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인도네시아 아체④
걸어서 여섯 시간. 그래도 그 수 밖엔 없다고 신발을 고쳐 신는데, 바람이 잠깐 잦아든다. 배에 올라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배를 뭍에 가까이 대면 다시 빠져나가기 어렵다 해서 너도나도 가방을 머리 위까지 쳐들고 바닷물을 가르며 걷기 시작한다. 물이 가슴까지 차오는 곳에 겨우 멈춰 서있는 배에 가방을 던져 싣고 낑낑 매달려 올라탄다. 키가 작은 아인과 휘뜨리는 아무리 발을 제겨디뎌도 자꾸만 바다에 잠겨 짠물을 한참 먹었다. 가까스로 배에 올라타 젖은 옷을 꾹꾹 짜는데, 바닷가에서 학교 아이들이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떠나오는 것에만 골몰하느라 미처 돌아보지 못했었다. 슬라맛 띵갈(Selamat tinggal), 뜨리마 까시(Terima kasih). 잘 있어, 고마워. 소리치며 오래도록 손을 마주 흔든다. 큰 아이 써니도 돌아왔다. 마을 사이를 오가던 스태프들을 통해 잘 지낸다는 얘기만 간간이 얻어듣고, 얼굴을 보기는 헤어진 뒤 처음이다. 검게 그을린 아이 얼굴이 탱글탱글하다. 일본 언니 따라다니며 보조교사도 하고, 인도네시아 오빠들과 장난도 치고, 밥도 해먹고 설거지도 하고, 아주 바쁘고 재밌었다고 몇 마디 하더니 또 어디론가 뛰어가 버린다. 몸 아프지는 않을까, 마음 불편한 일 겪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에 나 혼자 기운 뺀 것이 억울해진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섬에 몇 개 있는 학교의 아이들이 다 모였는데, 말링게 아이들만 못 왔다. 아직도 차가 고갯길을 못 넘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기념식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예행연습을 하느라 진땀을 쏟고 있다. 손님용 그늘 막 아래 앉아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르는데, 긴 옷 입고 히잡 쓰고 그 위에 모자까지 얹고 서 있는 여자 아이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쿠데타 이후 32년 간 장기 집권하였던 수하르또(Suharto)가 물러난 지 어느 새 십여 년, 그러나 인도네시아 이 조그만 섬에선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아직 또렷하다. 기념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역 군사령관이었고, 아이들은 군인들처럼 팔다리 뻣뻣하게 줄 맞춰 걸어 들어와 국기를 높이 걸었으며, 각을 세워 눈썹 옆에 손을 올려 붙이는 것으로 충성을 다짐하였다. 우리를 초대해준 인자한 얼굴의 교장선생님도 오늘은 빳빳한 군복차림으로 나타나 사령관에게 경례를 바친 뒤 우렁차게 구호를 외쳤다. 정치의 흐름이 달라졌다 해도 삶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식당마다 나름의 야채를 섞어 같이 볶아 파는데, 우리네도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이 어딜 가나 있는 이 나시고랭도 맛이 다 제각각이다. 나는 밥 대신 국수를 넣어 볶은 미고랭(mi goreng)을 더 좋아했다. 기름종이에 싸주면 아무데나 들고 다니며 먹을 수 있으니 간소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재미나게도 밥이나 국수 옆에 새우 칩처럼 생긴 과자가 반찬으로 꼭 딸려 나온다. 우리는 밥 먹을 때 과자 먹으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너희들은 밥 먹을 때 만날 과자 먹어서 좋겠다고, 한국 청년들이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프레자는 유엔에서 매달 구호금을 받는다고 했다. 쓰나미로 부모 잃은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용돈이란다. 그런데 녀석은 용돈의 대부분을 담뱃값으로 쓰는 눈치다. 돈도 아깝거니와 아직 어리고 키도 몸집도 작은 녀석이 종일 담배를 물고 있는 게 나는 영 속상하다. 좀 먼 가게까지 걸어가 사탕을 큰 봉지로 사 왔다. 나는 내일이면 아체를 떠나야 하고, 프레자와도 다시 헤어져야 한다.
‘레자’는 가까운 이들이 프레자를 부르는 애칭이다. 딸아이들은 프레자에게 "방(bang)레자~." 하였다. 레자 오빠 하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내 별명은 마마(mama)였다. 처음부터 나는 스스로를 ‘마마 진’이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했었다. 내 새끼 건사하기도 벅찬 미욱한 어미지만, 마음만은 모두의 마마로 살고 싶은 게 내 바람이었다. 언제쯤이나 너른 생각 품어 모든 것들의 마마가 될 수 있으려나 못내 한심스럽긴 해도, 뭐 일단 꿈꾸고 볼 일 아닌가. 나는 세상의 마마로 늙고 싶다. 모두와 헤어질 시간이다. 뜨겁게 살아낸 여름 한 철의 기억을 메고 다들 집으로 돌아간다. 말레이시아로, 대만으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한국으로, 저마다 익숙한 공간을 향해 서둘러 가는 이들이 좀 부럽다. 우리는 이제 동티모르로 간다. 공항까지 따라 나온 인도네시아 친구들 틈에서 프레자가 울고 있다. 꼭 끌어안아주며 줌빠라기(Jumpa Lagi), 하였다. 또 만나. 우리는 또 만날 거야. 울지 마, 레자야. 줌빠라기 레자, 줌빠라기 아체, 줌빠라기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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