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 년 동안 연재했던 칼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다섯 여자들이 모이기로 했다. 백발마녀, 호야, 다비다, 악녀펑크, 푸훗. 11시 30분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장애인콜택시의 휠체어리프트가 고장나서 리프트를 탄 채로 허공에 떠 있다는 악녀펑크의 전화였다.
다비다는 수동휠체어의 타이어가 망가져서 나오지 못한다고 이미 통보를 했던 터였다. 활동보조인이 휠체어를 가지고 자전거포까지 갔지만 휠체어의 바퀴 튜브 외에도 필요한 부품이 있어 한나절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약속시간인 12시에 맞추어 나타난 호야는 오랫동안 공들였던 일을 마무리하고 표정이 가뿐하다. 나와 백발마녀, 호야가 먼저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악녀펑크가 도착해있었다. 커피와 함께 119 구급대원까지 불러 장애인콜택시를 옮겨 탄 소동을 풀어놓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우리가 경계했던, 혹은 경계해야 할 몇 가지들
우리들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얼굴'에 대한 선호 현상만 보아도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장애남성의 예가 나왔는데, 그의 글은 대단히 매력적지만 실제 대면해서 대화를 나누면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며 호야는 혹시 그것이 얼굴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장애를 가진 몸이라도 얼굴이 잘 생겼느냐, 예쁘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우리 모두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칼럼을 쓰면서 좀 더 치열하게 성찰하지 못했기에 “계몽필(feel)이 좀 났던 것 같다”고 내가 털어놓았다. ‘교과서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한 시점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몸 이야기 칼럼이 “나는 다 초월 내지 극복했으니 너희도 당연히 그래야만 해!”는 아니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장애극복'이라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에 계몽필을 지양하려는 의식은 있었던 듯하다. 백발마녀는 “사람들이 결과만 중요시하기 때문에 ‘극복 코드’가 먹히는 것”이라며 “과정이 무엇으로 주효했는지를 생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위 ‘장애극복’이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비춰진다면 악녀펑크가 이야기했듯 “되는 놈은 따로 있다”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일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며, 우리 모두는 예전에 이미 질릴 만큼 냉소적이었던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생각하면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시킨 것이 아니라 행위가 동반된 것이었기에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는 것이 우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장애인들은 ‘뭘 했다’가 아니라 ‘뭘 생각했다’고 자주 표현하곤 하는데 이것도 정신우월주의에 치우친 태도일 수 있다. 몸의 제약에 갇혀 있지 않고 무언가 시도하고 행위 하는 자신을 전면으로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들의 글쓰기는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호야는 자신이 쇼핑을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전동휠체어를 타고 하는 쇼핑은 정말 재밌었던 경험을 했다.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할 수 있고 없는 것,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과정이지만 장애를 가진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주체가 가족 혹은 사회복지사 등 제삼자가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같다며 백발마녀는 '자기주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칼럼을 쓰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이야기가 전체인양 읽히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었다. 장애를 다루는 많은 매체가 장애를 ‘극복’한 ‘슈퍼 장애인’과 장애에 치여 사는 ‘찌질한 장애인’만을 다룬다. 극단적인 모습만 보여주니까 사람들이 그게 전부인 줄 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아가씨는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사는 거지?”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악녀펑크. 악녀펑크는 그에게 연금 따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는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고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장애인이라면 무조건 기초생활수급권자이고 나라가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그간 얼마나 매체가 다루는 장애인이 양극화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안의 다양한 차이를 확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30대에서 5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장애의 원인이 다르다 보니 몸의 조건도 많이 다르며 무학에서 석사학위 소지자까지 학력은 물론 직장, 결혼, 가족관계 등 살아온 과정이 몹시도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그 다양한 경험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드러내고 자기 방식대로의 전략을 공유하는 작업이었다. 같은 장애여성이지만 어떤 이는 몸을 거울이나 쇼윈도에 비춰보면서 직면하지만 경멸하고, 어떤 이는 아예 자신의 몸을 비춰보지조차 않았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둘의 이야기, 그리고 각각 다른 다섯 여자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 같다. 못 다한 이야기 몸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우리가 그동안 몸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는 호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을 쓰는 동안 “너무 생물학적인 몸에만 집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 또한 주사랑님을 인터뷰할 때 정말 ‘몸’에만 포커스를 맞췄기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었다. 당시 호야는, 인터뷰 질문을 뽑으며 도움을 요청하는 내게 “굳이 의학적인 지식이나 몸에 집중하지 않아도 돼”라고 조언을 한 바 있었다. 몸을 둘러싼 삶에 대해 할 이야기가 분명 많은데 몸에만 집중하다 보니 놓치는 부분들이 있었다. 비혼인 주사랑님을 인터뷰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그 삶 속에 몸의 이야기가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족 내 위치와 관계,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어떤 포지션을 취하느냐 하는 그 모든 이야기에 몸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상품성 없는 몸, 존중받지 못하는 몸을 이야기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사람의 가치를 상품성으로 따지는 시대에 우리가 어찌 대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할 걸 그랬다는 백발마녀. 간담회 중간, 사무실에 잠깐 들른 김세라 한국작은키모임 대표는 자신들처럼 작은키장애여성들의 몸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 그녀들은 곧잘 "장애가 있는 네 몸이 궁금했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엘리베이터나 대중교통수단 속에서 대뜸 우리들에게 “생리는 해?”라든가 “애는 낳을 수 있어?”라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아직도 비일비재한 걸 보면 우리들도 그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호기심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그들에게 '이중의 태도'로 대응하는 악녀펑크의 전략은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구석이 있다. 1년간 연재하면서 참 많이도 스스로를 검열하고 갈등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만 해야 하며,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과 안전의 문제가 중요했다. 악녀펑크는 너무 아파 빨리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독자층과 칼럼의 방향을 고려해 그런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고 이제야 밝혔다. 우리들 개개인의 경험이 솔직하게 드러나려면 살 권리 못지않게 죽을 권리에 대해서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장애가 있는 몸의 살 권리도 충분히 이야기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을 권리를 이야기하기가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4시간이 넘게 이어졌던 이야기를 마치며 어쩌면 이제부터 우리의 몸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남는 의문이 있었으니 그것은 '왜 비장애여성들의 댓글이 달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매체와 독자의 특성상, 댓글이 많이 달리진 않지만 연재 초기에는 그래도 몇몇 독자의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장애여성들의 댓글만 남게 되었다. 왜 그들이 말하지 않게 되었을까? <2010년 한 해 동안 칼럼을 읽고 공감해주신 일다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장애여성이 쓰는 장애여성의 이야기, 2011년에는 새로운 주제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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