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기획으로, ‘녹색일자리’에 관한 기사를 연재한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경제와 녹색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국내에선 정부 중심의 녹색뉴딜계획 등 극히 제한된 논의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녹색일자리를 둘러싼 국내외 다양한 이론과 실천을 소개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방향을 제시한다. 필자 문임수진님은 '환경정의' 회원이다.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한 친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니, 회사 전 직원의 90%이상이 남성이라고 했다. 그나마 10%가 채 안 되는 여성들은 올해 초 입사한 신입사원이다. 그녀는 풍력발전 제어시스템 개발에 관여했는데, 풍력발전에너지업체와 미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여성실무자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의 이야기는 ‘재생가능기술’ 분야의 여성취업현황에 대해서, 그리고 최근 논의가 확장되고 있는 ‘녹색일자리’ 분야에서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남성다수 산업 분야에 기초한 ‘녹색성장, 녹색일자리’
얼마 전에는 2013년까지 1조1천억 원을 투입해 ‘녹색인재 10만 명’을 양성한다고 공표했다. 녹색분야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2년까지 13개의 녹색전문대학원 (녹색에너지, 융합소프트웨어, 그린스쿨)을 지원하고 기후변화, 해양에너지, 풍력 빛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녹색기술관련 특성화대학원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녹색경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녹색금융, 녹색경영, 탄소배출권 거래 등 서비스 분야의 전문인력을 육성하고 21개 마이스터 고등학교의 녹색전문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외에 녹색 직업능력개발을 확대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LED, 친환경건축 등에 특화된 직업훈련센터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녹색으로의 가치전환’보다는 녹색을 담은 기술개발, 산업육성 등 ‘성장’이 주가 된 정책이다. 또 녹색일자리 정책을 보면 녹색일자리의 영역을 에너지, 건설(건축), 교통, 엔지니어링 분야 등으로 한정하고 있어서, 녹색의 가치를 폭넓게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대표적인 녹색일자리 보고서 <Green Jobs- Towards decent work in a sustainable, low-carbon world>를 보아도, 녹색일자리의 내용을 풍력, 태양광 등 대안에너지 공급, 건물분야, 교통, 먹거리와 농업분야, 기초산업, 산림관리 등의 분야로 정리하고 있다. 즉, 기존에 남성이 중심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산업분야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녹색경제에 ‘여성참여’ 끌어낼 수 있는 정책 필요하다 10월에 국제노총에서 발행한 <녹색일자리와 여성노동자> 보고서 초안을 보면, 녹색일자리 분야별 여성고용비율은 아주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제조업 24%, 건설부문 9%, 엔지니어링 서비스 12% 정도다. 국내 산업별 성별-사업체 규모별 고용비중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여성이 주로 일하고 있는 분야는 3차 산업 서비스 분야(68%)인데, 녹색경제, 녹색일자리 정책에서는 등한시되고 있다. 새로운 녹색경제, 녹색일자리 계획에서 여성의 시각을 반영하거나, 여성에 대한 고려가 별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국제노총의 보고서는 농업과 에너지-건설부문 등 녹색경제의 경영, 서비스 분야에서 많은 일자리 창출을 예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녹색일자리는 건설, 제조업, 엔지니어링의 분야에서 기대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녹색경제에서 여성은 의도하지 않게(unintentionally) 배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전기분야에서 여성고용은 20% 정도 추산되는데, 대부분 경영과 운영 관련 분야에 한정돼있다. 기술직은 6%정도이며, 정책결정 등 업무분야에서는 4%, 최고경영에 있어서는 1%미만의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따라서 에너지, 건설 등 녹색일자리 창출이 예상되는 기존 산업분야와, 새로이 창출되는 녹색경제의 일자리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고려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건설 분야에서 30%이상의 녹색일자리가 공급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뉴욕 시는 2005년부터 개발자, 건설업자, 노조와 함께 여성을 위한 10% 견습채용, 대규모 사업은 15% 여성고용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을 맺고 추진하고 있다. 뉴욕의 사례는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노동조합이 여성고용이 취약한 분야에서 어떻게 여성고용을 창출하고 지원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방식 또한 강제적인 집행이 아닌, 이해 당사자의 합의로 도출된 정책이다. 그만큼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도 있다. 가정과 사회서비스, 교육 분야를 주목하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홍승아 연구원은 <젠더연구> 2009 여름호에서, 녹색일자리 논의가 “여성과 가족이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생활세계, 생활공간, 지역사회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배려는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한살림을 비롯한 생활협동조합의 경우, 고용되는 여성비율이 높은 편이고 녹색경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농업과 유통분야의 ‘녹색일자리’에 대한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고, 이러한 일자리가 더욱 장려되어야 하며, 괜찮은 일자리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한편, 녹색일자리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또 하나의 부분으로 ‘교육’분야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에는, 환경교사가 되고 싶어 교직을 이수하고 청소년센터 등에서 환경교육 자원활동을 몇 개월 하더라도, 티오가 거의 없어 다른 길을 모색하는 이들이 많다. 정부의 녹색일자리 정책에 ‘교육’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기존의 기술중심가치를 반영하는 정책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술관련 인재개발이나 마이스터 고교에 한정한 녹색교육정책이 아니라, 녹색의 철학과 가치를 사회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어야 한다. 교육 분야는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분야 중 하나다. 기존에 대학 등에서 배출되는 환경교육교사와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환경강사 등 ‘녹색 전환을 위한 가치와 철학’을 확산시키는 일자리에 대해 지원이 필요하다. 녹색의 가치를 아는 여성들의 경험이 반영된다면 에너지 분야, 건물분야 등 기존의 녹색일자리를 확대하는 것과 ‘산업의 녹색화’는 분명 정책적, 실질적 접근을 통해 확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여성’에 대한,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녹색성장 정책이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녹색’의 가치를 살리고 사회전환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바른 먹거리 운동과 에너지절약 실천 면에서 보다 높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경험이 필요하다. 여성들의 실천적인 시각이 녹색일자리 논의의 장에 합류하게 될 때, 기존의 기술중심적 녹색일자리 논의와는 다른 차원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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