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낮부터 해질녘까지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이충열(32)씨. 미술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페이스페인팅 대상은 대부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고, 그림의 소재는 항상 고양이다. 아이들에겐 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한다. “건강이 중요할까, 돈이 중요할까? 하고 물으면 다들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죠. ‘그런데 그걸 모르는 할아버지가 있어. 위험한 쇠고기를 수입하잖아’ 하고 설명해요.” 5월 말부터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니, 80일이 되었다. 그런데 충열씨는 정작 처음엔 촛불집회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물 사유화나 의료민영화 문제가 더 크다고 봤거든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광우병이 무서워서 나온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참여해보지도 않고 비판하다니…. 직접 나와보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하필 처음 나온 날, 물 대포를 맞았다. 그리고 자신보다 어린 여성들과 작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물을 피하면서, 시민들의 연대의식을 함께 느끼면서, 그 동안의 무관심이 미안해졌다고 한다. 느끼는 것만으론 부족해
지난 80여일 간, 촛불은 그를 많이 흔들어놓고 변화시켰다.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겉으로만 사람을 보고 판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철에서 만나면 피하고 싶어지는 모습의 ‘아저씨’들에 대한 혐오감도 상당히 사라졌다고 한다. 집 주변의 편의점보다 작은 가게를 이용하게 되고, 친구들이 스타벅스에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말하게 되고…. 또, 자신의 블로그에 촛불집회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촛불 참여하면서 매체를 못 믿게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알리려고 블로그에 쓰게 된 거죠.” 더 큰 변화는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나는 ‘느끼는 스타일’의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신문도 보게 되고, 책도 읽게 되고,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더 많은 걸 알아야겠구나 싶어요.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죠.” 사실 그는 이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전공과는 무관하게 힙합동아리 활동을 하며 춤만 추었다고 할 정도로, 몸짓과 느낌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미술을 시작한 지는 불과 5년 남짓한 시간이라서 “시각적 표현”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촛불의 경험을 통해 ‘나는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 어떤 길로 갈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고 한다.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어요. 디자인 쪽이 자신이 있는데, 하고 싶은 것은 그림이거든요. 요즘은 내가 미술활동가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업을 하려면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표현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더 접근할 겨를이 없거든요. 어쩌면 선배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이후에 집 앞에 또 다른 한 마리가 눈에 띠였고, 올해 3월에도 개 한 마리가 충열씨를 따라왔다. 유기견 세 마리는 화장실을 못 가리지만, 버려진 상처가 큰 아이들이라 혼을 낼 수가 없다고 한다. 졸업하면 서울에서 살 필요가 없으니, 마당이 있는 집을 얻어 풀어놓고 키울 계획이다. 일주일에 하루는 이 다섯 아이들을 씻기고 미용해주느라 시간이 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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