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지훈이와 도서관 다니기①

정인진 | 기사입력 2009/12/14 [00:03]

도서관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지훈이와 도서관 다니기①

정인진 | 입력 : 2009/12/14 [00:03]
어! 어느새, 시계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차비를 했다. 오늘은 놀토고, 놀토마다 지훈이와 도서관에 가기로 약속을 한 터였다. 오늘로 두 번째다.
 
지훈이의 어려움을 그냥 지켜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공부하는 걸 너무 싫어하니, 보충수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도서관에 데리고 다니면서 책을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안든 것은 아니었지만, 지현이 이후 도서관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걸 가슴 깊이 깨달은 뒤라, 그도 주저되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지훈이는 책 읽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과연 재미있게 도서관을 다닐까 저어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매주는 나나 지훈이에게 모두 힘들 것 같고, 1시간 반도 아직은 무리겠구나 싶어, 놀토마다 1시간씩 도서관에서 책을 읽히고 싶다고 지훈이 어머니께 제안을 드렸다. 조금 집중력이 생기면, 1시간 반까지 늘릴 거라는 계획도 밝혔다.
 
도서관에 다녀서 무엇보다 좋은 점은, 10권 가량의 책을 빌려 아이 손에 쥐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서관에 있는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읽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동안에 난 동화책을 무작위로 꺼내 읽으며, 좋은 동화라고 판단되는 책들을 고른다. 그렇게 고른 것을 아이 손에 들려 보낸다.
 
별도의 돈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도 지훈이 어머니께 말씀해드렸다. 앞서 도서관에 데리고 다닌 준영이나 지현이 역시 돈을 받고 한 일은 아니다. 이건 내가 단지 공부방선생님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교육자로서 하는 여러 가지 활동 중 하나다. 돈벌이로서가 아니라, 교육적인 관점에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도와줄 만한 것이 생각나면, 조금씩 시도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개인보충을 좀 해주면 좋겠다 싶은 아이는 짬을 내어 보충을 해주기도 하고, 현준이처럼 다른 팀에 끼어서 할 수 있다면, 그런 방법도 써본다. 도서관을 데리고 다니는 건 가장 심각한 경우의 대처방안이다. 지난 7년 동안 도서관에 데리고 다닌 아이는 총 세 명이었고, 그 중 준영이를 제외한 두 명은 별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지훈이와 도서관에 다니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훈이가 잘 따라 줄지 자신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세 명 중 한 명에게만 효과가 있었을 뿐인 그 일을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 지훈이가 나아진다면 네 명중에 두 명이 성공하는 것이고, 그때 두 명은 50%에 해당하니 한번 해볼 만한 모험이 아닐까 생각했다.
 
2주 전, 처음 지훈이와 도서관에 갔을 때 아이의 태도는 처음치고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10~15분 간격으로 내게 와, 갈 시간이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 건 충분히 참을 만했다. 어머니와 도서관에 올 때는 ‘어린이자료실’에 얌전하게 있지 않고 밖을 휘젓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자료실 안에서 얌전히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입구에서 화장실 가는 걸 제외하고 자료실 밖을 나가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기는 했지만,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잘 따라주는 것만도 기특할 따름이었다.
 
오늘도 지훈이는 늦지 않고 제 시간에 약속장소에 나타났다. 그리고 몇 분 거리에 있는 시립도서관에 가기 위해 공원을 가로질렀다. 오늘은 지난번보다 더 빨리 자료실을 누비며 책을 골라 와서는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하는 그를 보면서, 공연히 흥분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훈이는 지난번과 똑같이 오늘도 10~15분 간격으로 언제 가느냐고 물었고, 또 한번은 너무 더운데, 밖에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표정을 아주 무섭게 짓고는 “절대로 안돼! 재킷을 벗도록 하지” 했더니, 체념하는 표정이다.
 
1시간이 가까워오자,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며 재촉하는 지훈이 손에 이끌려 우리는 도서관을 나왔다. 밖은 겨울날씨답지 않게 푸근하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비탄 총알을 함께 분주하게 주우며, 공원을 다시 가로질렀다. 그렇게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나눠 든 가방을 모두 지훈이 손에 쥐어주고 인사를 했다. 무거운 책들을 기꺼이 짊어지고 뒤돌아 걷는 아이를 잠시 쳐다보며, 지훈이가 잘할 것 같은 예감이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니어야 할 텐데 생각했다.

(※ 교육일기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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