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생활을 청산하려는 친구에게

또, 이별을 통보 받다

시로 | 기사입력 2008/01/23 [01:50]

이반생활을 청산하려는 친구에게

또, 이별을 통보 받다

시로 | 입력 : 2008/01/23 [01:50]

얼마 전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았다. 연인도 아닌,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어도 지난 시절 내 기억에는. 다시 기억을 떠올려 봐도, 나는 그녀에게 그다지 잘못한 기억도, 다툰 적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는 일은 비단 이번 일뿐만은 아닌 것 같다.


왜 이런 일들이 반복해서 생기는 것일까. 기쁜 일도 아닌, 이런 기분 더러운 일들이. 왜 반복해서.. 내게.. 왜 하필이면 내게….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몇 번의 내 전화를 피하던 친구는 달랑 문자 한 통을 남겼다.
“시로야, 나 당분간 네 전화 안 받고 싶어.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연락할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친구는 내게 연락이 없다.

실은 그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설마 하는 마음에 또 다른 친구 A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었다. A는 답답한 마음에 그 친구에게 연락을 했고, 결국 그 이유를 알아내었다. 나는 A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 친구의 사연을. 내게, 그리고 그 친구의 이반친구들 모두에게 이별을 고한 사연을.

전해들은 내용에 따르면, 사연인즉슨 이렇다. 그 친구가 선 본 후 만나는 남자가 생겼단다. 그래서 ‘우리’가 부끄럽다고 했다. ‘우리’, 우리라는 이름으로 한 때 친구라고 믿었던 이반친구들이 부끄럽다고 말했단다. 그 남자친구에게 자기가 이반인 게 들통날까봐 걱정돼서 우리를 ‘정리’하고 싶다고 말했단다.

속상하고, 슬프고, 마음 아프고, 화나고, 배신감도 느껴지고, 짜증나고, 괴롭고. 말로 담을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무엇으로 다 담을 수 있을까. 당해보지 않은 자에게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큰 상처가 됐음을 어떻게 일일이 다 늘어놓을 수 있겠는가.

내가, 우리가 이반인 ‘티’가 나서, 남자친구가 눈치 챌까봐. 한 때 친구였던 ‘우리’와 관계를 청산하고 싶다는 그 친구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이반인 우리가. 어찌 보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이해한다, 친구야.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반 티 내 봤자 이 세상 살아가는 데 좋을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알고 있으니까. 이반이었다는 사실, 이반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지우고 싶어하는 네 마음, 백 번 천 번 이해한다.

그게 네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 걸, 다만 이 세상이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친구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웃고, 배려하며 지냈던 시간이 있었는데, 적어도 내게 설명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았겠니. 진심을 담아,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네 행복을 빌어달라고 말해주기를 바란 게 내 욕심이니.

기대가 너무 큰 건지, 내가 지금 너무 속상한 건, 한 순간에 내가 너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고, 내가 널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지레 날 판단해버린 네 태도 때문이야.

난 그렇게 용감한 사람도, 이반으로 살아가는 게 마냥 즐겁기만 한 사람도 아니야. 나도 너만큼이나 이반으로 사는 게 힘들고, 또 힘들어. 가족들 때문에, 직장 일 때문에 그 어떤 이유 때문에든 네가 한 선택이 네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난 축복해주고,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줄 수 있는데...

앞으로 이렇게 날 떠나가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남겨진다는 느낌, 버려진다는 느낌 정말이지 받고 싶지 않다.

친구야, 너희들에겐 정말이지 이런 느낌 받고 싶지 않구나.
정말이지...
이건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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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 2010/01/05 [15:30] 수정 | 삭제
  •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네요.
    누구를 원망하기도 쉽지 않은 일이고..
    차라리 그 친구분이 직접 말해주고 양해를 구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어쩔 수 없더라도 이해해 주려 노력하기라도 쉬웠을텐데..에효..
  • 2008/06/28 [13:26] 수정 | 삭제
  •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자기가 이반이었다는게 부끄럽다기 보다는 혹 이반 친구들을 계속 만나다가
    남친이 자신의 과거를 알게될까봐 두렵다고 하더군요. 남친은 거의 호모포비아;;;;

    그래도 좀 서운하더라구요..
    이반으로 만나 친구가 되었지만 그 정돈 서로 이해할 수 있잖아요.
    누굴 탓하고 배신감 느낄 문제도 아닌데..

    머 어쩌겠어요;; 잘 살아.. 해주는 수 밖에 -_-;;
  • jeje 2008/02/27 [23:31] 수정 | 삭제
  • 친구라는이름으로 용서해주세요.라는말씀.드리고싶습니다.
    이해를 해 드리라구도요..
    그 친구분에게도. 분명 두렵고 무서워서 그랬을꺼예요..

    그리고 너무 힘 빠지지 마시구요. 힘 내세요.
  • sunny 2008/01/29 [05:15] 수정 | 삭제
  • 그럴만한 다급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쩌면 친구도 마음은 미안한지도 몰라요.

    너무 힘 빠지지 마시길 바래요.
    더 좋은 친구들도 있겠죠.
  • mo 2008/01/26 [04:46] 수정 | 삭제
  • 좌절 금지입니다.
  • 토토 2008/01/23 [18:04] 수정 | 삭제
  • 갈수록 이반친구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되지만..
    또 갈수록 이반친구가 사라지는 것도 알게 되고......
    관계는 폐쇄적이 되고.. 실망하고.. 답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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