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아이”

행복하게 공부할 줄 아는 능력 발휘하려면

최현정 | 기사입력 2008/07/10 [16:17]

“공부 못하는 아이”

행복하게 공부할 줄 아는 능력 발휘하려면

최현정 | 입력 : 2008/07/10 [16:17]
공부 못하는 아이 역할을 맡기란 정말 힘듭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어디에 재능이 있는지, 어떨 때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지는 “공부 잘 하니?”하는 질문 앞에 참 무색해집니다. “누구야는 뭘 잘하니?”하는 질문에 대답하기도 실은 어렵지만, 그게 왜 어려운 질문이 되어야 하는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할 줄 아는 것, 좋아하는 것은 참 많은데 공부를 못해서 마치 잘하는 게 전혀 없는 마냥 되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는 아이가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앗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학교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잘 하는 것 하나 없는 사람’ 되기 십상이고, 무력감에 절은 아이가 뭔가에 도전하고 하나씩 성취해나가는 의지를 다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데에만 집착하는 어른들
 
원인을 알 수 없이 자꾸만 실신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정의로운 경찰관이 되고픈 이 아이는 화가 날 때마다 정신을 잃곤 하였습니다. 아이 이야기를 듣고 추려보니 그렇습니다. 아이에겐 주의력 문제가 있어서 학교 성적이 늘 바닥이었는데, 하필 그에게 공부를 너무나 잘하는 형이 있는 겁니다. 아이 부모는 매번 이 둘째 아이의 성적을 두고 격하게 싸웠고, 이를 보는 아이는 자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헤어지고 자기를 버릴지 모른다는 크나큰 죄책감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아이는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여기게 되고, 화처럼 ‘나쁜 감정’을 드러내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인식을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마다 정신을 잃었던 것인데요. 자꾸 ‘착한 아이’가 되어야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에, 자기 감정을 인정하기 더욱 어려웠을 겁니다. ‘착한’ 경찰관이 되고 싶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공부, 중요합니다. 생각하는 방법을 깨치고 지혜롭게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려면 공부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못하는’ 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아이가 뭔가를 성취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잘하지 못한다는 데만 집착하지, 뭘 어려워하는지에 주목하지 않고 뭘 잘하는지를 볼 줄 모릅니다.
 
성적 안 나오면 살기 어려운 사회라 하니, 아이가 공부 못할 때 양육자가 너 닮아 그러니 나 닮아 그러니 싸우는 심정도 오죽 그럴까 싶습니다만, 좌절한 아이에게 괜히 죄책감마저 심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아이가 왜 공부를 어려워하는지를 알고, 아이가 원하는 것과 잘 하는 건 무엇인지 탐색하는 길에 있습니다.
 
지능을 구성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 획일화된 교육제도를 비판한 영화 <핑크 플로이드의 벽> 1982 
지적 능력이 저하돼 있거나 추상적 사고 능력이 더디게 발달할 때 공부하기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흔히 ‘아이큐’하면 머리가 좋다, 나쁘다 하는 식으로 단일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지능은 어려가지 구성요소가 포함된 집합적인 개념으로, 특정 지능검사에 의해 전문가가 측정하고 해석합니다. 지능은 절대적인 수치가 아니며, 수치가 지능의 전부라 할 수도 없습니다.

 
지능을 구성하는 요인으로는 주의력을 비롯하여, 기본 상식이나 어휘력, 추상적 사고 능력, 산수능력이 있고, 사회적 상황에서의 판단력 및 대처 능력,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성에 대한 이해도 포함됩니다. 시지각 자극에 대한 구성 능력, 본 것을 동작으로 민첩하게 전환하는 능력도 들어갑니다.
 
지능이 낮다고 해서 이 모든 능력이 다 없는 것도 아니고, 지능이 높다 해서 이들을 다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들쑥날쑥 한 경우도 많고, 한 가지 요인이 다른 요인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누구나 잘하는 부분도 있고 못하는 부분도 있고, 한가지 문제로 잠재력이 방해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공부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 중 일부는 표준화된 지능검사로 측정했을 때 일반적인 수준보다 낮은 수준에 해당되는 지능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이해력이 더디고 굼뜬 듯한 인상을 주어 괜히 혼나는 아이들입니다. 특히 추상적 사고에 곤란을 겪을 때에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수업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워하므로 학습이 지연될 때가 있습니다.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 낙인, 오랫동안 고통으로 남아
 
한편, 지능과 관련 없이 주의집중이 어려워 공부하기 힘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걸 견디지 못하고, 참고 인내하기 무척 힘들어 하며, 쉽게 주의 분산되거나 딴생각에 빠집니다. 게임이나 놀이에는 집중을 잘 하는데 공부만 안 하니까 매번 야단만 맞습니다.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건 결코 아니란 걸 납득해야 합니다. 하려 해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혼나기만 해서, 이중에 이차적으로 우울이나 자존감 문제와도 싸워야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십대 때에는 하고 싶은 일이나 꿈 없이 의욕 없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흥미 없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 귀퉁이 가득 만화를 그리고, 집에 와서는 게임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매우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사람으로 자라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를 조절하지 못하거나 인내력이 부족하고 어딘지 아이같이 미숙해 보이는 모습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어른이 되어서도 어릴 때부터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로 찍힌 것에 대한 고통 또한 남는다는 점입니다. 무얼 해도 실패했다는 기억으로, 우울은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지능이나 주의력 문제가 개입될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심리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고 제때에 적절한 치료를 통해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하게 진단을 받게 되면 ‘공부 못하고 인내심 없는 못된 아이’에 대한 낙인이 풀리기도 하고, 양육자가 더 잘 이해하게 되면서 아이의 좌절감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물론, 진단을 받는데 요구되는 전문적 절차를 정확히 거치지 않은 채 성급히 진단받는 일 또한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겠습니다.
 
올라간다는 목적만으로 산에 오르게 해선 안돼
 
한편, 심리적인 문제로 공부가 힘든 아이들이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으로 공부를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심리적 고통을 다뤄주면서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부를 멀리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불행하게도,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를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공부 잘 하는 게 제일이라고 주입 받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점수를 목표로 삼아 공부 잘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올라간다는 목적만으로 가파른 산길을 쉬지 않고 탈 때, 한 고개 너머 또 다른 고개가 이어짐을 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히는 경험을 말입니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계절마다 다른 산길의 정취를 느끼는 방법을 일러줄 때, 아이들은 저마다 귀중한 경험을 가지고 자기만의 산봉우리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주변에 학업으로 크게 성취한 사람이 있는 경우, 아이의 중압감은 배가 됩니다. 공부 잘하는 형제자매가 있을 때, 자기는 공부 못해서 양육자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라이벌 의식이 관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압감이 성취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공부를 잘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드는 방식으로 대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영문을 알 수 없이 쓰러지고, 어디가 아프고, 십대가 되어서는 양육자나 선생이 정한 규칙을 위반하는 행동을 통해 묵직한 중압감을 해소합니다. 이것은 좌절할 때 일어나는 강한 분노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공부 문제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상황에서도 자기 감정이나 욕구를 인식하고 조절하거나, 문제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을 저해합니다. 양육자나 선생이 아이의 행동만을 보고 낙인 찍기보다는, 그 분노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이해할 때 서로 소통하거나 아이의 잠재력을 키워줄 기회가 늘 것입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할 때, 실패하면서 드는 좌절감을 받아들이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공부는 하기 싫고 하지 않을 것이 됩니다. 하기 싫고 하지 않을 공부에 집착하면, 개인의 소망이나 꿈으로부터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할’ 공부와 ‘하고 싶은’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자기 길 알아서 잘 찾아갈 겁니다.
 
학교공부를 해야 한다면, 아이가 스스로 적절한 목표를 세우고 하나씩 성취해가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안내하는 게 좋습니다. 실패할지라도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서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값지다는 사실을 일러준다면, 아이들은 행복하게 공부할 줄 아는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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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mesis 2008/12/29 [19:21] 수정 | 삭제
  • 그 본인이 결정하게 되는것을 성인이 되기 전에 깨닫게 해줘야 되는데 현재의 세태는 학생들이 무조건 획일화된 성공만을 추구하게 만드네요. 예를 들면 대학가서 대기업 취직해서 아내 얻어서 결혼, 자식 낳고 책임을 다하며 잘 산다. 이게 인생의 전부인 것인양 보여주고 있는 사회는 좀 더 각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 mimesis 2008/12/18 [14:23] 수정 | 삭제
  •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장 잘하는 '부모짓'은 많은 맛보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자전거도, 야구도, 축구도, 독서도 어느 정도는 해봐야 그 맛이라는 것이 느껴지니 결국 보면 본인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간 셈으로 보입니다. 부모가 뭐라던 간에 본인이 결정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
  • 레베까 2008/10/01 [17:40] 수정 | 삭제
  • 하지만 일단 산에 오르고 나서 목적을 찾으라는 식이죠.
    다들 그래요. 또 그렇지 않으면 목적을 이룰수 없어요.
    뭐든간에 하고 나서, "그래 이게 내 목적이었어."라고 하라고 하죠.
  • 정훈 2008/07/24 [05:58] 수정 | 삭제
  • 공감이 가는 글 잘읽었어요 제아들놈이 예비고삼인데 주의집중이 부족한 탓인지 학업에
    어려움을 보이고 있어 부모입장에서는 답답해요 본인도 힘들겠지만...전문심리검사는어떤것이 도움이 될까요 고견을 구합니다 참고로 부산에 거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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