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바뀌면서, 시민단체들은 심각한 재정난과 함께 단체역할도 크게 축소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기능이 NGO 본연의 역할임에도, MB정부가 이를 전혀 수용하지 않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단체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성부와 여성단체 간 협력관계도 ‘옛말’ 2008년 촛불시위 이후, 정부는 자의적 기준으로 ‘불법시위단체’를 규정하면서 시민단체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설정했다. 지금까지 여성부와 협력관계를 이어온 여성단체들도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 초, 여성부는 한국여성의전화가 신청한 ‘데이트폭력 예방사업’을 ‘2009여성단체 공동협력사업’으로 선정했지만, 보조금 지급을 앞두고 취소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10일 법원이 여성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여성부가 보조금 교부조건으로 <확인서>를 요구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이번 승소 건을 계기로,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사무처장을 만났다. 정부와 여성단체 간 관계의 지각변동과 현재 여성단체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그리고 한국여성의전화의 활동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이번에 여성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것은, 시민운동 전체에 의미가 있는 일이다. MB정권 들어와서 단체활동에 어떤 제약이나 압력을 받고 있는가? “여성부 프로젝트는 이미 실무자워크숍에도 참여했고, 보증금 실행계획서도 낸 상태였다. 교부단계에서 갑작스럽게 확인서를 제출하라고 한 것이다. 우리는 작년에 여성부 공동사업 우수단체로 표창까지 받은 단체다. 그런데도 광우병대책회의에 포함됐다는 이유로 <확인서>를 요구하면서, 기획재정부 지침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 단체는 감사원의 감사도 받았다. 바뀐 국회법에 따라 그렇게 한다고 했다. 이미 완결된 사업이니 행정안전부에 물어보라 했지만, 결국 감사 준비를 해야 했다. 정부가 ‘불법’단체니, 보조금 비리니 하며 언론에 교묘하게 흘리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을 싸잡아 ‘흠집내기’를 하는 바람에 떨어져나간 회원들도 있다. 감사를 받는 단체라는 이유만으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불법’, ‘감사대상’ 같은 용어로 훼손된 이미지를 어떻게 복구해나갈 계획인가. “그럴 때일수록 더 공세적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정부가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 우리 단체는 불법이 아니라 정부정책에 대해 반대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알려나가는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여성폭력 상담단체들에게 ‘국가복지정보시스템’을 사용하라고 한 것도, 결국 유보되긴 했지만, 인권단체보고 인권을 유린하라고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내담자 정보를 넣어서,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유출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지금의 정부가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해 개념이 없다는 것에 대해,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회원들이 더 나서서 문제 제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들과 더 많이 만나야 할 것 같다.” -여성부와 여성단체의 관계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피부로 느끼게 된 변화가 있다면? “여성폭력에 대한 정부정책의 변화가 매우 중요하다. 법제도 개선이라는 부분에서, 우리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최소한 이야기는 해야 한다. 물어도 보고. 그런데 정권 바뀌면서 (소통이) 없어졌다. 이번에 여성부가 여성폭력 관련시설 평가를 앞두고 추진단을 꾸린다고 해서,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자문을 해주겠노라 했지만, 굳이 ‘오지 말라’고 했다. 반면 여성부가 여성단체에 협력을 요구한 것은 ‘저탄소 녹색성장’ 어쩌구였다. 정부가 하는 일을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동원하려는 인상을 받았다. 여성부는 어찌 보면 여성단체가 만든 부처인데,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보며 애증을 느낀다. 정부가 딱하다. NGO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정권이 바뀐 이후, 단체의 활동방향도 바뀌었는지.
법과 제도가 있어도, ‘여론화’가 되지 않으면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토론회 한 번 하고 말 일이 아니라, 온라인 활동도 늘리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 지부단위들과 함께 지역여성운동에도 주력한다. 소모임을 통해 지자체 단위 정책모니터링이나,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주어야 한다. 활동을 통해 자기 변화가 오도록. 그리고 또 한 가지, ‘제도화’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확인서>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정부는) 자기들이 돈 주니까 관여하려고 한다. 제도화가 우리를 옥죈다. 앞으로는 상담소 운영에 있어서도, 지원을 못 받아도 자립해 갈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최근 은평구 녹번동에 ‘내 집 마련’을 했다. 건물을 짓느라 부채도 있을 텐데 재정자립도는? “회비와 지부회비를 합해 35%다. (여성의전화는 전국적으로 9천명 가량 회원이 있다) 상담소와 쉼터는 정부 지원으로, 다른 재정은 명절음식이나 여성수첩 등 물품판매, 후원의 밤 행사를 통해 충당한다. 26년 만에 안정적인 공간을 얻었는데, 유지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고 부채도 있다. 전국단위 지부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고, 활동비도 못 주는 곳들이 있다. 지금 같은 재정사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의 가치를 가지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또, 이 공간을 활용해서 은평구 지역사업을 해보려고 한다. 이곳을 통해서 영화 상영도 하고 동네사랑방, 인문학강좌도 하면서 지역기반을 만들어가려 한다.” -앞으로 한국여성의전화의 주요 활동계획을 소개해달라. “상담소와 쉼터가 있으니까, ‘여성주의 상담’을 강화하는 활동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여성주의 상담이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원칙을 살리고, 당사자 임파워링 중요하다. 여성폭력에 관한 정책도 많이 변화하긴 했지만, 아직도 ‘가정폭력이 사회적 범죄입니다’ 라고 외쳐야 하는 형편이다. 처벌법도 검토할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검도 유단자가 아내를 때려 9주의 상해를 입혔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타인이라면 구속 감이지만 상담조건부기소유예(상담을 받는 조건으로 기소유예)가 되었다. 문제가 있지 않나? 또, 2010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운동도 해나갈 예정이다.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패배감에 젖기 보다는, 왜 이번 선거가 중요한지, 회원대상 교육프로그램도 하고 지부들과 함께 각자에 맞는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이다. 한편으로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E.L.F 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활동가들이 지치지 않고 활동을 통해 성장하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성찰프로그램을 통해 조직문화도 개선하고 소통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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