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사회 도처에 널린 ‘빈곤’ 가능성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국가의 빈곤대책으로 시행된 지 10년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 및 보완책을 제시하는 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필자 재인님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만나온 현장경험을 토대로 글을 기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사회복지 현장에서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이하 수급권자)들을 만나면서 접하는 두 가지 상이한 모습이 있다. 하나는 “저 여기 오는 거 주변 사람들 다 모르거든요” 라며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선입관으로 인한 ‘사회적 배제’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로서도 이 점을 매우 중요시하며, 이들의 사생활 보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번에 제가 동사무소에서 알아봤는데 수급자가 될 수 있대요!” 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다. 자신의 경제형편이나 사회적 낙인을 고려했을 때 ‘수급권자에서 벗어났다’거나 ‘탈빈곤’, ‘탈수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할 법하지만, 오히려 수급권자 스스로 ‘수급권에서 탈락된다’거나 ‘떨어진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이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권자로 계속 살아가면서 빈곤에서 벗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보다 높은 소득의 일자리를 포기하는 이유 최근에 급여가 높고 근로조건이 괜찮은 일자리 채용소식을 듣고, 담당 사회복지사로서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수급권자 몇 분께 채용소식을 알려드리며 응시해 보시라고 권유했다. 그런데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적이었다. “(그 정도의 근로소득이면) 수급자 탈락되는 거 아니에요?”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다. 그분들은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보다는, 지금처럼 최저생계비 이하의 급여를 받는 ‘자활근로’를 하면서 수급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이었다. 더 높은 소득을 포기하고, 수급권을 유지하는 쪽을 택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자활근로를 하고 있는 수급권자 최모씨는 ‘수급권에서 벗어나면 생활이 불안하게 되는 건 자명하다’고 답했다. ‘(수급권에서 벗어나면) 의료비, 공공요금, 학비, 보육료 등 모든 제도적 혜택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따져보면 소득이 웬만큼 높아져도 적자생활이 뻔한 거죠.’ 복지기관에서 도우미로 일하면서, 저소득층 사람들을 오랜 시간 만나온 심모씨도 이에 수긍한다. “수급권에서 벗어나도 돈 쓸 일이 많아져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에요. 또다시 수급권 신청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에요” 라고. 정부보조제도 “all or nothing” 구조의 딜레마 우리 사회보장제도의 딜레마는 바로 수급권 여부에 따른 정부 보조제도의 이른바 “all or nothing” 구조에 있다. 수급권자가 되면 주거, 보육료, 의료비 등을 모두 제공받지만, 근로소득이 생기는 등의 이유로 수급권에서 제외되면 그 모든 것을 다 받지 못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비, 보육비, 학비, 공공요금 등의 정부 보조혜택은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만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수급권자 외의 저소득층에 대한 대책으로, 2006년부터 ‘차상위계층’(최저생계비 대비 1∼1.2배 소득이 있는 ‘잠재적인 빈곤층’과, 소득은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고정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에서 제외된 ‘비수급 빈곤층’을 합쳐 말함) 개념이 등장했지만, 그 범주가 크지 않고 아직 인식도 낮은 수준이다.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이외의 사람들은 정부의 공공부조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수급권자들 중에선 일과 근로소득을 통해 빈곤상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현 상태로 안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면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빈곤층, 즉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제도에 놓인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셈이다. ‘부양의무자’ 규정으로 인해, 실제로는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도 수급권에서 제외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또 실제로는 근로소득이 없음에도, ‘추정소득’ 규정에 따라 수급권에서 제외되는 사람들도 있다. 빈곤의 늪, 사후대책 아닌 ‘단계적 보조정책’ 필요 그렇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대상인 당사자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무직상태인 남편과 자녀 둘의 생계비를 책임지고 있는 차상위계층 이모씨는 “개개인 가족상황을 잘 모른 채 일괄적으로 제도를 들이대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다. 이씨는 “일대일 사례관리를 통한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라며 가구 상황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원하고 있다. 아들이 군대 제대 후 휴학을 하자 수급권이 소멸되어버린 김모씨는, 갑작스런 생계급여 중단에 황망해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저는 수급권이 어떤 시스템인 줄도 제대로 모르고, 자활근로가 뭔지도 몰랐어요. (남편 사후) 일자리 알아보러 동사무소에 갔더니, 자활센터에 가보라 해서 자활근로를 하게 된 거에요. (아들이)휴학하면 생계비 끊기는 줄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휴학 안 했죠. 이렇게 생계급여가 끊기면, 또 언제나 빈곤에서 벗어나요?” 김씨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는 빈곤에 대한 ‘사후대책’이 있을 뿐, 탈빈곤을 위해 가구별로 계획성 있고 체계적인 지원정책이 없다는 것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수급권자라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으로 수급권에 머물고자 하는 분열적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곁에서 바라보는 사회복지사로서 꼭 제안하고 싶은 것은, 빈곤계층이 수급권에서 벗어난 후 ‘단계적 보조정책’의 필요성이다. 수급권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의료, 교육, 주거, 고용 등의 분야에서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하는 사회보장책이 필요하다. 빈곤에 대한 사후약방문 대책으로는 ‘빈곤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체계적인 ‘예방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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