어 있기도 해. 그렇게 운동하고 난 뒤 흘리는 땀 냄새가 무척이나 좋아.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땀을 보면, 뭐랄까…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 활기찬 내 몸 안에서 에너지가 느껴지지. 이렇게 땀 흘리고 난 후엔 어느새 내 생각 중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는 것도 느껴져.”
이렇게 자전거에 대한 얘기로 현이의 ‘땀’ 얘기는 시작되었다. 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였고, 그 후에도 계속 운동과 관련된 길을 택했다.
체육교사의 꿈을 접기까지
“어렸을 때 육상부 활동을 했었어. 지금처럼 달릴 때 느껴지는 바람이 좋았었던 것 같아. 몸을 움직이고 난 후 기분도 좋았었던 것 같고.”
당시 육상부 활동을 할 때, 멀리뛰기로 구 대회에서 상도 받았었다며 피식 웃는다. 운동에 소질이 있었기에 운동선수가 되고 싶진 않았냐고 물었다. 현이는 자신의 작은 키 때문에 운동선수까진 힘들었으리라 생각했단다. 게다가 부모님도 반대하셨다고 했다.
“사실 운동선수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까지 유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정말 뛰어난 선수여야 하잖아. 소질도 있어야 하고, 물질적인 부분의 투자도 뒷받침되어야 하고, 엄청난 노력도 필요한 거니까. 부모님도 그런 점을 아셨으니까, 당연히 반대하셨던 거겠지.”
운동선수의 꿈을 접었다고 해서, 현이가 운동에 대한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현이는 사범대에 진학했고,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를 희망했다.
“난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운동하고, 땀 흘리는 게 너무 즐거웠어. 활기찬 나를 느끼는 것도 좋았지만, 다른 좋은 점도 많았거든. 땀 흘린 후엔 풀리지 않는 복잡한 생각까지 정리되곤 했지. 또 조금 껄끄러웠던 친구들과도 한 팀에서 팀 경기를 하고 나면 금새 가까워지는 것도 느껴졌어.”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현이와는 달리,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고 귀찮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땐(중, 고등학교 때) 운동장이 좁기도 좁았지만, 고작해야 체육시간에 하는 운동이라곤 발야구나 피구가 다잖아. 물론 그게 나쁘진 않았지만, 체육시간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많은데…. 지금 봐도 많이 안타까워. 좀 더 많은 체육 프로그램이 계발되고, 활용되면 많은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는 것의 기쁨을 알 수 있을 테니까.”
현이는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체육교사의 꿈을 접기 전까지,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체육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었단다. 대학에 가기 위해,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따야 하는 과목 점수로서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운동을 통해 변화하는 아이들을 보며
현이는 교사의 꿈을 접었지만, 지금도 땀 흘리는 일과 관련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한 땀을 통해 생기를 되찾도록 도움을 주는 직업이다. 현이의 직업은 병원에서 운동이 필요한 아픈 사람들에게 적절한 운동치료를 처방하고, 건강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운동처방사이다.
현이는 몸을 힘차게 움직이고, 그렇게 흘리는 땀이 자신에게 주는 유익함과 가치를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았어도 운동처방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면서 언제 보람을 느끼는지 물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많은 걸 느껴. 대개는 운동을 장기적이고 규칙적으로 함께 하거든.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고 뛰어 놀다 보면 대부분 밝아지고 명랑해지는 걸 느껴. 몸이 주는 느낌을 아이들 스스로 가장 잘 받아들이는 거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운동은 단순히 몸만 움직이는 기계적인 동작이 아니야. 움직임과 어울리는 음악도 틀고, 소리도 지르고, 주위 도구도 함께 이용하니까. 이를 테면 환경과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것이랄까…. 그러니 몸을 움직이는 게 재미가 있고, 또 운동 후에도 기분이 좋으니까 아이들이 변하는 거지.”
그의 운동처방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어린 아이들 경우는 질서의식이나 선악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경우도 있어. 그런데 함께 운동하고 뛰어 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식이 싹트게 돼.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이해가 저절로 생기는 셈이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엔 가족들에게 프로그램을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거든. 그래서 가족들에게 주의점이나 운동방법 같은 걸 알려주기도 해. 얼마 전엔 자폐를 앓고 있는 아이를 만났었는데, 처음엔 그룹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게 어려운 상태였거든. 그런데 맨투맨으로 운동을 지속하면서 상태가 점점 호전되더니, 나중엔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게 되었지. 그럴 땐 정말 보람을 많이 느껴. 나를 통해 아이들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걸 느끼니까.”
요즘은 비만을 앓고 있는 성인들이 병원을 자주 찾는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단다.
“비만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비만 자체보다, 약물에 의존해서 비만을 치료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더 문제인 것 같아. 약물이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게으름 때문에 혹은 바쁘다는 이유로 약물에 의존하거든. 그래서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무조건 살 잘 빼는 약만 찾는 거지. 하루 20~30분 움직이는 것만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데도 말이야.”
땀방울의 작용을 연구할 거야
현이는 운동할 때 숨차고, 땀나고, 힘든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몸의 움직임을 느끼고, 움직인 후 흘리는 땀의 상쾌함과 이후 자신의 건강해지는 마음과 몸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또한 무리해서 하는 운동이 아닌, 자신에게 적절한 운동방법을 찾게 되면, 누구에게나 운동이 즐거워질 것이라고 했다.
이를 테면, 무릎이 아픈 노인들이 걷기가 좋다고 해서 무리한 걷기를 많이 하면 무릎연골이 닳아져서 심하면 수술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에게 적절하지 않은 운동을 택한 경우이다. 현이는 이런 상황을 겪지 않도록 자신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즉 사람들에게 적절한 운동방법을 알려주고, 몸 움직이는 것을 통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기쁨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운동처방사라는 직업이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직업은 아니다. 아직 운동처방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 실적이나 사례들이 충분히 축적된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현이는 앞으로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겠다고 한다. 운동처방이 단지 기계적인 치료 기술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이는 운동처방사로서 사람의 몸과 마음의 연관성을 밝히고, 즐겁게 흘리는 땀방울이 몸에 미치는 긍정적 작용을 연구하고 싶어한다. 그는 운동처방사가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이와의 인터뷰를 끝내면서 내 몸에 대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는 늘 정신적인 이유를 핑계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몸의 신호를 무시한 채 무리한 생활을 해서 건강을 해친 적도 있었다. 몸을 건강하게 단련하는 것이 결국 나를 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몸의 고통이 정신의 충만함을 보장한다는 생각이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임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어쨌든 현이와의 만남 후 몸이 보내는 신호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또 인생의 계획만큼이나 내 삶에서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어쩌면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운동을 통해 더 풍요로워진 삶 속에서, 나는 거듭 현이에게 감사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