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 남성 중심의 주류 시각으로는 놓칠 수 있는 시선을 드러내온 장애여성들의 다양한 ‘매체 읽기’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 연재가 24회를 끝으로 마무리됩니다. 함께 해주신 다섯 분의 필자들과 애독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편집자 주]
장애여성 극단에서 일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몇 번인가 퍼포머로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관객 앞에서 그다지 예쁠 것 없는 몸을 드러내고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 긴장됐다.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몸을 바라보는 것을 의식하면 할수록 마음이 움츠러들어서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애써야 했다. 그런 어느 날 남자고등학생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주제가 뭐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장애여성에 대한 이해쯤 됐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한 남학생이 “시간이 우리들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사람, 사는 속도가 남들과 다른 사람 같다”는 말을 했다. 공연의 주제에 대한 이해와는 다르지만 뭔가 또 다른 정수를 꿰뚫은 느낌이 들었다. 낯선 타인의 감수성이 나의 감수성을 이해할 때가 좋아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특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비록 이해한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
소설 <카모메 식당>에서는 영화에서 미처 못 다 보여 준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나온다. 주인공 사치에가 어떻게 핀란드에 오게 되었는지, 왜 하필이면 일본인이 아니고는 낯선 음식 오니기리(주먹 크기로 밥을 뭉쳐서 김으로 싼 일본식 주먹밥)를 파는 식당을 하게 되었는지. 그 외의 인물인 미도리와 마사코의 이야기도 좀 더 세밀하게 그려졌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치에였다. 사치에가 살아가는 독창적이고 긍정적인 의미의 자기중심적인 삶의 속도. 사치에는 어려서 소풍갈 때 아빠가 싸 준 오니기리(주먹 크기로 밥을 뭉쳐서 김으로 싼 일본식 주먹밥)와 엄마가 해 주었던 집 밥을 제일 좋아한다. 날마다 먹는 소박한 음식을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화려하게 담지 않아도 좋아. 소박해도 좋으니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만한 식당을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고 복권 당첨이라는 행운의 도움을 받아 왠지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것 같은 핀란드에서 오니기리와 시나몬롤을 만들어 파는 작은 식당을 차린다. 사회적 속도에 맞추는 삶? 남는 것은 짙은 피로감 사치에가 잘 하는 것(무술)과 좋아하는 것(요리) 중에서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았고, 좋아하는 것(핀란드에 식당을 차리는 것)을 평생 직업으로 갖기 위해 오랜 시간을 천천히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대로 달리거나 혹은 걸어온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때 고등학생의 말처럼 몸이 부자유하다는 건 속도의 문제이다. 속도는 움직임의 속도이면서 포괄적인 삶의 속도이기도 하다. 벤자민 버튼처럼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008년. 미국)은 아니지만 장애여성은 사회적 적령기를 뛰어넘어서 적령기 없이 속도를 조절하며, 혹은 조절당하며 살아야 할 때가 많다. 물론 사치에처럼 현실 속에서 누군들 자의적으로만 사는 자유가 흔하겠는 가만은. 이 사회는 비장애인의 속도 중심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그들의 속도가 정상적인 속도가 되어버렸다. 장애에 얽매인 몸의 속도는 사회와 어긋나고 몸의 속도가 어긋나니 마음의 속도가 따라서 어긋날 때가 많다. 본질적으로 다른 속도로 사는 사람들과 같은 속도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거기에 맞추려는 노력만으로도 짙은 피로감에 시달린다. 그 피로를 줄이기 위해 학생 적령기, 취업 적령기, 결혼 적령기, 부모 되기 적령기에서 놓여나 나만의 속도로 삶을 지속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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