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것이 올해 2월 [그림] 코너를 신설하면서 여성주의 저널의 색깔에 맞는 작가들을 추천 받았는데, 그 명단에 그가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 시로. 시로(30)님은 익숙한 사람인데도, 나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낯선 느낌도 잠시. ‘공부하는 시로’, ‘아르바이트 하는 시로’, ‘노는 시로’, ‘글을 쓰는 시로’. 거기서 나아가 ‘그림 그리는 시로’의 이미지가 나란히 배열되자, 이제 나의 머리 속에서 그녀를 설명해주는 말 1순위는 단연 ‘그림 그리는 시로’가 되었다. 빈 곳을 채워가는 재미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물어봐야지, 하고 시로님을 만나 “왜?”라는 질문부터 던졌더니 싱거운 이야기만 되돌아왔다. “누구나 그렇듯이” “낙서하듯” 그릴 뿐이라고. 누구나 낙서를 하고 누구나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닌데, 그녀는 자신의 그림생활이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십대 시절엔 이애림이나 이토 준지 같은 만화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그림들을 모아서 보고, 따라 그리기도 했다. 특히 <이나중 탁구부> 캐릭터는 지금도 그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나 보다. 시로님의 신발이나 연필꽂이통 등에서 관련 캐릭터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하얀 단화에 캐릭터와 색을 입혀 자신만의 운동화로 만드는 기술은 무척 부러웠다. 그뿐 아니다. 노트북, 식탁, 벽지, 욕실의 타일과 변기뚜껑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들이 장식하고 있다. 그림이 시로님에게 있어서 ‘생활’이란 것을 알게 해준다. “신발을 샀는데 디자인을 바꾸고 싶어서. 벽이 허전하길래 뭘 붙이고 싶어서” 그린 것이라고 설명하며, “채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작은 스케치북에 담은 自我 그런 그가 <일다>에 그림을 연재하게 된 것이 처음 해보는 ‘공식적인’ 작업이라고 하니, 그 사실이 더 의외다. 한 달에 한번 그림을 연재하기로 하고서, 작은 스케치북을 샀다. “일주일 내내 그렸어요.” 아, 그러고 보니 처음 작품인 <우울증>(2월 29일자)을 전송하고서, 그때도 이 말을 했던 것 같다. 일주일 내내 작업한 것이라고.
“허술하게 하면 (그림에) 다 나오더라고요. 아이디어가 없거나 바쁜 시기에 그린 그림은 티가 나요.” 시로님의 작품은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서 딱 무슨 그림인지 알아 맞추긴 어렵다. 그래도 특유의 감성이 흐르고 있고, 작가의 색깔이 강하다는 것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일명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일다>와 잘 들어맞는다고 우스개로 평했지만, 사실 그의 그림 속엔 재미가 있고 위트가 있다. 최근 작인 <꿈의 대화>(11월 10일자)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하는 것이 많이 힘들다는 생각”을 하던 중에 나타난 이미지라고 한다. “그때그때 상태에 따라 (모티브가) 떠올라요. 두 번째 그림 <눈물>(3월 24일자)은 애들이 토막살인 당한 사건이 났을 때 그린 거예요. 마음이 아팠어요.” 정체성이 통합되는 인생을 살고 싶어 시로님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예쁘고 밝은 것보다는 어둡고 무거운 것에 관심이 더 끌린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밝은 면도 물론 보죠. 우울한 이미지를 그린다고 해서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싫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들 속에 아름다운 게 있어요. 그런 걸 좋아해요. 밝은 것은 오히려 부담스럽고 거짓말인 것 같고.” 시로님이 원하는 인생은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솔직한 삶’이다. “가족에게 딸로서, 학교에선 학생으로, 직장에서 맡은 바 직책으로” 각각의 정체성이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인생) 방향이 있으면, 그것에 맞춰서 환경을 만들어가야겠구나 싶어요. 최근에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요.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지만, 소비지향적인 문화를 따라가게 되더라고요. 나도 자꾸만 욕심이 생기고…. 그런 건 잘 조절해야겠죠.”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친구들과는 달리, 시로님은 최악의 경제난과 실업난 속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다가 가족들 생계를 위한 몫까지 챙겨야 하는 처지다. 그런 그에게, 그림의 재능을 살려보라고 권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았다. 재능이 있는 만큼, 어릴 적에도 미술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학원비가 비싸서 포기했다는 시로님. 지금도 아티스트에 대한 꿈과 동경을 품고 있지만, 그 길로 (직업적으로) 접어들지는 않겠다고 한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정말 좋아하는 것은 좋아하는 그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는 게, 그가 최근 몇 년간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깨닫게 된 바다. 올해 시작된 그림 연재가 시로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분명한 건 그의 분신인 작품들이 남는다는 것이고, 작품을 감상하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이며, 그에 따른 역사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를 지켜보는 과정이 기대된다. 물론, 시로님의 즐거운 그림생활 역시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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