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의 몸 이야기> 연재는 외면하기, 직면하기, 비교하기, 수용하기, 강점 찾기, 표현하기 등 장애여성이 자신의 몸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타자화된 장애여성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우리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데 의의가 있다. – 편집자 주
“왜 장애인을 부려먹고 그래” 한 달여 전쯤 어느 주말의 일이었다. 몸살 기운이 있어 잠을 설쳤기에 일찌감치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친정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큰언니가 다니러 왔다는 소식과 함께 혹시 마트 근처에 있으면 옥수수 좀 사오라는 말씀이었다. 병원 옆에 있는 청과가게에서 옥수수를 사가지고 전동휠체어를 탄 채로 부리나케 한동네 살고 계시는 친정엄마집으로 갔다. 친정엄마가 살고 있는 빌라에는 휠체어가 접근할 수 없기에 입구에서 전화를 걸었고 큰언니가 내려왔다. 언니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마침 마트 근처에 있었나보네?" "왜 멀쩡한 사람들 둘이 장애인을 부려먹고 그래?" "그냥 혹시나 하고 전화했는데, 네가 사올 수 있다니까……." 순간 언니는 몹시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나중에 엄마로부터 확인한 바로도 두 사람 모두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했다. 내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우리 가족에게 나는 그저 딸이자 동생으로서 아랫사람일 뿐 내 장애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리고 평소에도 장애가 있는 내가 가족의 보살핌을 받기보다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일이 더 많다. 보통의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가족들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살 것이라고들 쉽게 생각한다. 물론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었다. 그것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철학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그 이상 때문에 엄연히 다른 몸의 조건이 고려되지 않은 채 나는 힘겨운 역할들을 감당해야 했다. 그것은 평등이 아니라 장애를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만 감당하게 만드는 차별이었다. 가족에게 진 빚 나로서는 매우 불평등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관계가 형성되게 된 건 성장과정 내내 내가 가족, 특히 형제들에게 진 빚 때문이었다. 엄마는 어려운 형편 가운데에서도 장애가 있는 딸인 나를 대학까지 보내느라 자신을 희생하였으며, 언니들과 여동생은 나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선에 나서야 했다. 나는 평생토록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의 (나로서는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요구에도 떳떳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끌려 다녔던 것 같다. 그런 내 입에서 "왜 장애인을 부려먹느냐?"는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그 말을 내뱉기 전까지 나는 (적어도 가족들에겐) 장애인도 장애여성도 아니었다. 그저 가족들의 희생을 딛고 공부를 많이 한 덕분에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엘리트여성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대학을 포기하고 자그마한 회사의 경리생활을 하며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 동생의 학비를 대주어야 했으며, 결혼 후 자녀양육을 어느 정도 마치고 돈벌이에 나서도 학습지교사조차 할 수 없는 언니들과 나는 완전히 달라야 했다. 그런 이유로 대학졸업 후 취업을 하지 못하고 백수생활을 할 때도 나는 죄인처럼 지냈으며, 직장생활하면서도 힘들다 고달프단 소리 한번 입 밖에 내보지 못했다. 나는 장애여성이다
그 계기는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장애여성은 스스로가 장애여성임을 깨닫고 "나는 장애여성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부터 새로 태어나게 된다. 일례로 미국 시카고의 여성 사업가인 주디 레이스의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그녀는 휠체어 사용자로서 꽤 성공한 여성 사업가였는데, 교통수단과 관련한 모임을 하던 중 관련기관 전문가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너희 장애인들”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주디 레이스는 그때를 가리켜 자신이 새로 태어난 순간이며, 여성 사업가로서의 주디 레이스의 관점이 무너진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주디 레이스의 경우처럼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장애여성이 장애여성 자신으로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는 비교적 경증의 지체장애로 보조기구 없이 보행이 가능했었지만 허리 디스크 수술 이후 중증이 된 활동가가 있다. 적극적인 성격 탓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도 열심히 했지만, 몸의 조건을 외면하고 너무 열심히 산 탓인지 허리 디스크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수술 후 디스크의 통증에서는 벗어났지만 그녀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주변사람들은 물론이요, 가족들조차 중증이 된 그녀의 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당사자조차도 허리를 제대로 구부리지 못해 걸레질도 못하게 되고, 목발을 짚어야만 걸을 수 있게 된 자신의 몸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니 가족과 친지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땐 목발 사용이 익숙지 않아 누군가 한쪽 목발을 들어주어야 하는데, 목발을 짚고 그냥 올라오라고 말하거나 계단을 다 올라갔는데 들어주었던 목발을 갖고 먼저 가버려 난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럴 때 자신이 장애인임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면 상대방은 몹시 당황한다. 이제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에 틀림없는데도, 그들은 그녀의 장애를 받아들일 준비가 조금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이 정도이니 목하 중증장애인의 정체성을 갖게 된 그녀에게 세상은 참으로 녹록치 않을 태세이다. 장애여성이 스스로를 장애여성으로 정체화하는 과정은 과연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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