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재현된 '페미니스트'

<메리 포핀스>에서 <해변의 카프카>까지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9/07 [18:43]

문화 속 재현된 '페미니스트'

<메리 포핀스>에서 <해변의 카프카>까지

김윤은미 | 입력 : 2003/09/07 [18:43]
별 생각 없이 집어 든 소설에서 우연찮게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면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나는 페미니스트이다'라고 24시간 내내 선언하고 살지는 않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묘사된 부분을 읽고 있다 보면 괜히 작가가 나를 툭툭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에 어느 정도 해박한 작가가 아니고서야 소위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똑똑한 여자들'을 좋게 평가할 리 없다. 그녀들은 일단 예쁘지 않으며, 지나칠 정도로 과격하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여성들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혹은 이성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을 감춘 채 남성을 혐오하는 노처녀로 등장하기도 한다.

하찮은 것에 목숨 거는 여자들

최근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해변의 카프카>. 이 책은 하루키가 7년 만에 낸 장편소설인 만큼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가출한 15세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에서 하루키는 자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퍼즐처럼 조각조각 맞춰지는 인물들의 관계, 비현실적인 상황의 설정, 쉽게 감정이입 할 수 있는 수동적인 현대의 인간군상. 그런데 자신의 세계 속에 말끔하게 자리잡은 하루키식 인간군상들에게는 어떤 '이즘'이고 간에 곱게 보이지 않는다.

변혁운동에 대한 혐오는 경직된 '운동권' 학생들이 도서관 책임자의 연인을 프락치로 오해하고 죽였다는 설정과, 도서관을 '트집'잡는 여성단체 활동가들로 형상화된다. 여성단체 활동가들은 주인공 소년이 머무르는 도서관에 나타나 '여성적 견지에서' 도서관 공간배치 및 도서분류를 비판하며 도서관 사서에게 억지부리는 사람들이다. 그녀들은 "남성성의 비극적인 역사적 사례" "전형적인 차별주체로서의 남성적 남성" 등 페미니즘에 등장하는 관념적 단어들을 몽땅 수집한 듯한 문구들을 써댄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렇게 억지부리는 여성활동가들을 본 적이 없다. 실제 그런 여성주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같은 사람들을 골라 묘사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하루키가 정말로 그런 여성활동가들을 만난 것인지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여성활동가의 모습을 소설에 맞게 더욱 과장시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그려낸 페미니스트는 대중들이 바라보는 페미니스트의 전형 중 하나다. 일상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여성주의자들의 모습이 (남성)대중들에게 곱게 보일 리 없을 테고, 이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비판을 과장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그러는 새 편견이 생겨나는 것이다-저 여자들은, 늘 하찮은 것만 집어내서 비판한다고.

페미니스트는 겉과 속이 따로 논다?

매체 속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왜곡과 편견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서구에서는 중산층 주부들을 중심으로 동등한 투표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메리 포핀스>에서는 이 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주부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여성은 밖에서는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외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들어오면 히스테리를 부리면서 가정부를 부려먹고, 남편에게는 순종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녀가 운동에 매진하는 바람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가정교사 메리 포핀스가 오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여성상은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주장을 실제 삶과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편견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한다는 편견은 이성애 관계와 남성혐오에 대한 설정에서 확고하게 드러난다. 즉 여성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인기 없기 때문에, 남성에 대한 욕망을 감추기 위해 남성집단을 혐오하고 욕한다는 것이다.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도로시(르네 젤위거)의 언니는 '이혼한 여성들의 모임'을 꾸리는 사람이다.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남자는 다 도둑"이라고 욕을 하며, 도로시에게 제리 맥과이어(톰크루즈)를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에서 그렇게도 남성들을 욕하던 그녀들이 실은 남성들을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페미니스트라고 등장시킨 건 아닐지라도 '남성을 싫어하는 여성'을 좀더 우스꽝스럽게 그려놓은 소설이 현진건의 단편 'B사감과 러브레터'다. B사감은 여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말라비틀어진 '명태' 같이 못생긴 노처녀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여학교 학생들에게 '남자는 다 늑대'라고 참이 마르도록 설교하고, 그녀들의 연애편지를 빼앗는다. 그러나 밤만 되면 B사감은 학생들에게 온 연애편지를 자신에게 온 것으로 상상하며 역할극을 하는 가련한 여성으로 변모한다. 이 모습을 본 학생들이 혀를 끌끌 차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이렇게 되면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작품 내에서 주인공들의 연애 서사에 방해꾼 역할을 맡기 십상이다. 프랑스 작가 레몽 장의 <카페 여주인>은 아름다운 까페 여주인 아멜리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 작가에게 10만 프랑을 대가로 동침을 권유하는 편지를 받는 후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페미니스트 특공대'라는 별명을 지닌 여자 클라리스는 동침의 유혹이 '대표적인 성희롱 케이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그 제의가 성희롱일 뿐만 아니라 남자 작가가 자신의 윤리적 지적 권위를 남용하고 돈을 제시했기 때문에 '매춘'이라고 열변을 토한다. 그녀는 사건 해결을 위해 이장에게 찾아가고 성에 차지 않자 기자에게로 사건을 들고 간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행동은 주변사람들에게 '페미니스트적 괴벽'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자는 성적매력을 인정 받으면 결국 넘어온다'는 사설을 풀고 있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수다스런 푼수대기가 필요했기에 그 역할을 맡을 사람으로 페미니스트를 설정했던 것이다.

왜곡된 페미니스트 재현은 편견 재생산한다

(남성)대중 일반에게 페미니스트란 수다스럽고, 히스테리 환자 같고, 딱딱한 법전의 정의만을 들이대며 자신들을 옥 매는 여성들로 여겨진다. 또한 페미니즘은 꼬투리잡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괜히 꼬투리잡고, 남자와 연애하고 싶어서 안달 났으면서 이를 감추고 남성을 혐오하자는 사상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페미니즘을 왜곡되고 선정적으로 그려내는 경향은 때로 페미니즘을 '테러리즘'과 등치 시키는 것으로 극대화된다. 전여옥의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되라"라는 문구가 기억나시는지.

1994년 발표되어 많은 화제를 낳았던 양귀자의 대중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남성중심의 사회를 공격하는 테러리스트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강민주는 여성상담소에서 일하면서 남성들에게 당하고 사는 여성들의 상황에 격분하여, 그들의 죄를 단죄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미남스타 백승하를 납치한다. 백승하는 그 미모로 여자들을 교란시켜 남성들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백승하와 강민주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꼬여간다. 결국 강민주를 사모하던 심복 남기가 강민주를 죽임으로써, 소설은 도도한 여자에게 반한 두 남자의 사랑고백으로 끝난다. <나는 소망한다...>는 여성에 대한 일상적인 학대에 분노하여 저술했다는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뒤집어쓴 '신파소설'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비판과 지적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힘들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대중소설 등 매체에 이상한 모습으로 재현되는 건 당연한 것일는지 모른다. 마치 학생운동가들이 <개그 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서 "선생님! 이의를 제기합니다"로 그려지듯이 말이다. 매체에 등장한 '우스운 페미니스트'들을 보면 마음 한 켠에서 슬슬 짜증이 일어난다. 이상하고, 우습다는 식의 재현은 페미니즘에 대한 편견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우습게' 여겨도 괜찮다는 식의 인식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 2018년 2018/10/23 [01:39] 수정 | 삭제
  • 정작 하루키의 말이 현실화된 2018년이네요.
  • 하늘 2003/09/09 [21:12] 수정 | 삭제
  • 저것 뿐이 아니라
    하루키 소설 속의 여성들은 늘 스테레오 타입화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신비로운 분위기의 성숙한 여성과
    도발적이고 엉뚱하면서 탈일상적인 로리타 타입의 어린 여성
    둘 다 주인공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실현에 큰 도움-_-을 주곤 하죠. 쳇
    그리고 그 성적 판타지를 실현함으로써 (남성)성장 역시 가능하게 되죠.
    (여기서 성장이란 아이->어른이 아니라 미성숙하고 깨닫지 못한 인간->무언가 깨달은 인간, 정도의 의미에요.)

    개인적으로 호 불호를 나눈다면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편에 속하지만
    항상 불편해요.
    이번 해변의 카프카에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뭐 더 전형적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경쾌한 상상력은 참 좋은데.
  • 은빛비늘 2003/09/09 [13:55] 수정 | 삭제
  • 스토리 전개 상 두 남녀 주인공의 관계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그 관계를 반대하는 언니를 등장시켰겠죠. 거기까진 그렇다 치는데요. 이혼한 모임의 여성들을 등장시키고 마지막 반전처럼 그 사람들을 우습게 만든 건, 이혼한 여성들이나 여성주의자들을 물 먹이기 위한 의도였다고 생각해요. 그 영화 대 히트였는데 사람들은 그런 장면 보면서도 재밌다고만 하더군요. 너무 화가 났었어요.
  • 둘리 2003/09/08 [17:04] 수정 | 삭제
  • 그 영화 보다가 열이 받은 나머지 최진실이란 배우도 싫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들에 대한 학대에 분노해서 소설을 썼다는 것을 믿기가 힘드네요.

    격분한 여성주의자가 왜 미남스타를 납치하며,

    그 남자랑 사랑에 빠지는 건 또 뭡니까.

    전여옥의 테러리스트가 되라는 더 말이 안 되었구요.

    솔직히 책 팔려고 그런 스토리를 만들었겠죠.

    그 딴식으로 하려면, 페미니스트 등장 안 시켰으면 좋겠어요.
  • toy 2003/09/08 [00:50] 수정 | 삭제
  • 이제야 조금 기억이 날라고 하네요. 어렸을 때 메리 포핀스 재밌게 봤는데, 아이들 엄마가 웃기게 나왔죠.
    음.. 애들에게 친숙한 동화와 뮤지컬을 차용해서 여성운동에 대한 편견을 유포하다니 화가 나네요. 애들한테 보여주지 말아야 겠어요.
요가툰
메인사진
안 가본 길(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