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은 모든 여성에게 중요한 화두이다. 일다에서 낸 책 <나, 독립한다> 출간과 더불어 앞으로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책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루는 ‘여성의 독립’ 이야기들을 만날 계획이다. <편집자주>
카도노 에이코의 동화책 <마녀택배>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마녀배달부 키키(魔女の宅急便, 1989)>는 소녀 ‘키키’가 마녀의 전통에 따라 열세 살에 집을 떠나 독립생활을 시작하면서 겪는 일들을 담고 있다. 현실과 비교하면 말랑말랑한 이야기일지라도 판타지적인 은유를 빌어서 13세 소녀의 독립과 성장을 꽤 현실감 있게 잡아내고 있는 작품이다. 화창한 만월에 떠난 여행 ![]() 키키가 살던 마을은 마법이 존재하고, 마녀가 존경 받고, 열세 살에 소녀가 독립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키키는 여행을 시작할 날짜도, 살게 될 마을도 스스로의 선택으로 정할 수 있다. 여행 이후의 삶은 키키 스스로가 살아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오직 “겉모습에 구애 받지 말고, 언제나 웃음을 잃지 말라”는 조언과 예쁜 새 빗자루 대신에 길이 잘 든 오래된 빗자루를 타고 떠나야 좋다는 지혜를 나누어 줄 뿐이다. 그러나 키키가 독립생활을 시작하게 된 마을은 비행선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고 줄지은 자동차들과 인파로 넘쳐나는 대도시이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부터 키키의 독립생활은 난관에 부딪힌다. 도로 위를 날다 교통 대소동을 일으킨 키키는 경찰에게 붙잡힌다. “도로 한복판을 날아다니다니 상식이 없다!”고 다그치는 경찰에게 “저는 마녀에요. 마녀는 날아다녀야 합니다!”고 항변해봐야 먹힐리가 없다. “마녀도 교통법규는 지켜야 해.” 그게 이 도시의 룰이다. 고향에서는 당당히 독립을 허가 받았지만 이 도시에서는 그저 ‘미성년’일 뿐이다. “집에 연락하겠다”는 으름장에 경찰의 눈을 피해 재빨리 도망치는 수 밖에. ‘보호자’와 ‘신분증명서’가 없으니 호텔에도 머무를 수가 없다. 특기를 살려 직업도 찾아야 하는데 내가 뭘 해야 좋을지도 모르겠다. 화창한 만월의 밤이라는 예고를 듣고 출발했지만 곧이어 장대비를 만난 것처럼, 두근두근 꿈꿔왔던 독립생활은 험하고도 험하다. 방을 얻고 일 시작, 진짜 난관은 이제부터 ![]() 뽀얗게 먼지가 앉은 방은 박박 걸레질을 해야 하고, 살림살이를 사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이 깨닫게 된다. 가진 돈이 모자라 당분간은 핫케익으로만 버텨야 한다. 쇼윈도 안의 예쁜 구두도 그림의 떡. 시작부터 첫 손님을 맞았지만 기세 좋게 시작한 일은 처음부터 사고투성이. 다음 날은 오후 늦도록 개점휴업이다. “이대로 손님이 오지 않아 할머니가 될 때까지 매일, 매일, 매일 핫케익만 먹게 되면 어떡하지?” 돈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육체노동의 고단함 속에서도 키키는 일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힘을 얻는다. 그렇다고 키키가 만나는 어른들은 키키에게 공짜로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 빈 방을 주더라도 키키에게 가게 일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식이다. 도와줘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생활을 하는 주체에 대한 대우이다. 그러나 늘 좋은 사람들만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중요한 약속에도 못 가고 고생 끝에 배달한 물건이 쓸모 없는 것 취급을 받고, 화려하게 차려 입고 놀러 다니는 또래 여자아이들에게 “벌써 일하는 거야? 다부지네” 라는 비아냥 섞인 말을 들으니 심사가 뒤틀린다. ‘시커먼 마녀 복장에 힘들게 일하는데, 일하는 보람을 깡그리 짓밟는 손님을 만난 것도 속상한데, 팔자 좋게 예쁜 옷 입고 놀러 다니는 너희들, 괜히 얄미워!’ 뒤틀린 마음 때문인지 의욕을 잃은 키키에게서 마법의 힘이 사라진다. 키키는 고양이 지지의 말을 들을 수도, 날 수도 없게 된다. 친구, 성장의 조력자 ![]() 난생 처음 맛보는 좌절감을 딛고 일어설 실마리를 키키는 그림을 그리는 친구 우슐라를 통해 얻는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는 “그리고, 또 그려대.” 그래도 안 그려질 때는 “그리는 걸 관두”고 “산책을 하거나 경치를 보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는 동안 갑자기 그리고 싶어지는 거야.” 우슐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고, 낙심에 빠진 시간은 성장을 위해 거치는 계단이 될 거라는 경험을 얻는다. “수행 따윈 고리타분한 관습”이라고만 여기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도” 날 수 있었던 키키는 이제 스스로의 정체성과 삶에 대해 한 발 진전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모님에게 배달된 편지에서 키키는 “낙심할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습니다”고 전한다. “낙심할 때도 있지만 씩씩하게 살아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받은 양, 괜시리 기분이 뿌듯해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슐라와 키키의 목소리를 한 사람이 맡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에 있어서 친구는 ‘또 하나의 나’라는 뜻일까? (DVD 출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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