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장년층 레즈비언들의 삶과 진솔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 ‘그루터기’ 회원들의 글을 연재합니다. ‘그루터기’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35세 이상 여성이반모임입니다. –편집자 주]
2000년 10월, 처음 그루터기에 가입했을 때가 생각난다. 그날은 그루터기 가을산행이었는데, 주일이라 고민이 생겼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주일예배에 빠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민하기도 전에 이미 가겠다는 약속을 얼떨결에 해버리고 난 이후라서, 왠지 약속을 지켜야만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주일예배를 빠지고 산행에 나섰다. 그루터기 모임 회장님의 첫 모습은 목소리에 비해 몸집이 작고 조용하고 친절하고 예의가 있었다. 회원들도 이런 분위기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고서 모임장소에 간 나는 몹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그 모습은 마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시커멓고 우중충한 모습들로 보였는데, 약 7~8명 정도의 사람들이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저 그룹이 그루터기예요?” 하며, 순간 갈등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우리학교에 이반 커플이 넷 있었는데, 모두 잘생기거나 예쁘게 생긴 친구들만 있어서 난 레즈비언들은 모두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만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 모임에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 해는 유난히도 단풍이 곱게 물든 해였다. 산에 오르면서 색색 찬란한 단풍에 넋을 잃고 쉬었다 걸었다 반복하며 회원 두 명과 이야기하면서 무사히 산행을 하고 내려왔다. 하산할 때쯤엔 처음에 봤던 우중충한 충격에서 벗어나 다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집에 올 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회장님의 마지막 매너에 완전 긴장도가 사라졌다. 그날 노래방에서 봤던 그루터기 회원들은 마치 자유를 찾아 탈출에 성공한 주인공들처럼 보였다. 한 맺힌 목소리로 부르짖는 노래 소리에 콧등이 찡하기도 했다. 그때 만난 회장님과 나는 지금까지 파트너로 살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회장님의 그 매너는 의도된 것이었다.) 그날 이후 8년 동안, 그루터기 정기모임에 참석하면서 크고 작은 일과 행사가 있었다. 간혹 슬픈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공동체를 이루어 살자’ 말이 씨가 되다
당시에 나는 동성간 혼인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파트너와 안정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모색해보았다. 집에 대한 공정증서나, 보험회사 수익자지정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둘의 관계를 알리기도 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회원들에게 틈만 나면 이야기하곤 했다. 실제로 공증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즈음 내 나이는 30대 후반이었고, 대부분 회원들의 나이가 30대 중후반으로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쉽게 누군가 나서서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회원들이 지금 40대 중후반이 되어간다. 결국, 공동체 이야기를 시작해서 실제로 행동으로 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 것 같다. 올해, 그루터기에서는 약300평정도 고구마농장을 시작했다. 농장을 하게 된 과정은 이렇다. 몇 년 전부터 파트너가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나도 함께 2년 정도 일을 했다. 땅이나 전원주택을 보러 갈 때에도 손님보다는 난 미래 나의 삶의 터전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던 것 같다. 2007년 10월 어느 날, 땅을 보러 갔을 때였는데 마을 안에 있는 넓고 긴 땅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서 그루터기가 주말농장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리하는 동네이장님으로부터 주말농장 허가를 일차적으로 받아냈다. 이장님은 ‘장에 가서 사다 먹지 뭘 힘들게 농사를 지을 거냐’면서 ‘집이나 팔고 땅이나 팔아 돈이나 벌어요’ 했다. 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땅을 임대해준 것에 대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일단 땅 임대가 되고 나니 차츰 구체적인 계획이 잡히기 시작했다. 전체 회원들의 동의가 필요한 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다. -회원들이 모두 찬성할 것인가. -무엇을 심을 것인가. -농사 수익금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회원들의 참여방법은 어떻게 할 것인가. -농사 경험이 없는 우리들인데, 누가 앞장서서 농사를 이끌 것인가. 2008년 2월 정기모임이 있던 날. 주말농장 형식의 농사이야기를 하자 회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대부분 찬성이었고 모두들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회의를 하는 도중에 벌써 300평 농장은 온갖 야채들로 꽉 차있었다. 아~ 드디어 생각했던 일들이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공동체 주말농장이 시작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수익금에 대해서나 참여방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모두 흥분 상태로 들뜬 회의를 했다. 공동체를 꿈꾸는 우리들, 행복한 노후를 만들어 내기 위해 균형 잡힌 계획으로 꿈을 현실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정겨운 그루터기 농장에서의 6개월 드디어 2008년 4월이 되어, 고구마 농사를 시작했다. 땅을 고르고 쓰레기를 줍고 퇴비를 뿌리고 고구마를 심고 차츰차츰 고구마 자라는 모습을 관찰했다. 우리 회원들은 마치 아기를 키우듯 고구마 순을 심어놓고 일주일도 안되어 이놈들이 살아날까? 죽을까? 비가 안 오면 기우제라도 지내야 하나? 하면서 관심이 온갖 농장에만 꽂혀있었다. 어떤 회원은 농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하는 등 그날 이후 우리들의 이야기와 대화의 초점은 완전 농사에 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서로가 나누는 대화의 초점이 달라진 결정적 시점이 되었으니, 아~ 위대한 고구마 농사여~ 회원들은 땀을 흘리고 긴 고랑 사이를 오가며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여기 저기서 하하 호호 하면서, 정겨운 그루터기 농장은 현재 6개월이 되어간다. 농사짓는 동안 우리들에게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회원 간의 친목이 더욱 돈독해진 점을 들 수 있겠다. 신입회원이 가입하면 가까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곳에서는 함께 일한 하루가 6개월 된 회원처럼 느껴지게 만들기도 한다. 함께 땀 흘리고 밥 먹고 씻으면서 정이 생기기 때문이다. 신입회원들 중엔 이미 귀농연습을 하고 있는 회원도 있었다. 이들과 만나서 대화하고 마음을 여는데 1시간도 채 안 걸렸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우리는 6개월간 이렇게 우정과 자매애를 쌓아 갔다. 고구마 수확을 3주 정도 남겨두고서, 얼마 전에 고구마가 정말 열렸을까? 하고 회원 몇 명과 함께 캐보기로 했다. 처음엔 호미로 캐도 캐도 나오지 않더니, 툭~하고 고구마 한 개가 걸려 올라왔다. 와~ 고구마 한 개에 환호성을 쳤다. 넓게 팠는데도 딸랑 한 개가 올라오자, 올해 수익은 기대하지 않기로 하고 일단 초기 농사연습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공동체에선 때로 희생도 즐거움이 되고 나눔도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만드는 건, 우리들의 단합하게 만드는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거대한 수확을 떠나서 우리가 땀을 흘리고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앞으로 나의 바람은, 산이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땅에 아기자기한 집 몇 채와 황토찜질방, 운동공간, 산책길, 4계절 야채 심을 텃밭, 상담실, 강당 등을 만들어 독거 솔로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누구와’ 이루어 살 것인가. 공동체는 무엇보다 성격이 좋아야 한다. 또 구성원들 간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책임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신뢰로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려면 열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 전술이 있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인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40대 후반이 되어도 이반으로서의 고민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 차별은 여전하다. 다만 그 고민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을 뿐이다. 처녀가슴으로 벌렁대며 무서워했던 20대와는 달리, 이젠 그 시선에 조금 뻔뻔해졌다는 사실과 아줌마 근성이 아마도 나의 내성을 키운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점점 초로의 중년이 되어가고, 노인이 되어가고,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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