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수 없는데

발달장애 자녀에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인가?

정인진 | 기사입력 2010/03/02 [02:42]

부모가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수 없는데

발달장애 자녀에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인가?

정인진 | 입력 : 2010/03/02 [02:42]
건강상의 문제로 요양을 하고 있는 선배를 뵈러 산사에 갔다가 발달장애 청년을 한 명 만났다. 23세인 신체 건강해 보이는 청년은 자폐라고 했다. 그는 어머니와 그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좁은 아파트에서 아들과 24시간 함께 보내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 이곳으로 오셨단다.
 
그 청년은 어머니와 둘이서만 생활해 와서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관계 맺을 줄 모르고, 자기 맘대로 되지 않으면 어머니에게조차 폭력을 행사하는 등 자기감정을 조절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나요?”라는 내 질문에, 선배는 그렇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요즘도 이런 부모가 있나 싶다. 장애아가 사회에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제 역할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교육에 정성을 기울이는 부모들만 보아왔기에, 나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과 관련해 장애인을 위한 복지가 잘 되어있지 않다. 특별교육을 할 수 있는 센터는 비용도 많이 들고,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어 보내기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찾으려고 애쓴다면 비영리단체에서 운영하는 비교적 저렴한 교육기관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아이의 평생을 책임질 수 없는데, 부모가 죽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살죠? 함께 죽어야 하나요?”
 
나의 원색적인 표현에 선배도 그 청년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아이를 감당하기 힘들어 산사로 들어온 어머니의 처지는 백 번 이해되고 남는다. 그러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청년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 산 속에서 산다면, 그는 더욱 더 세상과 소통하기 힘들어질 것이 뻔하다.
 
프랑스에서 만난 장애인 형제
 
유학시절, 세 들어 살았던 집의 주인인 미리암에게는 장애인 형제들이 있었다. 그의 남자형제 넷 가운데 둘이 발달장애를 갖고 있었는데, 첫째 베르트랑은 자폐였고 셋째 벤쟈맹은 지능지수가 많이 떨어졌다.
 
당시 40대 중반이었던 벤쟈맹은 약 7세 가량의 지능과 정서상태를 지녔지만, 매우 유쾌한 성격이 장점인 사람이었다. 그는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차를 대접하는 일을 맡아 했고, 미사 시간에 헌금 바구니 돌리는 것도 그가 즐겨 하는 일이었다. 함께 간 음악회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과자봉지를 들고 뛰어 다니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을 때는 진지하게 앉아 끝까지 경청할 줄도 알았다.
 
그는 독립해서 한 장애인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에는 부모님을 만나러 왔다. 나는 그를 보면서, 부모와의 이런 거리 두기가 그들의 관계를 더욱 유쾌하고 담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한편 베르트랑은 자폐가 심해, 80이 넘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전혀 보이지 않고, 가족들이 모이는 파티자리에서도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의 바르게 모임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베르트랑이 빠지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음악을 좋아해, 지역 주민센터에서 마련한 음악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베르트랑은 직업이 있었다. 그는 공원에서 쓰레기와 낙엽을 치우는 일을 했다. 베르트랑이 일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배려해 주었다는 걸 알았다. 프랑스 정부는 정말 대단하다는 내 평가에, 그들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들이 더 젊었을 때, 장애인을 둔 부모님들은 시위를 정말 많이 했어요. 우리 아이들도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얼마나 요구했는지 몰라요.”
 
꿈을 가지고, 독립된 생활을 준비할 수 있는 권리
 
필요한 것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는 법이 없다. 집요하게 요구하고 강하게 주장했을 때라야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장애아들의 부모들과 장애인들의 끈질긴 요구가 있었기에, 프랑스에서 지금과 같은 장애인 정책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앞서, 장애인들이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제 몫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어찌 직업을 갖거나 부모로부터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기회는 준비된 사람들에게 온다. 또, 꿈은 꿈꾸고 그것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온다. 물론,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 부모님들은 아이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산사에서 만난 청년의 부모님을 통해, 아이에게 무엇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지 잘 모르는 부모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안타까움이 너무 컸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 자폐 청년의 폭력성이나 욕구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잘못이거나 무능력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제대로 교육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 부모의 몫을 제삼자가 이러쿵저러쿵 참견할 바 아니지만, 그저 자기 자식을 보듬고 사는 것이 잘 키우는 것이 아니라는 걸,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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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리 2010/03/04 [17:09] 수정 | 삭제
  • 한국에선 장애아를 둔 부모는 내가 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애타는 심정을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사회가 그렇게 만든 탓이죠.. 모든 게 다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식으로.. 아니면 시설에 맡겨버리는 식으로...

    요즘은 부모가 장애아를 집안에만 있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예전에는 감춰두다시피 하는 가족들도 있었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해서 그랬나봐요. 그래서 장애인들은 어릴 적부터 가정에서부터 자존감을 잃은 채 성장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워야합니다...
    인간은 가족 울타리 안에서만 성장해선 안되죠..
    가족중심의 문화도 수그러들었으면 좋겠고, 장애에 대한 인식도, 제도에서도 많이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 2010/03/03 [07:40] 수정 | 삭제
  • 글쓰신 분의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저는 직업상 장애인(아) 관련된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고, 특히 어머니들과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를 요구하기보다는 부모로서의 내 역할(내 아이에 대한)에 힘겨워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비단 '장애부모'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예전부터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분위기니까요... 더군다나 아이한테 장애가 있을 때 '엄마'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은 감히 폭력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잘못 키워서... 엄마가 일을 해서... 엄마가 냉정해서...). 장애인 일자리가 생겼을 때 준비된 사람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그 교육 또한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함이 마땅하겠지요. 위의 글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10/03/02 [15:35] 수정 | 삭제
  • 한국사회가 경제적인 위치나 상황에 비추어서 '장애' 문제는 정말 후진적인 것 같아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지난 몇 십년간 뛰어와서, 이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너무 한쪽 방향으로 잘 먹고 잘 살아진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위의 jude님 얘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는 글쓴 정인진 씨의 생각도 일면 맞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가족이나 이웃 중에 장애인이 가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힘든 점이 많을까요?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정부정책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인식이라는 것도 형편없지요. 오로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있는 걸 생각하면, 하루 24시간 장애인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벅찰텐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인진 씨의 말도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장애아동을 내 품에 안고 힘겨워하는 부모들도 있는 것 같아요. 가족들의 시각도 좀 바뀌어야 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구요.
  • Jude 2010/03/02 [15:19] 수정 | 삭제
  • 부모가 공공단체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보듬고 살기만도 척박한 현실을 아시나요? 이 글을 읽으니 마치 장애아동의 교육이 오로지 부모가 요구하지 않음에서 기인하는 것만 짚은 것 같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시각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