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 공공성 강화하자

[르포] 저임금, 질병 시달리는 돌봄노동자에게 권리를 (하)

안미선 | 기사입력 2010/10/18 [09:56]

돌봄노동, 공공성 강화하자

[르포] 저임금, 질병 시달리는 돌봄노동자에게 권리를 (하)

안미선 | 입력 : 2010/10/18 [09:56]
‘돌봄 노동’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 추세다. 특히 ‘돌봄 노동’이 노동시장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게 된 지금, 노동자로서 법적인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사노동협약을 추진해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로 인정하려고 하고 있으며, 국내서도 이 같은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가사사용인에게 고용·산재보험 적용’ 법안 발의

▲ 9월 1일, 김상희 민주당 의원과' 돌봄연대'는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ㆍ고용보험 및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여성노동자회
9월 1일 김상희 민주당 의원이발의했다.


근로기준법상 ‘가사사용인’을 적용 제외했던 것을 폐지하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법안에 특례조항을 두어 적용받도록 했다. 보험료의 ‘사업자’ 부담 부분은 돌봄 서비스 이용자를 ‘사업주’로 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국가가 부담하도록 보험료 징수법을 개정했다.

현재 복지부 바우처 사업이나 노동부 사회서비스 일자리사업 등 정부가 예산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속한 노동자들은 4대 보험 적용을 받는다. 그러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대 일 근로계약을 맺는 돌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고, 사회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김상희 의원이 발의한 법 개정안은 다수의 돌봄노동자가 ‘가사사용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근로자성을 인정해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재원 마련 실효성 확보, 불안정노동에 대한 종합적 접근해야

개정안과 관련해 한국노동연구원 은수미 연구위원은 “근로자의 개념을 확대하는 논의를 촉발시킨 것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며 환영했다. 그러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재원이에요. 이분들이 시간당 최저임금도 못 받는 상황에서, 보험료를 어떻게 부담하도록 하는가가 문제예요.”

은수미 연구위원은 또 고용, 산재보험의 ‘사용주’ 부담을 국가가 지도록 한 것에 대해서도,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통로와 “노동과정을 관리하고 전달하는 체계”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일례로, 요양간호사의 경우 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되면서 그 재원으로 운영하는 데 비해, 가사사용인의 고용보험은 재원이 없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돌봄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근로자성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고 다른 불안정노동을 하는 이들까지 염두에 두고 종합적으로 접근해가야 할 과제라는 화두를 던진다.

‘어디까지가 근로자인가, 어떻게 보호할 것이고, 재원이나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비단 돌봄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사안이 아니다. 학습지교사, 보험, 캐디 등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 인정과 방송 영화계, 자영업으로 분류된 실제 노동자들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공공시설 확충, 지역 시민네트워크 활용한 ‘대안’

OECD 국가 대부분은 돌봄서비스 제공의 재원을 조세나 사회보험 같은 공적체계에서 조달하고 있다. 국가가 재정 부담을 하되, 시스템을 지자체가 공공시설에 위탁해 소비자와 이용자에게 공급하는 방식을 취한다.

“공공시설을 많이 만들면 문제가 많이 해결되고, 개별 부담이 적어집니다. 공공시설에서 사람들을 관리하고 임금조건을 확보하고 고용보험 등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서비스 인프라를 광범하게 확충하고 돌봄노동자의 권리도 이 공공시설 안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같은 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 적정임금과 근로조건을 보장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 간병인은 병원 소속이 아니지만,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로 간호시스템에 결합되어야 합니다. 병원 소속이 되어 간호사 수를 늘리고 병실마다 간병인을 두는 것 같은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공공시설을 확충해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제안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바람과도 겹친다.

“가장 큰 미래는 우리의 목적이라고 할까요? 그게 정규직이 되는 거죠. 병원이나 사회에서 어떤 단체든지 간에 간병인을 병원이나 국가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공공의료의 한 일원으로 우리도 정당하게 시작할 수 있는 그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서울대병원 간병인 정금자 씨의 인터뷰 중 <부서진 미래>(삶이보이는창, 2006)

공공영역으로 포섭될 수 없는 ‘재가 돌봄’의 경우도, 사회보험료를 공공업체에 넘겨주고 공공단체가 관리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이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구청 단위에서 지역자활센터에 위탁해 1년제로 고용하고, 사회보험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현 바우처 제도를 재가돌봄의 경우 적용해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풀뿌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지자체가 공익단체와 연계해 지역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돌봄 서비스를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공공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를 통해 돌봄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돌봄 노동 문제, 여성의 노동, 여성의 노동할 권리는 맞물려 있다. 돌봄서비스 노동을 어떻게 제도화하고 체계를 만들 것인가는 한국사회가 다음 세대를 예견하고 기초를 놓는 중요한 문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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