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욕(Bjork) 분열된 사랑을 말하다

여성뮤지션① 비욕의 예술적 가치

성지혜 | 기사입력 2008/01/31 [17:44]

비욕(Bjork) 분열된 사랑을 말하다

여성뮤지션① 비욕의 예술적 가치

성지혜 | 입력 : 2008/01/31 [17:44]

▲ 비욕(Bjork)
아무래도 금지된 것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은 어느 정도 추상적이라는 평가에 놓일 여지가 있다. 주어진 언어(코드)내에서 억압된 것을 드러내려 할 때에는 더러 허가된 표현방식 외의 것이 필요할 수도 있고, 또 보편적인 시각은 ‘관습을 흔들어놓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종종 그것들을 뒤틀린 형태로 파악하니 말이다.

실제로 기존 질서에 틈을 내는 어떤 예술작업들은 낯설거나, 전복적이거나, 신비로운 기법으로 구현되는 때가 많아서 그것들은 표피적으로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서 그런 예술들은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잠깐 잊기 위한 소비로 한정되며 읽혀질 때가 많으니, 예술의 직간접적인 정치성은 ‘취향’이라는 사적 영역 안에 함몰되기 쉬운 측면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비욕(Bjork)

사실 대중음악계에서 비욕(Bjork)의 존재는 새로움이면서 동시에 혼돈이다. 비욕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현실의 룰을 혼란시키며 사람들을 매혹하는 아티스트이다. 그의 음악은 아이슬란드의 문화적 특성이 일렉트로닉 비트에 접목되며 시작되었는데, 공식적으로 솔로 뮤지션 활동을 시작했던 1993년 이래로 그는 줄곧 여러 가지 소리들과 그것의 울림들을 장르 안과 밖에서 실험해오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요소(서양 클래식에서부터 재즈와 펑크, 흑인음악에 이르기까지)가 눈에 띤다. 여러 가지 장르와 음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이루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조화는 기존의 서구 팝음악과는 사뭇 다른 양식인데, 에스닉한 정서와 가장 현대적인 비트 프로그래밍의 조합에서 어느 요소도 부속물처럼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은 그 음악의 주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점은 바로 비주얼적인 면에 있다. 물론 다른 뮤지션들도 뮤직비디오에 곡의 테마를 반영하고는 있지만, 비욕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 자신이 밝히고 있듯, 비욕에게 뮤직비디오는 단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사운드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요소를 담당하는 것이다.

미셀 공드리(Michel Gondry)나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 등과 같은 탁월한 영상감독들과 작업한 비욕의 뮤직비디오는 한편의 비디오아트를 보는 듯 하다. 시각과 청각의 감각적인 구조로 완성된 그 작품들에는 우주로서의 자연과 마법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자연의 순환성과 어린 아이 같은 ‘순수’가 펼쳐져 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렇듯 자유로운 ‘자연성’을 상기시키는 비욕의 뮤직비디오에서 우리는 때때로 기묘한 불안과 이질성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고유한 상태로의 회귀?

▲ 뮤직비디오 "All Is Full Of Love"의 한 장면
비욕의 음악과 영상 이미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아이콘은 본능과 본질, 그리고 자연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시사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Isobel”이나 “Bachelorette”에서 보여지듯, 그에게 도시적 공간은 어딘가 동화적(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의 뮤직비디오 대부분에서 자연적 공간이 침묵 속의 열정과 무한한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는 곳으로 제시되는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가령 “Isobel”의 “…married to myself”와 같은 가사 그리고 “Bachelorette”의 “I'm a whisper in water a secret for you to hear”과 같은 가사가 영상으로 구현될 때, 소녀의 형상을 하고 있는 여성(비욕 자신)은 발달된 문명세계의 균열에 적응하지 못하고 숲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비욕의 자연은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대상’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생명의 영역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자연은 한없이 크고 인간중심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는 위협적이기까지 한 공간이다. 세간의 관심으로 인한 일련의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고 난 후 발매한 [Homogenic](1997)에 아이슬란드의 자연풍광적인 색채가 강하게 들어오게 된 것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미셀 공드리가 감독한 “Joga” 참고).

또한 그에게 있어 신체성은 모순되는 의미로 작동한다. “All Is Full Of Love”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몸은 무의식적인 욕망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본능(에로스)의 집합소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혹은 로봇)이기도 하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현악기와 브라스 악기의 웅장함과 비욕 목소리의 독특함이 앰비언트, 트립합 등의 미니멀한 비트에 겹쳐지는 것처럼, 새로운 언어로 제시되는 그의 세계관은 문명화된 것과 그로부터 배제된 것들을 뒤섞어 놓는다.

정체성을 분열시키다

▲ [Volta](2007) 앨범자켓
비욕은 젊은 시절 활동했던 밴드 슈가큐브스(The Sugarcubes)에 대해서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음악을 이야기하는 인터뷰에서 종종 “no logic”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바 있다.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사랑(욕망)하는 이 뮤지션은 도시와 자연, 어른과 아이, 남성과 여성, 문명과 본능의 허구적인 이분법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그것이 야기하는 분열을 온 몸으로 개시해 보이고 있는 듯 하다.

그의 목소리는 쾌락과 성애의 문화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여전히 목소리를 가지지 못한 존재가 있음을 알리듯, 일반적인 재현체계가 정의하는 고유한 영역들의 경계를 붕괴시킨다. 산꼭대기에서 물건들을 아래로 내던지며 사랑하는 이와 더욱 안전하고 행복하게 머무를 것을 소망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 자신이 바위에 떨어지는 상상을 하는 “Hyper Ballad”에서처럼, 규정된 정서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은 비욕 음악의 핵심을 이룬다.

더욱이 최근 앨범인 [Volta](2007)에서 그는 한층 구체적으로 타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소외된 가치들이 말할 수 있는 다른 공간을 예시하려는 것 같다(“Declare Independence” 참고). 물론 그가 말하는 순환적인 세계관과 자유로운 욕망을 이상화시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음악에서 어떤 정치적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장할 수 없는 해석법일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비욕이 고향(아이슬란드)과 자연(에로스적 열정과 몸), 그리고 순수(소년과 소녀)를 열망하게 만드는 중심기제가 무엇인가에 주목한다.

인간의 욕망을 분열시키는 주된 요인이 존재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과 권력문화라고 한다면, 제도적으로 교육되는 정상성과 비정상성은 반드시 일정수준 이상 위계적인 차별을 포함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육체성은 부정되지만 또 다른 육체성은 고귀한 지위를 누리는 예에서, 어떤 사랑은 존재해선 안 되는 것이지만 또 어떤 사랑은 숭고하게 취급되는 것에서 우리는 현실사회에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 분열적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다.

비욕이 (죽음이나 폭력이 아닌) 사랑이나 자연성 등 사회에서 비교적 긍정되는 소재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외려 감상자에게 질서가 어긋나는 듯한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는지 모른다. 그가 추구하는 충만성은 완결되고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현실의 언어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분열과 혼란을 가리킨다.

물론 변화를 촉구하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감수성들은 때로 공허하거나 위험하게 보일 수 있다. 왜냐하면 현실을 초월하는 듯한 이 같은 몸짓은 실제의 억압을 고려하기보다는, 지배문화 외의 모든 것을 ‘차이 없는 타자성’으로 몰아넣는 남성적 가치체계와 접할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타자와 타자의 문화를 연구‘대상’으로 유희하지 않고, 제도권 안에 잠재하는 모순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타자의 상황 속에 혼재하는 심리적인 부분들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나는 ‘여성뮤지션’ 비욕의 예술적 가치를 본다. 일반적인 삶의 수면 밑에 가라앉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게 만드는 이 예술에서 두려움과 용기를 동시에 느끼는 이 감정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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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래비스667 2009/08/08 [14:22]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 진해 2008/02/01 [16:26] 수정 | 삭제
  • 무엇이 그토록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요인인지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기사의 70% 가량이 그 요인을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네요..
    여성뮤지션들 얘기 듣고 싶어요.. 기대됩니다.
  • gbr 2008/02/01 [01:26] 수정 | 삭제
  • 독특하죠.
    첫앨범 듣고 좋았다는.

    개인적으로 뮤직비디오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래도 좋죠.. 비요크.

    콘서트 벌써 했나요? 가고싶었는데....
  • 나나나 2008/02/01 [00:24] 수정 | 삭제
  • 뷔욕과 매튜마니가 함께 찍은 영상물도 봤었는데 신기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둘 사이가 그냥 파트너 관계라더니 결혼을 했더군요.
    어쨌든 굉장한 예술가인듯...^^
  • 유진 2008/01/31 [22:32] 수정 | 삭제
  • 내한한다는 소식에 들뜨긴 했죠.
    예전에 무척이나 좋아했던 가수인데..
    최근엔 음반도 안 듣고 해서 좀 뜸했던..
    뮤지션들의 변모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팬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몇 곡 들어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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