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이를 업고 다독이며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인도② 맥로드간즈

진형민 | 기사입력 2010/08/10 [00:41]

다시 아이를 업고 다독이며

<세 딸과 느릿느릿 아시아여행> 인도② 맥로드간즈

진형민 | 입력 : 2010/08/10 [00:41]
*풍경보다는 사람을, 사진 찍기보다는 이야기하기를, 많이 돌아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오래 머물기를 선택한 어느 엄마와 세 딸의 아시아 여행기입니다. 11개월 간 이어진 여행, 그 길목 길목에서 만났던 평범하고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록빠(Rogpa) 탁아소의 분주한 아침
 
▲ 우리는 아침마다 백 개가 넘는 계단을 뛰어올라 록빠 탁아소로 갔다. 짜이의 뒷모습.  
아침마다 백 개가 넘는 계단을 뛰어올라 록빠(Rogpa) 탁아소로 간다. 가파르게 비탈져 내려간 곳에 방을 구한 탓이다. 큰길가 번듯한 숙소에 비하면 방값이 거의 절반이니, 아침저녁으로 다리운동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계단 끝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아가방 뻬모(Pemo)가 지나간다. 잠이 덜 깼는지 엄마 등에 업혀 우리를 뚱하게 건너다본다. 아직 기어 다니는 아가들이 태반인 아가방에서 뻬모는 야무지게 뛰어다니며 대장 노릇을 하는 중이다.


탁아소에는 한 살부터 네 살 사이의 아이들이 모두 마흔 명쯤 있다. 나는 세 아이 키우며 기저귀 갈아댄 경력을 인정받아 한 살배기 아가들 방의 도우미가 되었고, 딸아이들은 기저귀 떼고 뛰어노는 큰 아이들 방에서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우리 외에도 스웨덴, 독일, 스페인에서 왔다는 자원 활동가들이 아침마다 헐레벌떡 탁아소로 모여들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긴 여행 중이었고, 이곳 맥로드간즈(McLeod Ganj)에 머무는 동안 일손을 보태고 싶어 왔다고 했다.


록빠의 아침은 분주하기 짝이 없다. 엄마손 아빠손 잡고 들어선 아이들은 실내용 미끄럼틀을 먼저 차지하려 다다다 뛰어가고, 티베트인 생활교사들은 아이들 갈아입힐 옷이며 턱받이 수건, 기저귀 등을 부모에게 넘겨받느라 종종걸음이다. 나도 버둥대는 어린 아가들 받아 안으며 엄마들과 ‘따시델렉’ 하고 인사한다. 따시델렉은 두 손 모아 안녕을 비는 티베트의 인사말이다. 네팔과 인도를 지나오며 매일같이 ‘나마스떼’ 하고 인사했었는데, 이제부터 우리의 인사도 ‘따시델렉’으로 바뀐다.
 
삶의 빈틈을 서로 메워가는 록빠의 사람들 
 
▲우리나라 만두와 하등 다를 것 없는 티베트 음식 모모(momo)
티베트 엄마아빠들은 우리나라 변두리 도시쯤에 사는 이웃들처럼 낯익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매일 기저귀 갈아주는 록빠 아가들은 한때 우리 딸들이 그랬듯 엉덩이에 푸른 몽고반점 하나씩을 갖고 있으며, 우리가 즐겨먹는 티베트 음식 ‘모모(momo)’는 우리나라 만두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음식이었다. 여행하며 우리와 비슷한 용모와 문화를 가진 몽골로이드들과 종종 마주치는데, 그때마다 아는 사람인 듯 괜히 눈웃음 짓곤 하였다. 같거나 비슷함 앞에 이토록 기꺼운 마음이 드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인지 채 따져볼 새도 없이 반가움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다.

메또(Meto)는 아가방의 막내이자 소문난 울보이다. 다른 아가들은 엄마랑 헤어질 때 좀 울먹대다가도 금세 장난감에 정 붙여 잘 노는데, 메또는 문짝 앞에 엎드려 한 시간씩 발버둥 치며 울었다. 엄마가 문 밖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메또 엄마는 록빠 큰아이들 방의 생활교사였다. 나는 자진하여 울보 메또의 담당이 되었다. 덩치 큰 메또를 안아주고 업어주고 까꿍 놀이도 하며 한바탕 놀아주면 잠깐씩 엄마를 잊고 해시시 웃곤 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달래주고 싶었던 건 메또가 아니라 메또 엄마의 마음이었다.
   
나는 초등대안학교 교사였고,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녔었다. 한 학년 아이들이 열 명 남짓한 작은 학교였다. 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공정한 교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지 못하였다. 큰 아이는 엄마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 편만 든다며 집에 와서 자주 서럽게 울었다. 제 자식만 감싼다는 말 듣기 싫어 일부러 덜 아는 척 하고, 덜 도와주고, 덜 너그러웠던 게 사실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속상한 일 생길 때마다 내 품에 안겨 하소연하고 위로 받은 뒤 다시 뛰어가 놀았지만, 정작 내 아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 록빠의 소문난 울보 메또와 메또 엄마 
메또 울음소리 번연히 들려도 못들은 척 다른 아이들 데리고 뜀뛰며 놀고 있는 메또 엄마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나는 아릿할 그 마음이 내 것처럼 읽혀져 얼른 메또를 업고 어르며 “엄마 속상하겠다. 그만 뚝!” 하는 것이다. 길게 칭얼대던 메또가 어느 새 잠이 들고,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메또에게 하듯이 큰 딸아이를 등짝에 폭 업고 흔들어주며 그때는 엄마가 참 미안했었다고 가만가만 얘기해주고 싶었다.

잠깐 한국 들어갔다던 빼마(Pema)가 돌아왔다. 그런데 델리에서부터 끌고 온 짐이 어마어마하다. 오는 길에 큰 시장에 들러 이것저것 록빠에 필요한 것들 구해오는 길이란다. 2005년 남편 잠양과 함께 록빠 탁아소의 첫 문을 열었다는 빼마는 안팎살림 챙기느라 여전히 바쁜 기색이다. 여행 중 만난 티베트 남자와 결혼해 여기 인도에 살고 있는 빼마는 명랑한 얼굴의 한국 여자이다.

줄곧 맡아왔던 탁아소 매니저 일을 티베트인 교사 남겔에게 넘기고, 요즘 빼마가 공들여 일하고 있는 곳은 록빠 여성작업장이다. 지난 해 문을 연 작업장은 재봉틀 여덟 대 겨우 들어가는 작은 공간이지만, 일자리 구하기 어려운 록빠 엄마들에게 재봉기술 가르쳐주고 지갑이며 가방 같은 것 만들어낼 수 있도록 길잡이 되어주는 곳이다. 엄마들이 여문 솜씨로 만든 물건들은 작업장 근처 록빠 가게에 걸어 두고 오가는 이들에게 부지런히 팔고 있다. 탁아소나 작업장 안에 유독 혼자 아이 키우며 사는 엄마들이 많은 것은 아무리 애써도 홀몸으로 감당키 어려운 삶의 빈틈들을 록빠 안에서 같이 메워 갈 수 있기 때문이겠다.

여행 중 얻은 가장 값진 배움


점심때 쯤 탁아소 일을 마치고 단골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오후 시간은 좀 헐렁하게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일없이 동네구경 다니는 걸 좋아했다. 골목마다 펼쳐진 좌판들 앞에서 목걸이나 스카프 구경을 하기도 하고, 노란 묵무침이나 군만두 같은 거리음식을 사먹기도 하고, 폭포까지 이어져있는 인적 없는 산길을 쉬엄쉬엄 걸어갔다 오기도 하였다. 걸음이 느리니 시간도 느리게 흘러갔다.

▲ 안에 티베트 불교경전이 담긴 둥근 통 마니차.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 한번 돌리는 것이 경문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믿는다.
동네 한가운데 붉은 마니차들이 돌아가고 있다. 마니차는 티베트 불교경전이 담긴 둥근 경통을 말하는 것인데,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 한번 돌리는 것이 경문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겨 길 오갈 때마다 부지런히 마니차를 돌리곤 하였다. 지는 해를 등에 얹고 천천히 마니차를 돌리며 걷는 티베트 할머니의 굽은 허리가 고단하고 적막해 보인다. 티베트 난민 1세대들이 고향땅을 등진 지 어느 새 오십여 년, 중국의 자치구로 전락해버린 그리운 나라 티베트로 돌아갈 날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오래 머무는 여행자들이 많아서인지 동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배움터들이 눈에 띈다. 티베트 말이나 인도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곳도 있고, 같이 영화를 보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모임도 여러 개이다. 둘째 빈이는 요가에 자꾸 마음이 가는 모양이다. 집 근처 요가원 앞을 몇날 며칠 서성이고 나더니 한번 배워보겠노라 하였다. 인도 사부가 이끄는 그 요가원은 누구나 같은 시간에 모여 수련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음먹고 수련에 동참한 지 며칠이 지나고 나서 빈이가 키득대며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 선생님이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미스 코리아~! 거기서는 내가 미스 코리아야. 웃기지?”

나는 머리 말고 몸에다 익힐 수 있는 걸 찾다가 티베트 마사지를 배우러 갔다. 학생을 딱 여덟 명씩만 받아 두 주일 동안 제대로 가르친다는 사부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길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큰 아이가 자기도 하고 싶다며 내 뒤를 졸래졸래 따라온다. 늘 엄마랑 티격태격하는 녀석이라 따라나서는 게 썩 편치만은 않다.

사부는 낮은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다. 학생들은 둘씩 짝지어 서로의 맨몸을 번갈아 주물러가며 근육의 숱한 이완법을 배워갔다. 나도 내 짝인 큰 아이의 보드라운 몸을 구석구석 어루만지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훅 뜨거워진다. 내가 첫 아이로 낳아 가슴 졸이며 키웠던 녀석이, 서툰 엄마 때문에 혼자 긴장하고 애태우며 세상과 맞섰을 녀석이, 언제나 동생들 뒷전에서 엄마를 그리워하며 안겨 사랑받고 싶었을 녀석의 어린 마음이 손가락 사이사이로 서글프게 만져졌다. 어리석은 나는 아이가 내뱉은 날선 말들에 상처받고 분노하느라 여태 아이를 혼자 버려두었던 것이다.

나는 옷 벗고 뒹굴었던 두 주일동안 비로소 아이와 화해하였고, 아이의 몸에서 느껴지던 그 여리고 따뜻한 울림을 내 몸 깊이 새겨두었다. 여행 중 얻은 가장 값진 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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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나무 2011/01/21 [17:05] 수정 | 삭제
  • 저도 큰딸이라 그런가봐요. 따님과 나누었던 교감에 대한 이야기, 눈물이 왈칵 나오네요....
  • 2010/11/11 [02:23] 수정 | 삭제
  • 내년에 꼭다시 가볼생각을 하고있었는데..다녀오면 정말많이 그리운곳이죠 맥간..
    글을 보고있으니 일년전 생각에 또 뭉클하네요, 덕분에^^ 툭체낭-
  • 2010/11/11 [02:19] 수정 | 삭제
  • 세상에- 우연히 들어온 일다홈페이지에서, 제가 봉사활동으로 잠시있었던 맥간 록빠의 소식을 접하네요! 와아아
  • 탄감자 2010/08/13 [01:56] 수정 | 삭제
  • 단골손님 왔어요 ^^ / 정작 쓴 사람은 담담하게 썼을텐데(아닌가?) 두번이나 눈물 왈칵. 것도 다 현이 얘기 때문에.. 축하해야할 것 같은 마음이에요 ^^ 축하해요,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