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기반 둔 여성건강센터 있어야"

[젠더와 건강]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인터뷰(하)

박은지 | 기사입력 2012/11/08 [03:27]

"지역에 기반 둔 여성건강센터 있어야"

[젠더와 건강]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인터뷰(하)

박은지 | 입력 : 2012/11/08 [03:27]
*여성이 건강할 권리, 여성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건강’을 바라보는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일다>는 “젠더와 건강”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개척해가는 활동가, 연구자, 의료인을 만나,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필자 박은지님은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편집자 주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 편에 선 의사, 김인아
 
▲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박은지
“적성이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가게 된” 의과대학 시절, 김인아 선생님(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은 임상의사가 자신의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른 공부에 더 몰두했다. 학생회 활동에 한창이던 본과 3학년, 인생의 전환점이 될 한 노동자의 죽음을 마주한다.

 
1999년 6월 22일, 작업도중 허리를 크게 다쳐 약 4개월 동안 산재요양을 받던 이상관 씨가  자택에서 음독자살하였다. 걸을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근로복지공단측이 통원치료를 통보하자 이를 비관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당시 27살이었던 그의 자살이 산업재해 보상이 되는지를 놓고, 근로복지공단의 개혁을 요구하는 ‘故 이상관 씨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김인아 교수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당시 창원에 있던 분들이 다 서울로 올라오셨어요. 그분들과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7월 말부터 시작해서 12월까지 농성을 했죠. 그때 ‘기왕 의대에 왔으면 산업의학을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당시 농성장에 같이 있던 친구들 중에도 산업의학을 하는 친구들이 생기기도 했고요.”
 
산업의학은 직업 혹은 작업환경과 관련된 질병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현재는 ‘직업환경의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라고 하면 산재 환자를 치료해주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치료가 목적은 아니고 직업이나 환경으로 인한 건강문제를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김인아 선생님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기록해주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했다.

 
“일하다 다치고, 아프고, 힘든 노동자들의 얘기를 해줄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는데 익숙하지 않아요. 생떼 쓴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노동자니까 잘 믿지도 않죠. 저는 어쩌다보니 가방끈이 길어졌고, 그렇다면 나는 이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잘 전해주고,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삼성반도체 노동자 건강에 대한 논문을 쓸 때도 그런 생각으로 이 문제가 공식적인 문건으로, 혹은 학계에서 인정받는 무언가로 기록이 남아야 나중에라도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고, 예방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정책도 만드는데 그런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겨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소규모 사업장,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지키는 활동
 
▲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의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천의 근로자건강센터에서 환자와 상담하는 김인아 교수. ©인천근로자건강센터
현재 김인아 교수는 인천의 근로자건강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근로자건강센터는 무료진료소 비슷한 곳인데, 주로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근로자들의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센터를 운영하다보니 남성보다 여성이 많이 오는 거예요. 왜 그런가봤더니 남성노동자들은 정규직이기 때문에 시간을 빼서 나오기가 어려운 반면 여성들은 대부분 다 불안정한 일을 하잖아요. 돌봄노동, 서비스업, 파트타임 같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까 이런 분들이 오시기가 오히려 더 쉬운 거예요. 물론 전체 이용자 수는 남성이 많지만 그 공단의 절대 다수가 남성인 것에 비하면 공단에서 소위 ‘부수적’이라고 얘기되는 일들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센터에 많이 오더란 말이죠.

그래서 이것을 잘 활용하면 실업과 반실업 상태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을 돌보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김 교수는 서울시 여성건강시범사업의 일환으로 강동구에서 여성건강 지표를 개발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통계 자료를 가지고 여성건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는 팀에 있어요. 예를 들면, 서울시와 부산시, 또는 서울시와 미국의 여성건강 수준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드는 것이죠. 캐나다 같은 경우는 여성건강센터가 있으니까 이런 부분이 잘 되어있죠. 그렇게 지역사회 기반의 젠더 관점을 가진 시스템이 필요해요. 일단 여성은 여성들끼리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면도 있기 때문에, 이들이 접근하기 쉬운 사회적 체계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죠.”
 
이런 시스템을 만들자고 하면 또 '역차별'이라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하니, 김인아 교수는 “아마 그럴 것”이라면서 얘기를 이어나갔다.
 
“역차별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올 텐데 ‘그래, 역차별이다!’ 이러면 안 되나요? 하하.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뺏겠다는 것도 아니고. 큰 대형병원에 여자의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사실 여자는 여자의사 만나는 것이 좋잖아요.

저도 상담하다 보면 여성노동자분들이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처음에는 아픈 것부터 얘기를 하다 좀 길어지면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시부모 얘기까지 나오고……. 이렇게 한 인간의 건강을 구성하는 것은 뭐 어디가 부러지거나 심장에 문제가 있거나 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본인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것, 또는 내가 잘 살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환경 요인이 있어요. 이런 부분을 여성들끼리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궁극적으로 여성들이 접근할 수 있는 건강센터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죠.”

 
성별에 따라 노동도, 건강도 ‘다르게’ 접근해야
 
김인아 선생님은 여성건강센터가 필요한 이유 중 다른 하나로, 성별에 따라 직장에서 하는 일이 달라진다는 것을 꼽았다.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를 염두에 두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같은 회사에 있으면 같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로 하는 일은 완전히 달라져요. 예를 들면, 제가 두부를 만드는 공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두부를 만드는 과정은 아주 간단해요. 전자동기계에 콩과 간수를 넣으면 두부가 포장이 돼서 자동으로 나와요. 처음에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일이죠. 이곳에서 남성은 20킬로그램짜리 콩 포대를 들고 와서 기계에 쏟아 붓는 일을 해요. 간수도 붓고요. 딱 보기엔 이일이 되게 힘들고 무거워 보이죠.
 
반면 여성들은 맨 끝의 라인에서 나온 두부를 검사하고 용기에 담아요. 두부는 무게가 얼마 되지도 않잖아요. 보기에도 별로 안 어려워 보여요. 그런데 아픈 건 전부 여성들이더라고요.

왜 그럴까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고민을 해보니 알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남성은 20킬로그램짜리 포대를 하루에 열 번만 나른다고 했을 때 합하면 200킬로그램이죠. 그런데 여성은 간수 무게까지 합해진 300그램짜리 두부를 손으로 하루에 몇 백 개씩 뒤집어요. 사실 한 번에 오는 두부의 무게는 300그램 정도지만 하루 종일 다루는 무게를 합치면 엄청나죠! 그러니까 이분들이 더 아픈 거예요.

 
이런 사실을 모르면 ‘두부 검사하는 일만 하면서 뭐 그렇게 아프다 그래? 20킬로짜리 드는 쟤도 멀쩡한데.’ 이런 식이 되어버리는 거죠.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일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기관에서 여성의 건강을 관리해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성의 건강은 모자보건에만 있는게 아니다

김인아 교수는 ‘여성노동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여성’을 약간 일반명사화하는 느낌이 있어요. 여성노동자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몰라요. 여성도 밥 벌어먹고, 일하고 사는 사람이거든요. 그 일이 풀타임일 수도 있고, 파트타임일 수도 있고, 전업주부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이란 가만히 옆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제생산활동을 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여성건강’이라고 하면 맨날 임신, 출산과 관련한 모자보건 밖에는 없는 거죠. 물론 그것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애 낳는 것만이 여성의 역할이 아닌데 말이죠.
 
일을 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주면 좋겠어요. 기록되지 않는 노동들을, 그리고 그런 노동에 의해 생기는 문제들을 사회적으로 좀 더 주목해서 봐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여성의 건강은 모자보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정신과 신체, 삶의 질을 아우르는 건강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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