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려진 삶을 기록한다는 것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펴낸 르포작가 희정을 만나다

박희정 | 기사입력 2011/12/23 [16:17]

세상에서 가려진 삶을 기록한다는 것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펴낸 르포작가 희정을 만나다

박희정 | 입력 : 2011/12/23 [16:17]
▲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아카이브, 2011)
“신문 보도 기사들은 독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전하잖아요. 나는 그렇게는 할 수 없으니까 그 시간 동안 뭘 할까 생각해봤어요. 내가 가진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자. 제대로 기록하자. 끝까지 듣고, 왜곡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죠.”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병에 걸렸거나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아카이브, 2011)을 펴낸 르포작가 희정씨. 르포를 쓸 때의 원칙과 태도에 대해 물었을 때, 그가 들려준 대답이다.
 
희정씨와 <일다>의 인연은 좀 특별하다. 2010년 2월 1일 게재된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자들을 취재한 르포기사로 <일다>와 첫 인연을 맺었고, 르포작가로도 첫 출발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다양한 매체에 활발한 기고 활동을 시작한지 1년 9개월 만에 희정씨는 첫 책<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냈다. 약 1년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을 통해 만난 11명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제대로 기록하자. 끝까지 듣고, 왜곡하지 말자’
 
<일다>의 기사들을 모니터링해주는 독자위원들로부터 “<일다>에 실리는 르포기사들은 다른 매체에 실리는 것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있다. 아마 그 평가의 많은 부분이 희정씨의 공이 아닐까싶다.
 
그가 처음 <일다>에 기고해준 이화여대 환경미화 노동자에 대한 르포는 개인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읽는 내내 기사 속 인물들이 마치 살아서 말하는 듯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 생동감은 어디에서 온 걸까. 단지 문학적인 표현들과 문체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유가 궁금해졌다.
 
희정씨와의 대화에서 나는 그 답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제대로 기록하고 싶다”는 의지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글을 쓸 때 조심스러워요. 내가 A로 전달하면 읽는 사람들은 A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인터뷰를 해준 사람들이 상대화되는 느낌을 받게 될까 걱정되지요. 취재가 끝나고 난 후에도 지켜보며 그 사람이 해준 말의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해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분노를 표현하는가, 어떤 성격인가, 그 인터뷰를 해주기까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기록은 선택이 수반된다. 그런데 그 선택은 쓰는 사람의 입맛과 관점에 맞게 재단되기 쉽다. 그러므로 제대로 기록한다는 것은 쓰는 사람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아봐야 하는 일이다. 한편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희정씨는 보기 전에 알려고 노력한다. 알게 되니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더 많이 보인 것을 잘 기록하려 애쓴다.
 
그것은 자신이 잘못 쓴 한 줄이 미칠 파장을 잘 알고, 매우 경계하기 때문에 나오는 태도다. 혹여 취재원의 뜻을 왜곡하거나 사실관계를 잘못 전달하지 않을까, 그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쓰면서 희정씨는 “인터뷰로 풀리지 않는 부분들은 반올림 가족들과 어울리며 해결해나갔다”고 밝혔다. “그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그 방식을 이해하고, 같이 밥을 먹고 여행을 가고…… 그냥 옆에 있었다.” 그렇게 연속된 삶의 한 자락을 함께하며 글을 썼기 때문에 그는 아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정작 “덤덤하게 썼다”고 한다.
 
“취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인생을 좀 더 알고 경험이 많았으면, 나이가 좀 더 들었더라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텐데 한탄하면서 올 때가 많아요. 반도체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도 내가 생산직 여성노동자의 삶이나 아파본 사람의 삶을 잘 모르니까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좁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여기에 희정씨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내가 좋은 사람이면 좋은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매순간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경계하는 태도는 자기성찰로 이어진다. 그 결과 작가는 성장해갈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 반올림 회원들과 함께(아랫줄 왼쪽이 희정씨)     © 반올림

르포를 쓸 때 취재의 양은 기사마다 다르다고 한다. 짧게 한 번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있고,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만나면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인터뷰를 하더라도 희정씨가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똑같다. 11월 10일 출간된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도 희정씨의 섬세하고 우직한 시선이 빚어낸 감동적인 기록물이다.
 
삼성전자·반도체에서 일하다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반올림을 통해 알려진 이만 115명. 그중 45명이 세상을 떠났다. 다발 경화증,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 베게네육우종증, 종격동암 등 이름도 생소한 병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정 공정과 라인에 발병이 집중되는 등 우연이라 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지만, 산업재해임을 주장한 이들에게 거대기업 삼성은 ‘증거를 가져오라’며 큰소리쳤다.
 
“반도체와 직업병의 문제는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으로 연구된 것도 별로 없고 지금 슬슬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니까요. 반올림과 처음 작업을 하던 시기도 반올림 자체에 정보가 많이 없었어요. 그러다 기사화가 되고 알려지면서 학자들이 참여하고, 정보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글을 써가면서 알아야 할 관련 정보가 계속 많아지니까 계속 공부해가면서 글을 써야 해 힘들기도 했죠.”
 
희정씨 자신에게도 생소했던 반도체에 대해 공부해가면서, 글에 제시된 사실관계가 틀리지 않도록 신경 써야 했다. 그나마 입증될 수 있는 내용을 수위를 조절해서 써야 했다.
 
“삼성의 현장노동자들이 읽었을 때, 의도치 않게 왜곡되거나 과장하거나 하는 부분들이 걸러지지 않으면 그 분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못할 것 같았어요. 현장노동자들이 동의하고 공감하면서 ‘그래서 내 몸에 어떤 영향이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몇 가지 사실관계 때문에 그분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2011년 6월 23일 故황유미씨의 유족 등이 제출한 행정소송에서 법원은 故황유미씨와 故이숙영씨에 대해 직업병을 인정했다. “백혈병의 발병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백혈병이 발병하였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되었다고 추단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산업에 있어 직업병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의지를 밝혔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을 쓰면서 희정씨는 1년간 출판노동자로 일했던 때를 떠올렸다고 한다. 출판업계도 과로와 계속 앉아서 일하는 환경 탓에 건강을 다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산하는 여성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다 별일 아닌 것처럼 그냥 넘겼다. “사실 상 우리나라는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일하고 있지요.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든 상황에서 자기 몸의 건강을 미뤄놓고 있는 거죠. 일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나은 2011/12/28 [15:05] 수정 | 삭제
  • 꼭 읽어볼게요. 좋은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