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줌마’들의 정당 만든다

보수 우경화되는 일본 정치에 반기든 여성정당 설립운동

샤노 요코 | 기사입력 2013/02/08 [09:47]

일본 ‘아줌마’들의 정당 만든다

보수 우경화되는 일본 정치에 반기든 여성정당 설립운동

샤노 요코 | 입력 : 2013/02/08 [09:47]
지난해 12월 16일 치러진 일본총선거 결과 자민당이 집권에 성공해 극우성향의 아베 정권이 탄생했다. 이번 총선거에서 중의원 내 여성의원의 비율은 지난 선거의 11.3%에서 7.9%로 추락했다. 바꿔 말하면 중의원에서는 92%의 남성이 정치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본 정치 현실에 실망한 여성들이 “아저씨식 정치는 집어치워라!”라며 인터넷상에 ‘전일본아줌마당’을 설립하여 주목받고 있다. 아직 정당설립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현실정당은 아니지만, 앞으로 국회의원 배출을 목표로 현실정치에 적극 다가가겠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어 그 활동이 주목된다. 아줌마당이 일본사회의 폐쇄적인 공기를 깨트릴 수 있을까?
 
극우정당 약진 속에서 평화, 반핵 이슈 제기해
 
작년 가을, 인터넷상에 갑자기 등장한 정당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이름도 ‘전일본아줌마당’. 총선 과정을 지켜보며 “아저씨식 정치에는 이제 질렸다. 아줌마당이라도 만들어볼까”하고 헌법학자인 다니구치 마유미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혼잣말에 순식간에 공감의 목소리가 모이면서 창당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정치가로 갖춰야 할 경험이나 능력과 상관없이 파벌과 정당 간 야합과 술수에 의해 중요한 자리가 정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치가가 지녀할 자질을 의심할 만한 ‘실언’이 반복되고 그때마다 돌아가며 각료가 바뀐다? 이러한 ‘아저씨’식 정치에 대해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자”는 생각이 이 ‘전일본아줌마당’ 결성의 한 이유가 되었다.
 
정당의 이름에 사용된 ‘아줌마’라는 명칭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평상시 그러한 호칭에 대한 경멸에 민감했던 여성들은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몸은 남자이지만 마음은 ‘아줌마’인 사람은 어떻게 하면 되나”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한데 묶이고 싶지 않다” 등등 ‘아줌마’라는 정의 하나에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 ‘아줌마들은 항상 사탕을 물고 있고 표범무늬 옷을 좋아한다’는 일본사회가 아줌마에 대해 가진 이미지를 차용해 전일본아줌마당의 트레이드마크는 표범무늬로 결정했다. 12월 행사에서는 표범무늬옷을 전신에 걸친 다니구치 씨가 ‘아줌마 8책’을 발표했다.     © 페민

지난해 말 치러진 일본 총선에서는 일본유신회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일본유신회의 전신인 오사카유신회(大阪 維新の会)는 하시모토 토오루라는 정치인의 개인적 인기를 기반으로 출발한 보수적 색채가 짙은 오사카 지역정당이다. 하시모토 토오루는 한국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처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지명도를 높인 변호사 출신으로 보수적이고 공격적인 스타일로 정치개혁을 주장해 높은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사카유신회는 극우성향의 정치인으로 잘 알려진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 등 기성정치인을 영입해 ‘일본 유신회’로 개명한 후 전국정당화하였다. 이후 창당 석 달도 되지 않아 치러진 지난 총선에서 54석을 획득하여 명실공히 제3당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57석을 얻은 제2당 민주당과는 불과 3석 차이다.
 
오사카유신회가 지역정당일 때 중의원선거를 겨냥해 펴낸 정책공약을 이르는 ‘유신8책’은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헌법 제9조의 개헌을 결정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는데 이에 대항하여, 전일본아줌마당의 ‘당원’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아줌마 8책’의 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아줌마는 정치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일본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줌마는 자기만 행복하고 자기만 안전하고 자신만 좋은 생활은 싫습니다. 아줌마는 전 세계의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전세계아줌마당을 목표로 합니다!”
 
‘아줌마’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두지 않으며, 처음 만난 사람과도 오래 알던 사람처럼 마음을 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아줌마’로서 긍정적으로 재정의하고, 그 힘을 정치의 장에서도 살려가고자 하는 발상이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 만들겠다’
 
당원은 2013년 1월 8일 현재 1,480명. 매일같이 전 세계에서 새로운 당원이 참여하고 있다. 직업도 나이도 입장도 다양한 여성들이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과 궁금한 뉴스를 갖고 와 던지면 즉각 반응이 돌아온다. 인터넷상에서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지는 의견교환인 만큼 이따금 어긋나는 일도 있다. 그러나 대표대행을 맡은 다니구치 씨는 그것까지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고 있다.
 
남성중심의 분위기가 뿌리 깊은 지역에서 자기 생각을 펼치는 일조차 억눌려 있는 여성들의 글도 적지 않다. “여성이 말 섞을 일이 아니다”라고 여성들 자신조차 자신과 아랫세대를 억압한 결과, “중요한 일은 남편, 아들, 정치가에게 맡기면 된다”는 정치관이 몸에 배어 현재의 정치상황을 지탱해온 것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들이 제기되고 있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발언하고, 다른 의견이나 폭넓은 정보를 접함으로써 의식을 바꿔나갈 수 있는 장이었으면 합니다. 그와 함께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엘리트 여성에게는 자신들의 말이 어떻게 해야 ‘보통 아줌마’들에게 전달되는지를 시험당하는 장이기도 해요. 엘리트 여성이 이끄는 운동이 아니라, 다름을 뛰어넘는 연대를 통해 ‘아줌마’가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줌마당의 목표입니다.”라고 다니구치 씨는 말한다.
 
아줌마 특유의 ‘익살’에서 탄생한 인터넷상의 정당이지만, 오가는 이야기는 뜨겁고 노골적이다. 안심하고 발언할 수 있는 장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남성의 ‘입당’은 인정하지 않기로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이고 성정체성은 여성인 사람이 참가를 희망할 때에는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야유의 목소리도 들려오지만,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런 장이 생겨 정말 기쁘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글이 이어진다.
 
작년 11월에 오사카에서 정당의 시작을 알리는 대회가 열렸고, 올해 3월 16일에는 도쿄에서, 여름에는 동북지역에서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후 국회의원을 배출해 정식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활동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참여를 원하는 여성들의 반응은 뜨겁다. 인터넷 밖의 현실세계에서도 활동하기 시작한 아줌마당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아줌마 8책> (원문은 오사카지역 사투리로 쓰여 있습니다.)

1. 우리 아이도 남의 아이도 전쟁에는 안 내보낸다.
2. 세금은 (돈이) 있는 데서 걷어라. 그래도 잘 쓴다면 깎지는 않겠다.
3. 지진이나 쓰나미로 힘든 사람이 생활을 다시 일으키는 데 예산을 써라.
4. 훗날에도 처리 못할 핵 쓰레기는 필요 없다. 아이들에게 방사능을 뒤집어씌우고 싶지 않다.
5. 육아나 돌봄에는 함께 힘을 합쳤으면 한다. 그런 시스템, 제대로 만들어라.
6.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자리를 만들어라.
7. 힘 약한 사람, 목소리 작은 사람을 소중히 하는 사회가 좋다.
8. 아줌마의 관점을 정치에 살려라! 아줌마의 정치참여가 세계를 구한다!


※<일다>와 제휴한 일본 여성언론 <페민>의 2013년 1월 25일자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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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은 2013/02/10 [21:10] 수정 | 삭제
  • 양성관계면에서는 울 나라보다 더 여성들이 기죽어 사는 것 같은 건 내가 잘 못 알고 있는 건감? 거기서도 울 나라처럼 생물학적으로나마 여성 총리가 한 번 나와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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