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비에 취하여 쓰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스물한 번째 이야기

자야 | 기사입력 2012/06/03 [15:14]

어느 멋진 날, 비에 취하여 쓰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스물한 번째 이야기

자야 | 입력 : 2012/06/03 [15:14]
K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늘은 정말 비가 오려나 보다고 중얼거릴 때만 해도 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른천둥만 요란하게 울리고 정작 비는 한두 방울 떨어지다 마는 허무한 사태가 요 며칠간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구 밖을 지나 이웃마을로 접어들었을 때쯤, 부는 바람에 실려 온 물비린내가 코끝을 맴돌자 내 예감도 이렇게 바뀌어 갔다. 그래. 오늘은 진짜 비가 올지도 몰라.
▲  잔뜩 흐린 하늘을 보며 집을 나선 날. 오늘은 정말로 비가 내리겠지, 하고 기대해 본다.      © 자야

그 해 4월, 그들은 춤을 추었다        
 
인도 요가학교에 머물 때의 일이다. 9개월 남짓한 과정을 모두 끝내고 기말고사까지 치른 뒤 학생들이 하나둘 짐을 챙겨 교문을 나설 즈음. 당시 나는 남인도로 여행을 가겠다고 마음은 먹었으나 선뜻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떠나가는 이들을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속을 터놓고 지낸 친구는 별로 없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오래도록 함께 생활해 온 이들을 떠나 보내는 건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와 헤어지는 순간엔 그 큰 눈을 글썽이며 세상에서 제일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돌아서면 바로 자기들끼리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기차역으로 몰려가는 뒷모습이라니. 익숙하긴 해도 당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그 풍경에 나는 좀 울적한 상태였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을까. 마침내 나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단출하고 소박하게 지냈다고 자부함에도, 막상 짐을 꾸리려 하니 그 양과 부피가 만만치 않았다. 웬만한 것들은 죄 버리거나 태우고 책처럼 무거운 물건은 한국으로 부치는 식으로 짐을 줄여가던 나는, 아직 학교에 남아 있는 인도인 친구에게 주고자 한국에서 가져온 겨울옷들을 챙겨 방을 나왔다.
 
때는 4월 말. 걸음을 옮길 때마다 풀썩 흙먼지가 일었다. 6개월째 건기가 이어지고 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어디를 둘러봐도 생기를 잃고 흐릿해진 것들이 시야를 뿌옇게 채웠다. 하늘도 땅도, 심지어는 태양도 시들시들한데 이상하게 온도만 높아 불쾌지수가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날씨가 이런데 꼭 여행을 가야 하나,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어쩔까 생각하며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구겨진 내 미간 사이로 서늘하고 축축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툭, 투둑. 그에 손을 대니 바싹 마른 내 피부 속으로 물기가 스윽 스미는 게 느껴졌다. 그건 바로 빗방울이었다.
 
나는 이 소식을 빨리 전해주고 싶은 마음에 더욱 서둘러 걸어갔다. 그러나 내가 기숙사 앞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이미 정원에 나와 춤을 추며 코앞에 다가온 우기를 경축하는 중이었다. 가늘게 떨어지던 비는 곧 그쳤고, 정작 우기는 그로부터 한 달도 더 지난 후에야 시작되었으나, 그들이 그날 보여준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비에 젖어 반짝이는 숱 많은 머리카락과, 하늘로 치켜 올린 두 팔과, 흙물로 얼룩진 맨발과 발톱까지.
 
어쩌다 우리는 경외감을 잃어버렸을까? 
 
생각해 보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덥고 건조한 날씨가 몇 개월간 계속되는 곳에선 그 해에 내리는 첫 비가 얼마나 소중할까 싶다. 막상 우기가 되면 바로 그 비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고 논밭이 휩쓸리는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는 그들이 비가 오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오래도록 살아왔고, 지금도 다수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 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짓게 되면, 잃어버린 자연과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 자야
인도에 비해 여전히 농업과 목축업에 의존하는 비율이 큰 데다, 설상가상 땅을 더욱 황폐하게 만드는 무분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는 비가 더욱 절실하다는 것을, 나는 케냐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한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마사이족 부락을 돌며 우물을 파고 학교를 짓는 등의 활동을 하는 그녀에 따르면, 우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은 물론 우기 때가 되어도 비가 전만큼 오지 않아 부락민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굳이 그녀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물 한 통 얻기 위해 먼 길을 걸어야 하고 그나마도 흙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물을 식수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관한 아픈 이야기는 수많은 언론을 통해 되풀이되는 주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앞으로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라는 것 또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을 줄 안다.
 
하지만 우리 중 대다수는 여전히 물을 물 쓰듯이 소비한다. 제아무리 가뭄이 길어져도 수도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니, 돈만 내면 가게에서 생수를 무제한으로 사다 먹을 수 있으니 경각심이 생기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시멘트를 들이부어 인위적으로 물길을 막거나 돌리는 4대강 사업을 통해 물 부족과 홍수 피해 둘 다를 잡겠다는 현 정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일까.
 
점점 예측이 불가능해지는 기후 변화 속에서 문제가 되는 게 어디 물뿐이랴. 지구온난화가 이슈로 떠오른 지는 한참 됐고, 한편에서는 머지않아 빙하기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는 과학자도 적지 않다. 봄가을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물론, 겨울은 점점 추워지고 여름은 날로 뜨거워져만 간다.
 
슈퍼컴퓨터로도 가까운 미래의 날씨조차 가늠하지 못할 만큼 뒤죽박죽 되어가고 있는데, 그럼에도 대책 없이 낙관적일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고마움도 모르고 두려움도 모르는 우리는, 어쩌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영영 잃어버린 건 아닐까?
 
조금 과장하면, 현대사회에서 자연과 우주에 경외감을 품고 살 수 있는 유일한(혹은 유력한) 길은 농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농사마저도 점차 산업화되고 기계화되면서 사정이 전과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농부는 근본적으로 땅과 하늘에 의지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땅과 하늘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만큼 땅을 공경하고 하늘 아래 고개 숙이는 법을 누구보다 쉽게 배울 수 있지 않겠는가.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고맙고 해가 나면 해가 나는 대로 고마운 만큼, 인간의 지성으로는 결코 다 알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그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눈을 키워갈 수 있지 않겠는가.
 
얌전히 감상하기엔 아까운 것들        
 
그런 점에 비추어 보면 나는 아직 농부라 하기에 자격미달이지만, 한 3년 시골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내 취향과 체질과 감정뿐 아니라 최소한 작물의 상태와 주변 환경을 조금 헤아릴 정도는 된 것 같다. 경외감까지는 아니어도 자연의 눈치를 보는 깜냥은 생겼다고 해두자.
 
아, 그리고 또 하나. 이제는 비를 맞으며 춤을 추는 것에(비록 맨발은 아니어도)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한 변화 가운데 하나라 할 만하다. K와 함께 집을 나선 아침.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로가 금세 먹색으로 젖어들 만큼 제법 굵고 촘촘한 비가 내리자 그에 흥분하여 한동안 막춤을 추어댔으니 말이다.
 
K가 받쳐주는 우산도 마다하고 양팔을 벌린 채 깨금발로 주변을 깡충깡충 뛰어다니며 나는 생각했다. 오래 전 그날, 인도 친구들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얌전하게 우산 속에서 감상하기엔 비 내리는 풍경이 너무 아까웠던 걸까. 이를 진즉 알았다면 같이 춤을 추자고 끌어들이는 그들의 손을 외면하지 않았을 텐데.
 
새삼스런 후회에도 마음은 흐뭇하기만 한 걸 보니, 아무래도 간만에 내린 비에 내가 심하게 도취된 듯. 아무려나 그날 나의 춤은 짧게 끝났지만 비는 늦도록 계속되었고, 그 덕에 나의 취기는 하루 종일 가실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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