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의 세상읽기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4. 배우들의 대담

황혜란 | 기사입력 2012/04/25 [00:28]

광대들의 세상읽기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14. 배우들의 대담

황혜란 | 입력 : 2012/04/25 [00:28]
※ 4월 서울과 화천에서 공연되는 ‘뛰다’의 연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바탕으로 하면서,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번 기사는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배우들이 겪은 일들을 대담 형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광대극 <내가 그랬다고…> 배우들의 대담
 
* 장소와 일시: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2012년 4월 2일
* 참여 배우: 최재영, 이지연, 김모은, 김가윤, 김승준, 공병준
* 정리: 황혜란

 
재영: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와 한국 현대사를 접목시킨 <내가 그랬다고 너를 말하지 못한다>를 연습하면서, 또 2차례 광주답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한 예술가로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이야기해 보자. 평가나 판단보다는 경험 그 자체를 서로 듣고 공유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 2011년 '뛰다' 배우들이 광주의 극단 '신명'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창작워크숍을 하는 장면. ©뛰다

가윤: 나는 2010년 <내가 그랬다고…> 초연 때 연습 중간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첫 날, 혜련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조사하면서 든 생각들을 발표하며 울먹였고,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들을 가지고 놀고, 장면으로 만들고, 관객들과 함께 살아 있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들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끼게 되었다.
 
재영: 그 때 생각이 나는데,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들을 글로 써서 공유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내가 사장으로 있는 초밥집에 전두환이 들어왔다. 나는 회를 뜨는 칼을 들고서 어떻게 해야 하나 진땀을 흘리며 계속 서있기만 했었다. 전두환이 다시 나갈 때까지.
 
모은: 처음 연습하던 때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참 힘들었다.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좀 정신이 없었다. 그런 것들을 따라가느라 바빴는데, 현대사에 대한 지식도 없고, 운동에 참여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교과서에서 두 줄 정도 읽은 것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글을 써야 했었다. ‘이런 일이 있었군요, 나는 정말 믿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30년 밖에 안 된 일이라니’ 이런 말들이 조사를 하는 내내 맘 속에 맴돌았다. 정말 충격을 받았고, 가슴이 아팠다.
 
승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이야기니까. 그것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600년 전에 외국에서 사람들이 죽은 이야기, 마치 프랑스 혁명 같은 그런 먼 곳의 이야기처럼, 역사의 한 조각처럼 다루려고 노력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고, 그것을 판단할 기준을 세우기도 힘들다. 가까이 느끼려 한다고 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것이 분명하다, 가슴이 아픈 것밖에는 없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것은 역사의 한 조각인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느냐 하는 식으로, 거리를 가지고 접근하려고 했다.
▲ 2010년 뛰다의 연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초연 포토콜   © 이승희

가윤: 나는 ‘광대’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2010년에는 조연출로, 올해는 배우로. 배우로 참여하면서 광대가 아주 좋은 연기 도구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는데, 광대는 배우가 사회와 건강한 방식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배우가 겪어낸 사회 속의 삶이 그의 광대의 시선을 통해 자신과는 다른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재영: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변화해 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힘겹게 겪은 일들을 무대에서 희화화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 연습하면서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들 헤쳐 나왔는지 궁금하다.
 
가윤: ‘보는 입장’과 ‘연기하는 입장’이 이렇게 다른 작업은 처음 봤다. 볼 때는 더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고, 더 잔인하게 재연할수록 오히려 거리가 생겨 더 잘 볼 수 있게 되는데, 안에서 배우로서 표현해야 할 때는 그 어려움이 정말 크다. 절대 편하거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배우들이 그런 상태를 제대로 겪으면 겪을수록, 밖에서는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잘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다시 연습을 하면서 재영은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가 생겼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과정들이 문법과 코드화가 되어서 광대들이 그것을 잘 다루게 된 것 같다.
 
재영: 내 경우는 이런 죄책감이 있었다. 이 뜨거운 일을 내가 너무 나랑 떨어뜨려서 객관적으로 보려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번에도 밀양에서 있었던 송전탑 분신사건 기사를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픈데, 장면을 만들려면 그렇게 아픔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걸 왜 하려고 했지? 하는 고민으로.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오히려 더 거리를 두고 그것을 대하는 것이 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첨예하게 대립되는 문제 같은 경우에는 그것도 참 어려운 것 같다.
 
모은: 그 지점은 이 공연과 어우러져서 내게 큰 물음표를 던진다. 하고픈 얘기는 참 뜨거운데, 여려 명이 다 똑같이 생긴 아이돌그룹처럼, 거리의 간판이 모두 똑같은 거리, 있는 놈들이 거리를 다 집어삼키는 사회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지, 나는 왜 돈이 없는지…. 연습시간에 다른 광대들이 자신들이 선택한 얘기들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석연치 않았다. 적정한 수준이 무얼까, 예술가로서 사회적인 얘기를 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기술적으로 잘 만들어진 광대연기도 좋은데, 어쨌든 그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하고 듣고 싶어지는 것 같다. 남의 얘기가 아니라, 그래서 너의 얘기는 뭔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재영: 우리가 체홉의 <갈매기>같은 작품을 연습한다고 하면, 그 인물의 내면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분석할 것이다. (체홉의 작품들은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큰 특징이다) 하지만, 광대는 그 속성상 지적 분석의 과정을 통해서라기보다는 훨씬 더 직관적으로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 같다.
 
승준: 그러고 보니 체홉의 <벚꽃동산>도 일종의 구럼비 얘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는 것은 긍정적인 것 같다.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어쨌든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 아름답기만 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함께 가는 것이 더 긍정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작품은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이고, 연극계 다른 사람들이 우리 작품들 보고 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이고….
▲  뛰다의 연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배우들 연습 장면   © 뛰다

모은: 정신이 빠질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한 마디 한 마디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얘기(대사)를 내가 모르는 얘기가 없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것들을 표현해야 할 때는 참 힘들다. <내가 그랬다고…>는 공권력과 독재자와 그들의 블루스를 얘기하는데, 나는 그것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고, 연출의 시각에서 이미 정리된 지점과 기준이 있었고, 배우고 공부하고 열심히 알아가려고 하지만 나한테는 좀 어려운 이야기랄까. 배우로서의 기본적인 노력은 멈추지 않지만, 왠지 나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아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가 있다. 전체 이야기를 보면서, 시대의 흐름을 보면서, 나도 어떤 하고 싶은 얘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다.

 
승준: 오히려 그런 어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그것에 의해 생기는 긍정적인 상황이 있는 것 같다. 모르기 때문에 다가가게 된다고 할까.
 
모은: 비단 지식의 관점에서 얘기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뛰다>에서의 배우생활뿐만 아니라, 나는 어떤 배우지? 나는 어떤 예술을 해야 즐거운 배우지? 나는 사실 내가 잘나 보이고 폼 나는 연기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노래를 아름답게 하는 것도 좋아하고, 앙상블을 끈적하게 해 내는 것도 좋아하고…. 그런데 나는 어떤 것을 해야 가장 즐거운 배우인 거지? 그런 질문과도 연관이 있다.
 
승준: 이번 겨울 일본에서 <전쟁 속의 피크닉>에 참여할 때, NHK에서 촬영을 나왔다. (배우 김승준은 올 겨울 ‘뛰다’의 친구인 일본의 ‘새’ 극단의 작품에 객원배우로 출연했다.) 그 때 한국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았는데, 난 인류애와 평화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대체 이게 지금 뭘 하는 거지? 난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한동안 이 작품과 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저 병사들도, 우리나라를 침공한 일본군 병사들도, 다 나처럼 전쟁이 뭔지도 모르고,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전장으로 나온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좀 편해졌다. ‘나는 잘 모르는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지?’가 아니라,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좀 편안했다.

 
모은: 광대는 정확하게 디뎌야 하는 기반이 ‘나’라는 점이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연극의 3요소는 희곡, 배우, 관객이라고 배우지 않았는가. 희곡!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광대들에게는 얼굴을 가리고 그 뒤에 서게 해주는 그런 희곡 따위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쑥불쑥 만나고 싶지 않은 내가 튀어나올 때 참 힘들다. 부적절한 나를 만날 때, 그럴 때 힘들다. 인물을 만들면서 연기할 때와 광대로 관객을 만날 때와 다르다. 저들을 보라, 밖을 보라 하는 것이 힘들다. 아무 것도 없이도 매 순간 관객들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정말 용기를 요하는 순간이다. 미하일 체홉과 그로토스키를 읽고 연기론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것은 <뛰다>에서 늘 하는 말이 아닌가, 이것이 원형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즐거웠다.

그렇다면 이들과 우리가 다른 점은 뭐지? 우리에겐 광대가 있다!!!
▲ 뛰다의 광대극 <내가 그랬다고 너는 말하지 못한다>  리허설을 준비하는 배우들    © 뛰다

 ※ 뛰다의 “시골마을 예술텃밭” 카페
cafe.naver.com/tu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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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2012/04/25 [16:08]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배우들의 내면적인 것 그리고 관객에게 보여지는 모습,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seh 2012/04/25 [12:49] 수정 | 삭제
  • 연극을 보면 가끔씩 배우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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