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식민지 시대 도래할까 우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⑨

조보영 | 기사입력 2008/07/31 [01:06]

에너지 식민지 시대 도래할까 우려

[기획연재] 착한 에너지, 나쁜 에너지⑨

조보영 | 입력 : 2008/07/31 [01:06]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영국의 NGO 옥스팜(oxfam)은 2007년 “아시아와 태평양은 사라지는가?”(Up in smoke? Asia and the Pacific)라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아시아, 특히 동남아 지역 국가들과 태평양 주변의 섬나라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같은 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참석한 영국의 경제학자 스턴경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폭풍우에 섬 국가들이 취약하며, 인도네시아가 그중 가장 심한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지구를 지탱해주는 심장과도 같다.   ©출처: walhi


그런데 지금 인도네시아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해수면 상승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선진국들 사이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떠오른 바이오에너지로 인해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파괴되는 열대우림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거예요”
 
필자는 지난 달에 2주간 바이오디젤의 원료가 되는 팜 농장의 대규모 확장과 열대우림 파괴와 관련하여 인도네시아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그곳에서 본 것은 선진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운영하는 우리나라 대관령목장의 몇 배에 달하는 팜 농장과, 그 팜 농장으로 피해를 받고 있는 농부들, 어부들 그리고 저임금으로 노역을 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요. 예전부터 물고기를 잡고, 숲에서 열매를 채취하는 것이 내가 아는 삶의 전부예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더니 물도 더 탁해졌어요. 분명 우리가 뭔가를 잘못한 거예요.”
 
열대우림 한가운데 몇 백 년간 조상들의 삶을 이어오며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강 상류의 팜 농장 때문에 일어난 모든 환경의 변화를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 인도네시아는 20년 사이에 산림 파괴 1위 국가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다.     ©출처: Asia Cleantech


함께 조사를 진행했던 현지 NGO(Sawit Watch) 활동가인 제프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보았지?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정말 순진해. 무언가 잘못되면 다 자기 탓을 하거든. 그게 너무 속상해. 나는 국가주의자는 아니지만 저런 순진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도네시아를 생각할 때마다, 참 불쌍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어. 350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살아왔는데, 독립을 한 지금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착취의 역사 속에 살고 있어. 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돈이라는 미끼를 가지고 정부를 매수하고, 저 순진한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는 거야.”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은 지구를 지탱해주는 심장과도 같다. 그러나 현재 인도네시아는 어느 나라보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상황이다. 이 사실은 인도네시아에 팜 농장을 만들고 확대해 나가고 있는 선진국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지구의 심장을 도려내고, 제3세계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를 위한 대안에너지인가?
 
유럽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기후변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기존 화석에너지의 한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그 결과 이들은 세계인들에게 자랑할 만한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을 가지게 되었고, 온실가스 감축량 면에서도 어느 정도 희망적인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수송 분야에 있어서 화석연료를 바이오에너지로 전환하면서, 눈에 띄는 성과를 가져왔다.
 
분명 수송 분야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은 문제이고, 바이오에너지는 그 대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이 바이오에너지가 ‘어디서’ 생산되느냐 역시 큰 문제이다.
 
바이오디젤의 경우, 아무리 유럽 국가들이 자국에 대규모로 유채를 심어 대체한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럽국가에서 재배되는 유채만으로는 수요량을 채울 수 없다. 또한 유채는 바이오디젤의 원료로는 다른 작물들에 비해 생산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작물이다. 결국 그들은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혹은 자국의 더 쾌적한 환경을 위해 생산효율이 높은 작물이 필요했다. 현재 재배되는 바이오디젤의 원료 작물 중 가장 효율이 좋은 것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재배되는 팜이다.
 

▲ 인도네시아의 대규모 팜 농장은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가운데 확대되고 있다.     © 환경정의 제공


팜은 유채보다 5배 정도 높은 효율성을 가지고 있어, 같은 1 헥타르 땅에 심어도 유채가 1리터를 생산한다면 팜은 5리터를 생산할 만큼 차이가 난다. 때문에 팜은 유럽 국가들에서 수송용으로 쓰이는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대안으로 적당한 재배 작물이었을 것이다.
 
팜이 재배되는 많은 나라 중에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1600년대 초반부터 약 350년 동안 네덜란드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유럽국가들 특히 네덜란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도네시아는 산업활동을 하기에는 매우 편리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이미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이 비누나 화장품, 식료품 재료로 쓰기 위해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팜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노력이 필요 없이 기존의 팜 농장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농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1870년 재정된 토지법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주인이 확인 되지 않은 땅은 모두 “비어있는 땅” 내지는 “버려진 땅”으로 지칭되며 국가의 소유가 되었다. 대부분은 힘없는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토지 소유권이 없는 원주민들을 “버려진 땅”에서 내쫓고, 다국적 기업에게 개발권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팜 농장이 넓어질수록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의 크기는 작아졌고, 열대우림이 작아질수록 수백 년 자리를 지키고 살던 원주민들의 삶도 소리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선진국들은 겉으로는 자신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결국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책임을 잘 포장하여 제3세계 국가들에게 선물하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의 에너지 전환을 위해 인도네시아가 떠안게 된 문제
 
동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고민은 경제회복과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런 인도네시아에 유럽의 다국적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세금 수입 두 가지를 약속했고, 팜 농장 주변 지역사회에는 학교와 같은 복지시설 등을 약속했다. 인도네시아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약 20년이 흐른 지금, 인도네시아는 팜유생산 세계 1위 국가다. 경작지도 200만 헥타르에서 730만 헥타르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가의 세수가 증가한 것 외에 기업이 약속한 일자리와 복지 등의 약속은 미루어지거나, 반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팜 농장을 더 확장하기 위해 산림을 파괴하고, 열대우림 지역의 원주민에게 돈을 주고 방화를 조장하여 “버려진 땅”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20년 사이에 산림 파괴 1위라는 불명예를 얻게 되었고, 산림 파괴로 인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 된 것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받게 되었다.
 
팜을 통해 산업을 만들고, 이윤을 창출하고, 자국의 에너지 전환을 이룬 선진국들이 후진국들의 이 같은 과실을 조장한 덕분에 제3세계 국가가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장의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즉 시장경제, 자본주의 체제에서 합당한 돈을 주고 허가를 받았다면,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식이다.
 
이렇듯 선진국과 다국적기업들은 시장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등에 업고, 한손에는 거대자본을 다른 한손에는 자국의 경쟁력을 쥐고, 제3세계에 지구온난화라는 자신들의 과오를 전가하며 또 다른 이윤을 안겨주는 에너지 식민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 대규모 팜 농장을 만들기 위해 벌목이 진행되고 있는 열대우림     © 환경정의 제공


대규모 팜 농장을 통한 바이오디젤 생산은 중단돼야
 
선진국이 시도했던 바이오에너지는 분명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우리는 바이오에너지 생산 이면의 부작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부작용이 약자에게만 전가되지는 않는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어마어마하게 진행된 팜 농장 확대는 인도네시아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쌀 경작지마저 팜 농장으로 바뀌어 졸지에 일터를 잃은 농민들, 강 상류에 들어선 팜 농장에서 흘러나오는 오염물로 인해 병들거나 변이된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어부들, 농약에 중독되어 피를 토하는 아이들, 경작지 감소로 인해 쌀 가격이 급격히 오르자 싼 식량을 찾아 줄을 서는 여성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온가족이 팜 농장에서 적은 임금을 감수한 채 일하는 광경들. 이것이 지금 인도네시아의 풍경이다.
 
생태적으로 보아도 인도네시아는 암울하다. 산림 파괴로 인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로서, 지금까지 외국의 팜 기업들에게 받아들인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써야할 형편이다. 또한 해마다 멸종되는 생물 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보존해야 하며, 이를 위해 막대한 돈을 부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두 가지 이질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동전의 양면이 누군가에게는 앞면만, 누군가에게는 뒷면만 보인다면 그것은 부정의한 것이다. 지금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대규모 팜 농장이 들어선 대부분의 지역을 보면, 이로 인해 혜택을 받는 대상과 피해를 당하는 대상이 너무도 뚜렷이 다르게 나타난다.
 
현재 선진국들의 소비수준에 맞추어 모든 국가들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혹은 선진국들이 지금의 삶의 수준에서 조금도 뒷걸음치고 싶지 않다 한다면, 우리는 에너지로 인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소리도 없고, 피도 흐르지 않는 조용한 전쟁이 되겠지만, 착취를 당하는 나라의 국민들 다수는 비참하게 살아갈 것이다.
 
때문에 21세기 에너지의 문제는 더 풍요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인권의 문제이다. 선진국들은 그들의 삶을 위하여 제3세계 시민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에너지정치센터(blog.naver.com/good_energy)와 일다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관련한 기사를 공동으로 기획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필자 조보영님은 환경정의 초록사회국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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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또 2008/07/31 [13:16] 수정 | 삭제
  • 그저 막연히 '대체 에너지'만을 생각하고 있던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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