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였던 지난 2일과 3일 청계천에서는 진기한 광경이 벌어졌다. 2일 저녁,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반대하는 촛불문화제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서울 청계천 일대를 붉은 빛으로 물들인 촛불집회는 그 다음 날에도 이어졌고, 6일 저녁에도 청계천과 여의도에서 각각 예정되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민심’을 드러낸 이번 집회는 이전에 있어왔던 많은 집회들과 눈에 띄는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좌우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정치적 성향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집회나 시위랑 상관없이 살았는데, 이번엔 못 참겠다’는 식으로, 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이야기하는 것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소위 ‘조중동’이라고 통칭되는 보수언론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이번 집회는 ‘좌파’나 ‘반미세력’이 아닌 건강권 침해를 우려하며 현 정부의 실정에 위기를 느낀 ‘시민’들이 주도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기존의 특정 정치세력이나 ‘운동권’들에게 이용될까봐 걱정하는 모습이다. 성난 민심을 보여준 이들의 다수가 ‘십대여성’ 또 하나, 정말 이번 문화제가 진풍경이었던 것은 집회에 참여한 다수의 인원이 십대들,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라는 점이다. 청계천 광장에서 “너.나.먹.어.미.친.소”를 외치는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어떤 집회에서도 세력화되어 들리지 않았던 젊은 여성들의 그것이라서, 집회에 참가한 많은 ‘성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번 촛불집회에 흠집을 내고 싶어하는 몇몇 언론들은 십대여성들이 주로 참석한다는 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십대’들이 ‘스타에 자극 받아 나왔다’는 말로 폄하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 세뇌되어서 나왔다’는 보수언론들의 상상과는 달리, 십대들은 분명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십대들은 스스로를 피해 당사자라고 뚜렷이 자각하고 있다. 문제가 있는 식재료가 싸게 들어올 경우, 그것이 일차적으로 급식에 이용될 것이며 신체적 연령이 어린 자신들에게 더 크게 영향을 미치리란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 십대들의 문제인식은 비단 광우병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대운하 건설 등 현정부의 전반적인 실정에 대한 우려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광우병 소 수입 문제가 불거지기 이전부터 인터넷 상에서 젊은 층들이 많이 모이는 게시판이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공유되던 문제의식이었다. 여기에는 자신들이 ‘미래세대’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요즘 인터넷에서 흔히 보게 되는 말 중 하나가 “나라를 바로잡는 길에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십대들의 글에는 기성세대들이 눈감고 있는 불의에 대한 반감이 읽힌다. 이를 두고 ‘좌파’니 ‘반미’니 ‘세뇌’니 하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색깔논쟁이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덮어버리려는 보도들을 보고, 십대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더구나 보수언론들이 지금 괴담이나 유언비어라고 몰아붙이는 정보가, 참여정부 시절 자신들이 스스로 쓴 기사에서 나왔다는 사실도 십대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드러난 일이다. 인터넷이란 공간에서는 언론이 말을 함부로 뱉으면 안 된다. 검색 몇 번이면 금방 들통나기 때문이다. 여론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십대여성들 ‘왜 집회 참여자의 대다수가 여성인가’ 라는 물음에는 더 많은 분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십대여성들이 하는 말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집회 중 자유발언의 내용이나 인터넷 상의 글들을 보았을 때에도, 십대여성들의 말에는 거의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타인에 대한 염려’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미친 소 먹고 광우병 걸리면 어떡하느냐’, ‘내 동생(오빠)이 나중에 군대 가면 미국산 쇠고기 먹지 않겠나.’ 십대여성들의 활동이 활발한 인터넷 게시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정보가 교류되고 있다는 점 또한 여성중심의 참여와 관련이 있다. 전에는 네티즌 여론이 포털 사이트 뉴스란의 댓글들 중심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 곳의 주도층은 남성들이었다. 이제 십대여성들이 여론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양상이다. 여성들은 먹거리 문제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타인에 대해 민감하다. 광우병 소 수입 문제에서도 이것이 정의다, 불의다 하는 논의에 앞서 나의 가족, 친구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염려가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다. 따라서 십대이기 때문에 미래세대로서 느끼는 ‘당사자 인식’에 가족과 친구를 걱정하는 ‘연민과 배려’가 더해져 십대여성들이 느끼는 절박함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십대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서 형성한 여론, 십대여성들이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보여준 민심에서 읽어내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 폭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찰과의 충돌에 대응하는 방식도 이전 집회와는 사뭇 다르다. 6일 촛불문화제를 경찰이 불법으로 규정한 것에 맞서서 이들이 택한 것은 ‘침묵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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