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크리스마스, 산타의 선물

아버지의 선물③

정인진 | 기사입력 2009/12/21 [10:22]

그 해 크리스마스, 산타의 선물

아버지의 선물③

정인진 | 입력 : 2009/12/21 [10:22]
일곱 살 때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 며칠 전 갑자기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간난 아기인 남동생은 어머니와 병원에 있었고, 직장과 어머니 간호로 아버지는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올망졸망한 우리 세 자매만 덩그러니 집에 남아 여러 날을 보냈다.
 
방만 나서면 툇마루나 부엌은 얼음장처럼 추웠다. 손을 호호거리며 눈 쌓인 마당을 종종걸음으로 왔다갔다했던 기억이 어렴풋한데, 뭘 하러 거길 오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참 추웠다는 느낌만은 또렷이 남아있다.
 
그 이후에도 겨울은 늘 추웠지만, 그때가 인상적인 건 꼭 추워서만은 아니었던 같다. 지금 생각하면, 춥다고 느꼈던 그 감정의 실체는 불안감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아프고 아빠는 얼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포. 그래서 무섭고 슬펐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동생들을 돌본다고 해봐야 얼마나 돌볼 수 있었으련만, 그래도 주인집 아주머니로부터 밥 짓는 것을 배워 동생들을 먹인 사람은 바로 언니였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처음으로 언니는 쌀을 씻어 허리 깊은 아궁이에 냄비를 걸고 밥을 지었다. 그러나 첫 번째 지은 밥은 새까맣게 숯덩이를 만들고는 언니도 나도, 밥을 못 먹게 된 것보다 엄마한테 혼날까봐 가슴을 졸였다. 그리고 다시 어찌어찌 밥을 지어서는 우리 자매들은 깔깔거리며 그 밥을 먹었다.
 
바로 그 전 크리스마스에 어머니는 색종이로 방을 꾸며 주시고 특별음식도 만들어 주셨더랬다. 장식이라야 색종이로 엮은 고리들을 주렁주렁 벽에 매단 것이었고, 또 특별음식이라야 칼국수가 고작이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발음마저 하기 힘든, 크리스마스라는 이런 즐거운 날이 세상에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해, 어머니는 입원을 하셨고 우리들은 혼자 남았다.
 
꼭 한 번으로 그런 멋진 크리스마스가 끝났다는 것도 우리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다. 방을 멋지게 꾸며 주고 맛난 음식을 해 줄 어머니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실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산타 할아버지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오실 거라고, 그러니 꼭 산타할아버지를 보고 자자고 언니와 약속을 하고 늦도록 TV를 보다가, 난생 처음으로 참으로 황홀하고 신기한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는-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발레였던 것 같다-방송을 보다가 그 지루함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절로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는데, 일어나보니 아침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들 머리맡에 커다란 사탕 두 봉지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산타 할아버지가 왔다 갔다고 사탕봉지를 들고 펄쩍펄쩍 뛰었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집 잘 보고, 울지 않아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 거라고 입을 모아 재잘거렸다. 그날은 달콤한 사탕만큼이나 행복했던 크리스마스 아침이었다.
 
물론, 그 산타 할아버지가 아버지였다는 것은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지만, 몇 해가 지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또 어머니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그 뒤에도 여전히 크리스마스 특별요리라며, 만두 같은 걸 빚어 우리를 즐겁게 해 주셨지만, 그 해 그 아침이 내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늘 크리스마스가 되면 그날 아침을 떠올린다. 슬픈 아이들에게 사탕 두 봉지는 아주 큰 격려며, 희망이었다.
 
나이가 한참 든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날 그 아침처럼 산타의 즐거운 선물을 꿈꾼다. ‘잘 살고 있다고, 참 잘 하고 있다’고 나를 격려하는, 꼭 그 옛날처럼 내 머리맡에 그렇게 희망과 격려의 선물이 놓여 있기를 꿈꾸며, 또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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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마스에 2009/12/25 [23:50] 수정 | 삭제
  • "잘 살고 있다고, 참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선물을 꿈꾸는 삶.. 을 다시 꿈꿔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