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 깜짝이야!" 서 있는 휠체어 장애여성
사고이후 몇 년이 지났고, 3년 전부터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출근해 사무실 안에서는 수동휠체어로 갈아타고 일을 한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는 그녀는 내게 영락없는 중증장애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사무실 자기 자리에서 팩스를 보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옴마, 깜짝이야! 왜 갑자기 서서 그래?"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일할 때나 밥 먹을 때는 물론이요 이동할 때도 늘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녀가 서서 팩스를 보내고 있는 모습이 낯선 나머지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귀신에게 홀린 느낌이랄까. 2년째 함께 일하고 있으면서 자주는 아니라도 그동안 여러 차례 서있는 모습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도 충격과 혼란은 여전하니 이제는 그녀에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척수장애인의 경우 손상부위에 정도에 따라 사지완전마비에서 하지의 부분마비 등으로 장애의 정도가 다양하며 심지어는 걸어 다닐 수 있는 척수장애인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장애에 대한 지식이 전혀 작동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체계에 혼란을 느끼는 이런 경험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어떤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배경, 현재의 생각과 행동 등의 갖가지 정보를 수집하고 나서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으며, 첫인상 혹은 느낌 등이 먼저 접수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나 역시 것이다. 집안에서나 일터에서나 매일같이 장애인과 생활하고 있는 내가 이 정도이니 비장애인은 오죽하랴 싶다. '무서웠다'는 반응- 공포의 대상이 되는 몸 작년에 장애여성의 몸을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는데, 그때 전시 작품 중 '스튜디오'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 사진전을 주최했던 우리들은 이 작품에 ‘방송국 작가로 일하고 있는 장애여성의 일터에서의 자연스런 일상’을 담고자 하였다. 의족을 하거나 긴 바지로 절단된 부위를 감추지 않고 한쪽 다리만 드러낸 채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는 당당한 그녀의 모습은 우리들이 원하던 결과물 바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작품을 보고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자연스러움을 느낀 것이 아니라 ‘너무 무서웠다’는 의외의 반응을 보인 비장애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여성의 활동보조인으로서 예순이 넘은 분이었다. 사진을 통해 ‘장애여성은 의존적이거나 무기력하다’는 사회통념과는 달리, 실제로는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장애여성이 꽤 많고 참여하고 싶은 의지도 강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우리로서는 적잖이 당황스런 반응이었다. 더구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단장애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의 보통의 직장여성과 다를 바 없는 사진을 보고 왜 무서움을 느꼈을까, 한참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물론 무서웠다는 느낌을 표현한 당사자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어봐야 알 일이겠지만 우리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라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었다. 장애가 있는 몸은 친근하고 익숙하기보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때로는 공포스럽게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미지가 아닌, 경험으로 배우는 우리 안의 다름 대부분의 사람은 장애를 경험으로서가 아니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장애인을 사회참여에서 배제하는 환경으로 인해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장애인과 가까이할 기회가 거의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한 한순간에 접한 이미지에 의존해 장애를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그 이미지는 실제일 수도 있고 매체에 의해 한번 걸러진 이미지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한번 한순간에 접한 그러한 이미지들은 실제이든 만들어진 것이든 간에 진짜 혹은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매우 낯설고 때론 충격적이기 때문에 상당히 강렬하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나와 다른 장애가 있는 몸에 대해 거의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마치 다 알고 있는 듯 착각하고 있다가 한 번씩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격리 또는 분리되지 않고 비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 중에서도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섞여 살며 서로에 대해 깊숙이 알아갈 때 장애가 있는 우리들의 몸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될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청각장애 친구가 있어 친하게 지내다 보니 장애가 친근하게 느껴진다거나 오랫동안 장애인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 사람의 장애가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물론 이 말은 장애가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고 해서 장애인을 비장애인으로 보아주는 것이 올바르다는 뜻은 아니다. 어찌됐든 한 사람의 부분일 뿐 전체가 아닌 ‘장애’라는 몸의 조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여러 유형의 장애여성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점에서 내가 수많은 다름을 이해하기 매우 좋은 조건에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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