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
기회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성적이 안 좋은 아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일단 하기만 하면 말이지-과 다를 바 없었다. 혼자 집을 알아보는 것도, 이삿짐을 싸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다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십여 년 간 나를 간섭해온 가족과 4년여 동안 나를 보호(?)해준 애인으로부터 벗어나 멋지게 독립하고 싶었다. 혼자 살 집을 보러 가기 며칠 전 나는 <나, 독립한다>를 읽어 내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그래, 이제 나도 보란 듯이 독립 일기를 쓰는 거야. 오산이었다. 아차!
이십칠 년 동안 한 번도 나 혼자만의 방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였기에, 나만의 방이 생긴다면 마냥 좋을 것만 같았다. 내 마음대로 가구배치를 하는 상상을 하며 얼마나 설레었나. 그것은 유치한 환상에 불과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나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 어정쩡하게 방안을 서성대기만 했다. 속이 탔고 심장이 떨렸다. 모든 것을 나 혼자 해야 한다는 것은 장밋빛 로망이 아니었다. 냉철한 현실이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는 지레 겁을 먹기 시작했다. 멋진 독립에 대한 환상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거울마냥 산산조각 났다. 나는 현실적인 상황에 대처하기보다 깨어진 환상의 조각으로 자해를 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환상과 함께 자신감도 독립의 의지도 조각났다. 내가 보고 들은,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이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순진하고 충동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 이상야릇한 자괴감에 빨려 들어갔다. 어버버, 우어어 고등학교 때까지 나는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 아이였다. 아무도 내 심정은 몰라준다고 굳게 믿었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다고 친구와 가족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것이 독립적인 태도라고 믿었다. 그랬던 내가 스무 살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연애를 시작하면서 벽은 서서히, 그리고 완벽히 허물어졌다. 모든 일상과 감정을 공유하는 연애를 통해 나는 맨 살을 맞대는 관계를 알게 됐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잠시라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아는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해댔다. 한참 외로움과 막막함을 토로하고 전화를 끊으면 이런 순간조차 견디지 못하는 내가 미워 견딜 수 없었다. 틈만 나면 내 자신에게 약해빠졌어, 그래서 어쩔래, 남들은 다 견디는데, 정말 못났어 라며 고춧가루를 뿌리고 소금을 뿌리고 사포로 문질렀다. 그럴수록 나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코딱지처럼 점점 작아져, 손가락을 튕기면 어디로 날아갔는지 찾을 수 없을 만큼 작아져 버렸다. 배부른 소리, 투정, 포옹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디까지 가나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훌렁훌렁 속내를 까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그러냐며 웃어넘기던 친구들도 서서히 당황하는 눈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원칙을 허물고 며칠씩 친구 집에서 걸식을 하기도 했다.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독립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기숙을 하게 된 셈이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늘 거리를 두고 지내던 부모님에게 속내를 털어놨다는 것이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선언하고 멋지게 떠나와도 시원찮을 판국에 오히려 아이처럼, 아니 아이 때보다 더 솔직하게 징징대다니! 만약 그들이 나를 한심하게 여기거나 귀찮아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생애 처음 나를 까발리고 한없이 허우적거리는 동안 그들은 나를 묵묵히 바라보거나 내 투정을 받아주었다. 그것은 신기한 포옹이었다. 아늑해서 안주하고 싶다가도 슬그머니 주먹을 쥐게 만들었다. 그들은 내가 홀로서는 것을 응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투르고 부끄럽게 천천히 독립은 충동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독립에는 절박함과 현명함이라는 양 날개가 있다고 본다. 누구나 닥치면 한다는 말은 절박함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절박함이 2% 부족한데 일을 저지르고 싶다면 현명함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어느 정돈지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작전을 짤 필요가 있다. 내 경우는 현명함이 요구되는 케이스다. 홀로 선다는 것은 화를 내며 튕겨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존의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었다. 손톱 밑의 가시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맨땅에 등을 댄 채 몸부림을 칠 때 내 곁에 있어주었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진정한 독립을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주거지의 독립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지도를 그려나가게 된 것이다. 생애 첫 독립 프로젝트는 내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쭉쭉 뻗어나가고 싶었는데 한 발 내디뎠다 앗 뜨거, 하며 다시 반 보 뒤로 물러선 꼴이 되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엄청난 고난을 겪고 대단한 의지를 가지고 심각한 위기를 극복하며 독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처럼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시작하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나는 이 말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배부른 투정 같은 거 할 수도 있다고. 괜히 남들과 비교하며 작아지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한없이 작은 자기 모습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일단 내디딘 걸음이니 천천히 달려보자고. 보이지 않는 초보운전 딱지를 등판에 크게 써 붙이고 부릉부릉 시동을 걸어보자고. 결국엔 이 말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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