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139번지. 대한성공회 나눔의집 1층에 자리잡은 작은 도서관 <꿈틀>에서 안영신씨를 만났다. 아이들을 위한 마을 도서관답게, 방학을 맞은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공간이 그의 일터였다. “우리 선생님이 뭐 인터뷰할 게 있다고~ (우하하)” 장난치며 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터뷰라는 과업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곧바로 옆방 생협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아이들 중에는 영신씨의 아들 동녘이도 있었다. 누군가 묻기 전에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통 하지 않을법한 사람인지라 아이를 키우는 엄마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벌써 올해 학부모가 된다고 한다. “아이는 어떻게 키웠어요?” “우리 집이 대가족이에요. 동생들이 키웠어요.” 영신씨는 1남4녀 중 맏이다. 사연은 IMF때 집이 “폭삭” 망하면서부터 비롯된 모양인데, 경제적인 이유로 영신씨의 집에 세 동생이 함께 살고 있다. 불편할 수도 있는 동거지만, 남편은 아내의 동생들과 함께 사는 것에 만족한다고 했다. 반지하의 좁은 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동안에 갈등도 많았지만, 이사를 하고 각자의 공간이 생기고부터 상황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집에 아이를 함께 키우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은 영신씨에게나 동녘이에게나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특히 남동생이 육아를 많이 맡아줬다고. 동녘이는 이모, 삼촌과 함께 살면서 “혼자 크는 아이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들을 정도로 “둥글”하게 컸다. 그리고 영신씨는 출산 후 4개월의 휴직기간을 빼고, 아이로 인해 자신의 활동을 포기한 적이 없다. 34년 인생의 역대 사건 대학 졸업 후 모 방송사 구성작가 활동을 하다가, 1990년대 후반 비정규직이 대량 정리되던 시기에 함께 “정리”됐다는 영신씨. 이후 <말>지와 <작은 책>같은 매체에서 일했는데, 2006년 초에 다른 일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른 일이란? 5.31 지방선거 기초의원(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한 것이었다. 그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2월부터 선거준비에 들어갔는데, 언제 출마를 결심했냐고 물었더니 “1월 말”이라고 답했다. “당시에 남성당원들이 ‘여성할당제 때문에 (자신들이) 출마 못한다’는 불만을 제기했었는데, 그래서 더더욱 ‘내가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홧김에 저지른 일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좋은 정책이 삶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선거 과정은 “힘들었다”. 어떤 무엇보다 인간관계, 내부갈등이 영신씨를 힘들게 했다. 비례대표라는 이유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구청장 등의 후보들 사이에 끼어 유세를 다니면서 “보조”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고 했다. 사실, 선거 출마는 34년 영신씨 인생의 역대 사건이 되지는 못했다. 진짜 사건은 선거 직후에 찾아왔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선거 직후 그 소식을 듣고서, 밖으로만 돌아다니던 딸은 집에 내려가 어머니의 임종 전 4개월을 함께했다. 그 기간은 “엄마와 이런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좋다”와 “답답하다, 미치겠다!”가 공존한 시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간극을 느꼈다.” 영신씨는 간병의 경험과 어머니의 임종에 대해 더 듣고 싶어하는 나에게, “동화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꿈틀>에서 선생님들이 모여 동화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좋은 그림책들을 보면서 대화하는 동안 속내를 많이 이야기하게 되고 “자기 치료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딘 사람들”과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그는 ‘아이들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서, 돈과 관계없이 지금의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꿈틀>은 도서관이면서 아이들의 쉼터로서의 역할도 해내고 있다. 학원에 가지 않는 아이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땅한 공간이 없는 아이들이 이 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스스로 여러 놀이를 고안해내서 함께 논다. 이곳은 주위에 초등학교가 두 곳 있어서 아이들이 많은 지역인데, 특히 뉴타운개발로 인해 살던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옮겨오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 자라는 아이들도 많다. 영신씨는 사회적일자리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방문학습 멘토링을 통해, 아이들과 선생님을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꿈틀>이 위치한 성공회 나눔의집은 “가난한 삶을 지향하는 곳”으로 공동체 정신이 강하다. 영신씨는 “당에서 날이 선 공간에 있다가 (여기 와서) 무딘 사람들을 보니까 좋다”고 했다. 종교는 없지만 “목사와 신부가 공존할 수 있는 이 공간은 마음에 든다”고.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니, 평소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동녘이와 책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다는 점도 다행이다. “대안을 꿈꾸는 교육지원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그의 꿈이 얼마나 강한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몇 번이나 교육지원센터 얘기를 꺼냈다. 교육은 “(아이들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꿈꾸게 해주는 것”이라는 한 학교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곳에서 활동하는 모두가 그런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신씨 역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꿈꾼다. 가정방문을 가서 어떤 아이가 어머니에게 “엄마, 죽을 때 나한테 돈 많이 남겨주고 가야 해!” 라고 말하는 걸 보았을 때, 혹은 이번 대통령선거 결과를 지켜보았을 때에도,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이 세상을 어찌하랴!’ 하고 새삼 통탄했지만 그는 대안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 주위에서 얼굴 좋아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가 보다. 영신씨는 “지금이 재미있다”고,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굉장히 무심해 보이던 친구(아이)가 새해에 엄마 핸드폰을 빌려 하트 문자를 보내왔는데 정말 기분 좋더라”고 자랑도 잊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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