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은 아직 그 자리에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동티모르③ 클라라스

진형민 | 기사입력 2010/06/18 [15:58]

무덤은 아직 그 자리에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동티모르③ 클라라스

진형민 | 입력 : 2010/06/18 [15:58]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동티모르③ 클라라스
 
피케케(Pikeke)에 내리고 보니 새벽 한시 반이다. 예정대로라면 저녁 무렵 당도해야 했지만 동티모르 버스는 워낙 제 시간에 도착하는 법이 없다보니 다들 그러려니 한다. 마이크로버스 크기의 낡은 차는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하였다.
 
차 지붕 위에는 산처럼 쌓인 짐 보따리들이 칭칭 매달려 있고, 안에는 정원의 두 배가 넘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구불거리는 길을 덜컹이며 돌아갈 때마다 차가 쓰러질듯 휘청거려 식은땀이 흘렀다. 내리고 나니 이제 살았구나 싶다.
 
▲ 동티모르에는 두 계절 밖에 없다. 일년의 절반은 건기, 나머지는 우기이다. 이 넓은 자갈밭은 건기에 말라붙은 강바닥이다.     © 이황우 
그런데 잠잘 곳이 없다. 좀 일찍 도착했더라면 어떻게든 잠자리를 구했으련만 밤이 깊고 불빛 한 점 없어 다들 막막하게 서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전기를 쓰는 마을이 드물어 사방이 칠흑 같다. 어디론가 뛰어갔던 짤레스가 잠자리를 찾았다고 손짓을 한다. 따라가 보니 경찰서다.

 
경찰서에도 전기가 안 들어오기는 마찬가지라 어두컴컴하게 버티고 선 건물이 으스스하다. 혼자 당직을 서던 경찰관은 아무데서나 자고 가라며 무심하게 군다. 어둠 속을 더듬어 한쪽에 자리를 펴고 잠깐 눈을 붙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곤 피식 웃고 말았다. 유치장 바로 앞에서 잠을 잔 것이다. 철창 너머를 들여다보며 아이들이 “여기가 이 동네 감옥인가 봐” 한다. 다행스럽게도 안에는 아무도 없다.
 
차를 한 번 더 갈아타고 골짜기 몇 개를 지나 드디어 클라라스(Clalas)에 도착하였다.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며 반가운 얼굴을 한다. ‘개척자들’에서 아이들 평화학교를 하러 왔던 곳이라 했다.
 
클라라스는 인도네시아 군에 의해 주민 절반 이상이 학살된 마을이었다. 인도네시아 군인에게 마을 처녀가 성폭행을 당하자 분개한 마을 청년들이 군부대를 기습하였고, 그에 대한 군의 보복으로 하루아침에 마을이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저기 보이는 언덕 너머에도 그 때 죽은 사람들의 무덤이 있다고 했다.
 
말라붙은 강에서 물 긷는 아이들
 
머물 곳이 정해지자 당장 물 끓일 준비부터 한다. 딜리(Dili)에서는 생수를 사먹었지만 도시를 벗어나자 그런 호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 물이나 벌컥대며 마실 수도 없다. 그랬다간 대번에 설사를 할뿐 아니라 물속에 석회성분이 많아 금세 결석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매번 짐 내려놓기 무섭게 물부터 한 솥 끓여 거름망에 걸러두곤 하는데, 두껍게 걸러지는 석회찌꺼기를 볼 때마다 좀 섬뜩한 기분이 든다.
 
동네 아이들을 따라 강가로 물을 길러 갔다. 집집마다 물을 길어오는 일은 아이들 몫의 노동이었다. 건기가 오래 계속되어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날리고 천지사방이 다 버석거렸다.
 
동티모르에는 두 계절밖에 없다고 한다. 일 년의 절반은 건기, 나머지는 우기다. 건기 때는 아이들 물 길러가는 길도 더 멀어진다. 물통을 들고 한참 걷는데 갑자기 길이 끊기고 아래쪽으로 자갈밭이 펼쳐진다. 미끄러지듯이 아래로 내려와 보니 어마어마하게 넓은 자갈길이 위아래로 쭉 뻗어있다. 뜻밖의 풍경이다 싶어 빙 둘러보는데 누군가 말하길 여기가 바로 강이란다. 이 넓은 자갈길은, 그러니까 말라붙은 강바닥이었던 거다.
 
건기는 그냥 ‘비 좀 안 오는 계절’이 아니었다. 족히 삼십 미터가 넘는 너비의 큰 강이 바닥이 보이도록 말라붙는 것, 그게 바로 ‘건기’였다. 물 없는 강을 걸어서 더 내려가니 강바닥에 오목하니 물 고인 데가 있다. 아이들이 부지런히 물을 떠 담는다.
 
▲ 클라라스 마을에 하나 밖에 없는 초등학교의 졸업식날. 졸업생과 선생님들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이황우
클라라스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고맙게도 학교에서 우리를 손님으로 불러 주었다. 동티모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직접 보다니, 내 평생 한 번밖에 없을 행운이다. 그런데 앞줄에 나란히 앉아있는 열서너 명의 졸업생들을 보고는 고등학교 졸업식에 잘못 온 건가 싶었다.

 
졸업생들은 아이들이라 하기 민망할 정도로 성숙한 언니, 오빠들이었다. 다들 나이 들어 공부를 시작한데다 집안일 돌보느라 학교를 띄엄띄엄 다녀 졸업이 늦어진 거라 했다. 이웃 마을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아이는 겨우 서넛,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오늘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식이다.
 
졸업식 축사를 하던 교장선생님이 갑자기 멀리서 여행 온 우리 아이들 얘기를 꺼내셨다. 이 마을에 외국 아이들이 온 게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옆에서 통역해주시는 분 얘기를 들으니, 졸지에 우리 딸들이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러 다니는 한국의 용감한 아이들’이 되어 있었다. 동티모르 말을 알아들을 길 없는 딸아이들은 길게 이어지는 교장선생님 말씀에 눈을 반쯤 감고 졸고 있다.
 
졸업생 부모들이 마련한 잔치 음식을 서둘러 먹고 먼저 일어섰다. 얻어 마신 술 한 잔 때문인지 얼굴이 자꾸 화끈거린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섞은 것처럼 달착지근한 술이었다. 언덕 쪽으로 길을 잡아 걷는다. 사실은 아까부터 언덕 너머에 있다는 무덤에 가보고 싶었다. 무덤은 무서워서 싫다는 ‘한국의 용감한 아이들’을 남겨두고 혼자 언덕을 넘는다.
 
죽은 자에 대한 위무는 십자가에 감긴 하얀 천처럼 바래지고
 
▲ 언덕 너머에는 수십개의 돌무덤들이 누워있고, 나무십자가에는 이름인지 애도의 글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쓰여 있다.   ©이황우
나무가 듬성듬성 서있고 말 몇 마리 느리게 오가는 언덕배기를 넘어서자 하늘 아래 수십 개의 돌무덤들이 누워있다. 무덤가 나무십자가에는 이름인지 애도의 글인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쓰여 있고, 그 위에 감아놓은 하얀 천들이 제 풀에 지쳐 바래가는 중이다. 나는 죽은 자들에게 건넬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다.

 
동티모르 독립 이후 전쟁범죄 특별법정이 세워져 4백 명이 넘는 전범들이 기소되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판이 흐지부지되었다. 간혹 체포영장이 발부되기도 했으나 그 또한 집행되지 않았다. 침략국 인도네시아는 어느 새 경제 개발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 있었고, 동티모르 정부는 전범처리에 대한 미적지근한 입장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클라라스 마을의 나이 든 어르신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학살 당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한 마음으로 독립을 염원했던 사람들의 생각도 시간의 흐름 속에 여러 갈래로 흩어졌고, 언덕 뒤편 죽음들에 대한 위무는 자꾸만 미뤄지는 중이다.
 
밤마다 클라라스 언덕 위로 별똥별이 쏟아져 내렸다. 태어나 그렇게 많은 별똥별을 본 것이 처음이다. 우리들은 아예 언덕바지에 자리를 펴고 누워 별을 세고 소원을 빌었다. 내 옆에 누운 에디가 ‘집에 가고 싶다’ 한다. 에디네 집은 인도네시아 자와 섬이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학교 오가며 살던 에디가 힘이 드는 모양이다. 요사이 몸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겠다고, 나 혼자 생각한다.
 
별똥별이 또 하나 떨어진다. 오늘은 나도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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