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강조할수록 ‘힘의 역학’만 돋보여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이미정 | 기사입력 2008/11/25 [13:52]

사랑을 강조할수록 ‘힘의 역학’만 돋보여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이미정 | 입력 : 2008/11/25 [13:52]
▲ 체코 뮤지컬 <클레오파트라>가 한국버전으로 공연되었다.
체코 뮤지컬 <클레오파트라>가 김장섭 연출에 의해 라이센스화되어 공연되었다. 2002년 프라하에서 초연된 오리지널버전은 2002~2003년 542회 공연을 통해 55만 명이 관람했다고 한다. 몇 년 전 DVD 영상을 관람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2008년 한국버전은 오리지널버전에 비해 5배 정도는 세련된 공연이다. 즉, 작품이 덜그럭거리는 부분은 오리지널버전이 갖고 있는 한계들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오히려 원작을 이렇게까지 때 빼고 광내서 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국 라이센스 팀에게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의상, 안무, 배우, 연출 등등의 모든 부분이 월등하게 훌륭하다. 아마 한국버전의 가장 큰 단점은 유니버셜 아트센터라는 극장일 것이다. 이 극장은 공연장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만큼 열악해서 뮤지컬 티켓 값이 아깝게 만들 지경이다.
 
일관성 없는 여주인공의 캐릭터
 
이 뮤지컬은 스토리상 굉장히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를 비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면과 장면에서 캐릭터의 일관성이 없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바로 전 장면에서 클레오파트라는 순결하고 아름다운 소녀로서 바른 왕이 되겠다고 말하는데, 다음 장면에서는 시저를 유혹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로마에 입성해서 이집트 여왕이라며 당당하게 말하지만, 결국 그녀가 내세우는 것은 시저의 아들을 낳았다는 점이다. 안토니우스에게 호통을 치면서 모든 거래가 이집트에게 유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고작 하는 일이 원로원을 자극하는 것이다.
 
긴 이야기를 압축해서 비약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클레오파트라가 하는 행동이 이상해 보인다는 게 문제다. 뮤지컬을 본 관객들은 모두들 되묻게 된다. 왜 클레오파트라가 주인공인데 시저와 안토니우스가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일까. 이집트의 여왕은 분명 클레오파트라인데 어째서 로마의 권력이 훨씬 세 보이는 것일까. 공연을 보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바로 이 서사의 간극이 역설적으로 클레오파트라 신화의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 로마 권력을 상징하는 시저의 모습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수식어들 -세상을 사로잡은 미녀라느니, 요부라느니, 현명한 군주였느니 하는 말들은 결국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그녀에 대한 평가는 모두 시저와 안토니우스의 관계에서 유래한다. 관객들은 뮤지컬에서 <난 왕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클레오파트라를 보게 된다. 강한 군주가 되기를 바라는 그녀의 염원이 다음 장면에서는 시저에 대한 유혹으로 바뀌는 것에 당황하게 된다. 전략적으로 시저를 이용했다고 보기에는 시저가 가진 권력이 너무 크고, 시저의 연륜이 깊다. 즉, 세상물정 모르는 스물 몇 살의 앳된 여자의 치마폭에 놀아나기엔 시저는 너무 똑똑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봐도 시저에게 클레오파트라가 간택된 것이지, 시저가 넘어갔다고 보기에는 힘들어진다. 심지어 시저는 로마의 원로인 부인 절반이상과 놀아났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의 어머니 시르빌리아는 재혼을 거절하면서까지 카이사르의 여자로 남고 싶어했다는 말까지 있다. 그래서 클레오파트라가 시저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클레오파트라는 정부였던 거고, 정부란 결국 공적인 위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리이다.
 
남자에 의해 인생이 좌우되는 클레오파트라
 
뮤지컬 내에서 얼마나 자주 클레오파트라의 ‘아내’로서의 모습이 강조되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아들을 낳았고, 시저에 의해 로마에 초빙되며, 시저가 그녀를 드높임으로 인해서 찬양 받는다. 시저가 월계관을 쓰고 부인으로서 클레오파트라를 옆에 세운다거나 화려한 목걸이를 선물하는 장면은 이들 관계의 본질을 보여준다.
 
▲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뮤지컬의 본래 의도는 시저가 클레오파트라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클레오파트라도 진심으로 시저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관계를 무대 위에서 행동으로 나타내보니 역설적으로 힘의 역학 외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를 걷어내고, 인물의 행동만 보여주게 되니 진실이 오히려 또렷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의도와 소망과는 달리 그녀는 로마에서 전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저의 애인 중 하나였고, 그것도 시저의 죽음 이후에는 더 이상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집트는 풍요로운 자원을 가진 국가이기에 로마의 모든 의원들이 탐내는 식민지였을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힘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조국이 가진 풍요로움이다.
 
또한, 시저의 죽음 이후 클레오파트라가 부르는 <나 이제 돌아가리>라는 넘버는 클레오파트라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는 의지할 곳을 전부 잃은 미망인처럼 행동하고 있고,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는 아들에 대해 비통해한다. 이 넘버는 나중에 2막에서 안토니우스가 죽은 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할 때 반복된다. 강력한 애인을 가진 여자이기 때문일까. 애인이 죽을 때마다 클레오파트라의 삶은 크게 망가진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슬플 것이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지점은 ‘슬픔의 정도’가 아니라 ‘삶에 타격을 입는 정도’이다.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유
 
이 작품을 보게 되면 클레오파트라의 모든 정치 권력이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뮤지컬에서는 클레오파트라가 시저의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 중요하게 다뤄지지만, 막상 시저의 죽음 후에 그 아기는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 볼만하다. 안토니우스와의 러브 라인을 위해서 그 아기가 등장할 수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안토니우스와의 관계 역시 시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결국 클레오파트라의 위치가 폭로된다. 안토니우스는 본 부인 풀루비아와 이혼을 하고, 옥타비아와 결혼하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그것이 실수였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정식 부인의 위치를 갖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위치는 시저의 경우와 달리 보다 대등했고, 어쩌면 이 둘은 커다란 야심을 갖고 로마권력을 재편해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이들의 정략을 하고 있는 셈이다.
 
▲  뮤지컬 <클레오파트라>
둘의 관계를 강렬한 사랑으로 표현하고 싶은 뮤지컬은 다시 한번 삐그덕거리게 된다. 클레오파트라의 거짓말로 인해 안토니우스가 자살하게 되는 장면을 사랑의 힘으로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거기에 깔려있는 것은 거짓과 모략이다. 설사 안토니우스는 순정을 바쳤다고 할지언정 클레오파트라가 진심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뮤지컬에서는 그 부분을 건너뛴다. 안토니우스는 <별이 되어 사라지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죽어서라도 클레오파트라 곁에 있기를 바라며 자결한다. 그가 죽게 되는 이유가 판세의 역전을 바랬던 클레오파트라의 도박이었다는 것은 나레이터의 말을 통해 짧게 부연될 뿐이다.

 
전반적으로 뮤지컬은 삐걱거리며 흘러간다. 장면이 비약하는 것은 긴 이야기를 담아서라기 보다는 뮤지컬이 의도하는 맥락과 다른 부분들은 생략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략을 해도 여전히 이야기는 삐그덕거린다. 남녀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로 끌고 가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흐릿하다. 아마 클레오파트라에게 부여된 수많은 찬사와 수식어들이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굉장히 과장된 수식이었고, 부추겨진 소문이었다.
 
세기말의 미모로 지중해를 뒤흔들었던 것 같은 클레오파트라의 유명세를 파헤쳐보면 결국 재벌아들을 애인으로 두었기에 사모님 대접을 받는 아가씨와 다를 바가 없다. 그녀를 혹평하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정황과 한계가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 한계 내에서 자신의 욕망을 관철하려고 했던 움직임을 봐야지, 시대한계를 무시하고 그걸 뛰어넘었던 것처럼 평가한다면 클레오파트라를 오해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블 캐스팅인 김선경과 박지윤 모두 나름의 클레오파트라를 소화해냈다. 김선경의 경우, 배우가 의도적으로 카리스마적인 여왕을 연기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내에서 묻힌다. 작품의 플롯자체가 클레오파트라를 강한 군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탓이다. 캐릭터가 끊임없이 자기는 왕이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가 가진 허구성이 쉼 없이 폭로된다.
 
그런 의미에서 박지윤 캐스팅은 몹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름답고, 연약하며, 보호 본능을 일으키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시저와 안토니우스의 감정이 해석되는 게 아니라 배우가 가진 이미지로서 납득된다. “저렇게 예쁘고, 연약한 여자가 여왕을 한다고 했으니 도와주고 싶었겠지” 라는 식의 설득 말이다. 어쩌면 실제 역사도 그게 진실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지기도 한다.
 
◎ 공연개요
공연일시: 2008년10월 15일 ~ 11월 30일
공연장소: 유니버셜 아트센터
연출: 김장섭
번역/각색: 전재호
편곡/음악감독: 장소영
안무: 서병구

 
- CAST -
클레오파트라: 박지윤/김선경
시저: 김법래
안토니우스: 민영기
옥타비아누스: 최성원
플루비아: 서정현
옥타비아: 이진희
주피터: 김정균
이시스: 이주현

 
www.musical-kleopat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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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per Troupers 2008/11/26 [09:38] 수정 | 삭제
  • 뮤지컬의 매력에 빠진 관객들이 늘어나서 국내뮤지컬계가 들썩이는 걸 즐거워라하고,
    창작작품이 많아지면 더 좋겠지만, 대중적 인기몰이가 검증(작품성이라기 보단)된 외국뮤지컬들을 1년에도 돈만 있음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난 뮤폐는 못되지만.
    옛날 뮤지컬들에 대해서, 캐릭터들의 전형성(?)은 별수없다 생각하고 그랬습니다..
    지금도.

    큰 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뮤지컬들은 세련된 캐릭터를 가공(재해석)해서 기분은 편한데, 약간 매력 떨러지는...
    디즈니뮤지컬 <아이다> 재밌죠.

    체코서 만든건데 2002년에 나온 것치고는 여성캐릭터가 뻔하네요. 여성캐릭터가 뻔하다는 건 결국 남성캐릭터도 뻔하다는 얘기. 한국으로 오면 더욱 뻔한 거 아닌가,,아쉽다.
    뮤폐들 대부분 여자인데. 관객존중 입장에서 재해석하는 작가들 신경 좀 써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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