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그를 이십 대 초반부터 알아왔는데, <일다>에 실린 인터뷰를 읽고서 새삼 친구들과 ‘현임이가 이렇게 사는 구나’ 하고 우리가 몰랐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화와 애니를 향한 꿈을 접지 않고 결국 그 길에 접어선 친구가 여간 대견한 것이 아니었다. 계산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는 경험 김현임. 지난 4년 간 유독 많은 변화가 있었던 친구다. 그는 이제 ‘사사’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그 이름은 꽤 오래됐는데 “사사롭다”에서 따온 말이다. “내가, 내가, 내가… 늘 나에 대한 고민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서, 지겨워서 떼놓으려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점점 더 깊어졌다. “제대로 살고 싶은데, 제대로 산다는 게 어떻게 사는 것일까? 그걸 몰라서, 난 정체성이 없나 보다 했어. 삶의 모델을 몰랐던 거야.”
“당시 인도는 나의 화두였어. 누구나 자아정체성 고민을 하겠지만, 내 경우에 그게 인도로 튈지 미처 몰랐지. 마음이 삭막해서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여행해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으면 좋고, 못 찾으면 그만이다 생각하고 떠났어.” 그 여행은 캘커타코코넛(cafe.daum.net/calcuttacoconut)에서 진행하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채식을 실천하는 녹색배낭여행이었다. ‘사사’는 한달 간 공동체생활을 했다. 그 한 달간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고, 서로 의지하고 믿고 사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싶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사사’는 <일다>에 인도여행과 채식에 대한 글을 기고해주었다. 그는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깊이가 있는 모습이었다. 삶은 흐름이 있어서 가볍게 타주기만 하면 돼 여행에서 돌아온 ‘사사’는 프리랜서로 애니메이션 작업과 조각을 계속했다. 그러나 마음속엔 다시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가야겠다, 가야겠다 했지. 내 안에 사랑이 있는지 알고 싶었고. 인도여행을 통해서 같이 나누며 사는 것을 얻어 왔지만, 충분히 얻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쩌면 여행을 다녀와 내 모습이 확 변해버리니까, 다시 변화를 원했을 수도.”
두 번에 걸친 여행을 통해 그는 스스로에게 더 다가가게 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삶은 계획이라기보다는. 흐름이 있어서 그걸 가볍게 타주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 안간 힘을 쓰거나 조급해할 필요 없이.” 채식을 하고,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생태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자연히 주위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멘토가 중요하지. 나에게 처음 멘토가 되어준 사람들은 “캘커타코코넛 까페 사장님과 친구들이야. 그분들의 사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어. 그 삶이 투영이 되어서 내 삶의 모습도 구현된 것 같아.” 도시 밖으로 ‘사사’는 2007년 1월부터 6개월 간 장애인활동보조를 했다. 그리고 십대들에게 애니메이션을 가르쳤던 경험을 계기로, 대안교육매체를 만드는 <민들레>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번 만남이 <민들레>에서 일한 지 1년이 되는 시기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서울은 사람 살 곳이 못돼” 라고 말하며 “도시 밖에서 살아보고 싶다”, “귀농을 해야겠다”고 몇 차례나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 귀농학교에도 다녔고, 경기도 광주 퇴촌에 있는 5평짜리 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말농장인 셈인데, 배추며 아욱, 쑥갓, 이것 저것 다 심어보았다고 한다.
“정토회에서 ‘깨달음의 장’을 통해 많은 것을 내려놓았어. 특히 아버지에 대한 갈등이 심했는데, 그래서 집에 있으면 몸이 아픈 증상이 있었거든. 지금은 사라졌지. 이젠 부모님이 귀농 생각이 있다면 같이 살면 좋겠는데, 그럴 의향이 전혀 없으신 모양이야.” 최근 ‘사사’는 부모님에게 귀농하겠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했다고 한다. 부모님의 반응은 역시나 부정적이었다. “벌어놓은 돈도 없으면서 어떻게 귀농을 하냐고, 자구책이 있어야 하는데 있냐? 하시면서 반대하셨지. 나는 내가 언제 준비해놓고 하는 것 봤냐고 반문했어. 마련해놓고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나는 (삶을) 만들어가는 형이라고 말이야. 부모님 앞에서 말을 얼버무리지 않고 이렇게 기승전결을 다 갖춰서 얘기한 것은 처음이었어.” 땅과 가까이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은 조만간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농사는 혼자 힘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여성공동체 소식에도 귀 기울이고 있고, 귀농인생의 멘토를 찾기 위해 더듬이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미소가 절로 흘러나왔다. 친구의 변화와 성장을 조금 거리를 두고라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사사’는 귀농을 하더라도, 카메라와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작업이 가능한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조형작업들은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의 성장이 세심한 손을 통해 작품에 담기게 된다면, 기꺼이 또 친구들과 함께 작은 전시회를 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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