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은 좋은 약인가?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1) 약에 얽힌 진실①

이경신 | 기사입력 2011/04/06 [14:05]

신약은 좋은 약인가?

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41) 약에 얽힌 진실①

이경신 | 입력 : 2011/04/06 [14:05]
언젠가 의사인 친구가 “요즘 신약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아직도 프랑스에서 그렇게 오래된 약을 사용하다니!”라며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신약이니 당연히 이전 약보다는 낫겠지’하며 그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떤 신약은 이전 약보다 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신약이 이전 약보다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신약이 효능이나 안정성의 측면에서 더 못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의사인 마르시아 안젤이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청년의사, 2007)에서 우리에게 전하는 신약에 대한 진실은 분노와 두려움을 안겨준다.
 
유사 약의 범람
 
▲ 마르시아 안젤 <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청년의사, 2007) 표지
저자는 약은 오래될수록 안전하며 신약이 이전 약보다 낫다는 것을 믿을 근거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 까닭은 신약을 기존의 약과 비교하지 않고 위약(가짜 약)과 비교하는 ‘위약대조 임상시험’으로 신약의 시판 승인을 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임상시험은 약을 사용할 때와 약을 사용하지 않을 때를 비교해 신약의 우수성을 판정하는 것이니, 기존 약의 변형에 불과한 유사 약이 대단히 뛰어난 효능을 지닌 것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동일용량일 때 기존의 약보다 나은 유사 약은 드물단다.

 
제약회사는 환자마다 약효가 다르니까 다양한 유사 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어떤 약이 듣지 않을 때 유사 약을 처방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다들 약이 비슷해서 똑같이 안 들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314종의 약이 새로 미국식약청 FDA에서 승인을 받았지만, 이 중 혁신적인 약은 32종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약은 유사 약이 아니라, 혁신적인 약이다. “혁신적인 약이란 시장에 팔리고 있는 기존 약보다 현저한 이점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물질”을 말한다.
 
이같은 혁신적인 신약은 드물고, 혁신적인 약 대부분조차 제약회사가 연구한 것은 아니다. 제약회사는 필요하고 중요한 약 개발을 위한 초기 연구에 기여하지도 않고, 공적 자금으로 이루어진 의학연구의 독점권을 사들이거나 기존약과 별 차이 없는 신약을 출시해 약값 올리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유사 약을 생산해야지 경쟁으로 인해 가격이 떨어진다는 제약회사의 주장도 사실은 아니다. 유사 약은 넘치지만 약값은 끝없이 오르기만 하니까. 오히려 싼 값에 판매되는 기존 약이 신약에 가려져 잊혀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약들이 유사하다면 제일 싼 약을 사는 것이 낫다는 마르시아 안젤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둘 만하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약’에 집중하는 제약회사
 
이윤추구에 골몰하는 제약회사가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고객에만 집중하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당연히 가난한 나라의 열대병에 무관심하고, 부자나라 빈곤층의 질병인 결핵에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환자가 드문 희귀병이나 환자 치사율이 높은 치명적 질환에도 큰 관심은 없다. 급성감염증 같은 일시적인 병도 관심 밖이다. 오히려 제약회사는 치명적이지도 않고 덜 심각한 병, 약을 오래도록 복용하게 하는, 아주 흔하고 일생 동안 지속되는 병, 즉 관절염, 우울증,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병에 관심을 쏟는다.
 
그래서 제약업계는 페니실린과 같은 기적의 치료제보다는 속쓰림 치료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 발기부전 치료제, 우울증 치료제 등, 소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약’에 집중한다. 이제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식이요법이나 운동, 사색을 하기보다는 우선 약을 복용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65세의 노년층 가운데 돈 있는 노인들이야말로 제약업계의 중요한 고객이 되었다. 돈 없는 노인은 필요한 약을 구하지 못해 죽는 데 반해, 돈 있는 노인은 약을 과도하게 복용해 사망하는 비극의 원인이 여기 있다.
 
약에 들어맞는 병 만들기
 
의사는 얼마든지 병의 범위를 넓혀 환자고객을 늘릴 수 있다던 의사 친구의 이야기가 제약회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병의 범위를 넓히면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가 늘어나니까, 제약회사의 수익도 함께 증가한다.
 
우선, 정상과 비정상 범위의 수치를 변화시킨 사례들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140/90이상인 사람인데, 120/80에서 140/90 사이의 혈압을 가진 사람을 전고혈압환자로 분류해 혈압약 고객을 늘였다. 또 고콜레스테롤증의 경우도 수치를 바꾸어 환자의 범위를 넓혔다. 문제가 되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280mg/dL이상에서 240mg/dL이상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정상의 범위를 200mg/dL이하로 낮추기 위해 부심하는 중이란다.
 
자연스런 노화과정을 질병으로 포섭한 경우도 환자 늘리기의 한 방법이라고 한다. 완경에 이른 여성이 완경증후군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만들었다. 거기다 노화로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해진 남성도 호르몬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포섭 중이다.
 
뿐만 아니라, 속쓰림 현상을 ‘위산역류질환’으로, 월경전 증후군을 ‘월경전 불쾌질환’으로 명명하면서 불쾌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증상을 새로운 질병으로 변모시켰고, 지나친 수줍음을 ‘사회적 불안장애’로, 정상적인 불안감을 ‘범불안장애’로 분류해 새로운 정신병을 늘여간다
 
이런 사례들만 보더라도, 제약회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만들기보다는 ‘약에 들어맞는 병’을 만들고 있다는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환자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돈벌이 약
 
이처럼 대부분의 신약은 이전 약보다 효능이 더 뛰어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약도 아니다. 오직 제약회사의 돈벌이용 약일 뿐이다.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신약이 실제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지를 입증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수치만 드러내 보여 판매승인 심사를 통과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다시 말해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거나 종양 크기를 줄이거나 백혈구 수치를 증가시키거나 불규칙한 심장박동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만 보이면, 임상시험에 합격이다.
 
이러한 ‘융통성 있는 평가’ 때문에 환자들은 효과도 없는 위험한 신약에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심장박동이 불규칙하면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며, 심장박동의 불규칙성만 완화하는 약을 만들었던 경우를 보라. 이 약을 투여한 환자는 위약을 받은 환자보다 3배 더 사망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했다. 혈압을 낮추는 약이 심장마비를 유발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이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약이 넘친다. 언젠가부터 약국에 가면 비슷한 약이 너무 많아졌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왜 이토록 유사 약이 범람하는지 그 이유를 깊이 고민해보지는 못했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못하는 동안, 제약회사는 불필요하고 효능도 없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신약을 팔아 공룡처럼 몸집을 불려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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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4/12 [10:57] 수정 | 삭제
  • 의료복지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 회색연필 2011/04/06 [23:01] 수정 | 삭제
  • 질병판매학이라는 책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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