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나를 위해 웃고 싶다

장애여성 몸 이야기⑭ 무리하지 않기

악녀펑크 | 기사입력 2010/08/06 [11:10]

이젠 나를 위해 웃고 싶다

장애여성 몸 이야기⑭ 무리하지 않기

악녀펑크 | 입력 : 2010/08/06 [11:10]
몸살에 걸려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넌 웃는 모습이 예쁘니까, 항상 웃어야 돼!"
초등학교 때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시던 선생님께서, 내가 서울로 전학 가던 날 당부하신 말씀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모범생이었던 나는 정말로 그러자고 다짐했고, 실제로 그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보다 잘 웃고, 또 밝게 웃는 사람이 되었다.

 
확실히 난 웃지 않으면 B사감만큼이나 차갑고 엄격한 인상이긴 하다. 그렇다고 웃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까지 웃을 필요는 없는데,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속없이 웃고 있었다. 몸살에 걸려도 웃고, 화가 나도 웃고, 실연당해서도 웃었다. 아무리 웃는 얼굴이 예쁜 사람이라도 늘 그렇게 웃기는 힘든 일이다. 그런데 난 강박관념처럼 웃었다.
 
어느 누가 웃는 얼굴을 싫어할까마는, 예의 조언을 해주셨던 선생님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밝게 웃는 장애인의 모습에 기뻐한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밝은 웃음을 보면 세상이 장애인에게도 평등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래서 그 웃는 모습을 보면서 죄책감을 덜어내는 건 아닐까 하는 심술궂은 음모론을 풀어보는 건, 물론 내가 장애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니까 더 열심히 일하라?

▲ 매일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상사에게 인사를 바쳤다. 비명을 지르며 휴식을 외치는 몸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했지만 내 몸 하나 소중히 여기못했다는 자책감만 남았다.  © 푸훗     
"관대한 우리가 장애인인 너라도 어여삐 여겨 채용해 주었으니, 온몸 다 바쳐 은혜를 갚도록 하여라"는 태도로 야근 및 철야를 당연하다는 듯 추가 수당도 없이 시켜먹던 회사에서 3개월간 일한 적이 있다. 일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일거리가 배당되는 건 어느 회사에서나 볼 수 있는 억울한 이치이지만, "장애인이니까 더 열심히 일하라"는 무언의 압력에 기가 꺾인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몸을 혹사해가며 일했다. 좋은 성과를 내면 당연한 거고, 그렇지 못하면 "역시 장애인은 안 돼"란 소리나 듣는, 본전도 못 찾는 게임이었다.

 
저질 체력에 무리해가면서 일해 놓고도 매일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상사에게 "굿모닝/굿애프터눈/굿나잇" 인사를 바쳤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욱 "몸이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러기엔 어쩐지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며 휴식을 외치는 몸의 요구를 무시하고 캔디처럼 씩씩하게, 로봇처럼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난 결국 난 장렬히 전사.......가 아니라 퇴사했다.
 
이런 일을 겪은 장애여성이 역시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지난 6월, 장애여성 리더양성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본 연수를 다녀왔다. 한국과 일본 장애여성 리더들의 대화에서 자립, 연애, 결혼, 임신/출산, 취업 등 사회생활에서 겪는 거의 모든 일이 이슈가 되었는데, 역시나 직장에서 "장애인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문제도 논의가 되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무시해가면서까지 무리해서 일하지는 말자는, 당연하지만 실제로는 지키기 어려운 결론이었다.
 
물론 쉬고 싶을 때 쉬고, 배고플 때 밥 먹는 직장인은 비장애인 중에도 거의 없다. 하지만 생리 때도 아닌데 하루 세 번 조제된 진통제를 챙겨 먹어야 하는 허약한 몸으로, 비장애인 이상으로 일하며 힘든 척도 못하는 기분은 조금 더 서러웠다고 주장하고 싶다. 결국 3개월 동안의 직장생활은 심한 근육통과 위장장애, 불면증, 괴물 같은 여드름 등의 상흔을 몸에 남겼다. 그리고 결국 경력으로도 안 쳐줄 근무기간동안 내 몸 하나 소중히 여기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마음에 남았다.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길 수도

격무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를 살아내기 위해선 어느 정도 몸을 옥죌 수밖에 없는 것 같다. 8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만 있다 보면 허리 및 관절에 많은 무리가 가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 파스를 더덕더덕 붙이고 일한다. 장애여성이건 비장애여성이건 배가 나오면 유죄이므로 식사량도 신경 써서 조절한다. 나 같은 경우 아무리 더운 날씨라도, 몸에 비해 너무 가늘어서 '비정상'적인 다리를 자랑하고 다닐 순 없으니 핫팬츠나 미니스커트 대신 롱스커트나 긴바지를 입는다. 동물처럼 본능에 충실히 살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라면 필요 이상으로 몸을 억압하는 건지 모른다.
 
그리고 웃음이 나오지 않는데도 밝게 웃는다. 입꼬리를 올리는 이 간단한 동작으로 내 기분과 마음상태까지 기만한다. 누구에게나, 생각이란 몸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몸이 아플 땐 저절로 우울한 생각이 든다. 아픈 날이 더 많은 요즘은 별다른 일 없이도 우울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불행하거나 불평불만이 많은 장애인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웃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백화점 직원이나 승무원처럼 "감정노동"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퇴사하고 나서 쉬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결국 내게 달린 문제인데, 다른 사람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해 가식적으로 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서도 장애인이란 이유로 소외될까 두려워서, 누가 걱정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혼자 잘 살아가는 씩씩한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난 내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몸이 불편하다는 것 때문에 꼭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배려를 받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몸을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혹시나 이게 나 스스로도 "나는 모자란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다는 증거는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웃고 싶지 않아도 웃는 버릇에 대해선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를 다룬 "헤드윅"이라는 뮤지컬이 있다. 성전환수술에 실패해 "분노한 1인치"가 남는 바람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게 된 주인공은 굴곡이 심한 삶을 살아내면서, 비참한 상황에서도 소리 내어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우는 것보단 낫잖아요?" 헤드윅만큼이나 굴곡진 삶을 살면서도 곱게 자란 인상이신 우리 어머니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다 보면 웃을 일이 생기는 걸 수도. 이젠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웃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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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양 2010/08/09 [21:21] 수정 | 삭제
  • 공감이 많이 되는 글입니다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특별히 여성에만 월차가 허용이 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다른 분들에게 괜히 미안해서 월차를 낼 엄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하다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여성의 몸은 참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이 오묘한 몸을 가지고 일을 하려면 한달에 한번의 쉼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권리인 월차를 쓰고 있습니다 이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하나, 둘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찾아내서 누뤘으면 좋겠습니다
  • 초이스 2010/08/09 [14:40] 수정 | 삭제
  • 그런말이있다. 눈물을 흐르는것보다 실없이 웃는게좋다는 말이다. 항상 타인을 위해서 나 자신의 기분따윈 상관없이 기분나빠도. 웃어야하는 그런자리가 있다. 그건 그사람의 성향이 아닐까싶다. 로봇처럼 열심히 일한 장애여성! 조금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회사를 박차고 나올수 있었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안그러면 지금까지 마음에 없는 스마일로 보내고 있었을테니깐요? (많은 장애인들이 공감하는 글입니다. 감사^^*)
  • grace 2010/08/07 [17:19] 수정 | 삭제
  • 많이 공감 할 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관대한 우리가 장애인인 너라도 어여삐 여겨 채용해 주었으니, 온몸 다 바쳐 은혜를 갚도록 하여라"
    ... 내가 아는 한 장애인 센터에서 작업장을 운영하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 여성이 저에게 하소연을 하더군요.
    일도 힘든 일인데다가 아침에도 원래 시간보다 더 일찍 출근 해야 하고
    야근 일을 해도 추가 수당이 없이 일 해 준다고요.
    장애인 단체 마져도 장애인을 이용하는 것을 어찌하리오.
  • 이쁜마누라 2010/08/07 [11:19] 수정 | 삭제
  • 장애여성인나도어릴때부터지금까지의삶을보면내몸의한계이상으로지내왔던것같구지금도그렇다장애인이니까무엇이든잘해야한다는강박관념에늘일등을하려했구이제주부가된나는혹시라도장애때문에집안이더럽다는소릴안듣기위해늘쓸고닦고 ..가끔은 이런내자신에스스로지쳐버리기도해서그냥대충살면어때?라는반문을하지만그건잠시여전히내몸의한계이상으로움직이고있다요즘은늘친구에게"아니?중증장애인인내가마치경증장애인이나비장애인처럼살아가는이처절한움직임을..ㅎㅎ"하고농담반진담반을나누기도한다그럼에도난늘웃고있다우리의웃음이장애인이기에더웃어야하는것이아닌우리삶가운데정말깊숙이젖어있는그런웃음이기를소망해본다
  • 나요 2010/08/06 [23:18] 수정 | 삭제
  • 저 역시 그동안 스스로 "장애인이라서 더 열심히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의 희생자였습니다.
    그런 제가 이젠 제 권리를 찾으려 하고 있는데... 만만치가 않은것 같습니다.
    저는 누구 보다도 열성적으로 일하고 성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
    성과는 곧 사그라들고 .... 항상 저에게 더 큰 것을 요구하고 기대하더라고요..
    이젠 정말 지치고 화가 나서 퇴직을 결정했습니다.
    퇴직의사를 밝히니 아무런 환경적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붙들기만 하네요.
    뿌리치고 가면 아주 몹쓸 사람 되는 거고 있으면 괴롭고 ...
  • 미니꽃 2010/08/06 [22:22] 수정 | 삭제
  • 그동안 몰랐었네요. 저는 보통 체력이 약한 장애인이니까 직작에서는 어느정도는 편의를 봐주지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장애인이니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 깔려있다니...그걸 당연시 여기는 상사도 무섭고 그런 상사가 있다는 직장도 무섭네요
  • 미소~ 2010/08/06 [17:23] 수정 | 삭제
  • 직장다녀본 사람들이면 똑같은 상항을 경험했을 것이예요.
    자립하려다 오히려 건강이 악화되어 더이상 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진정한 장애인의 자립은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누어하는 근무시간을 조절해야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느껴요.
    지금의 근무시간이면 누구라도 몇개월 가지 못하는 실정은 모르고 직장에서는 장애인들이 꾸준하게 오래 일하는 사람이 없다고들 하는데 답답한 심정이지요.
    나의 감정에만 충실하다면 공동체에 어울릴 수 없겠지요. 서로다른 사람들과 더불어가야하기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조금 참을 수는 있지만 감정노동의 표현까지라면 내가없는 삶이기에 심각하죠.
    내가 주인공이된 아름다운 웃음이 되었으면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