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외주의 시위를 보는 재일조선인의 슬픔

한국인도, 일본인도 모두 존엄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길

김붕앙 | 기사입력 2013/05/09 [15:47]

배외주의 시위를 보는 재일조선인의 슬픔

한국인도, 일본인도 모두 존엄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길

김붕앙 | 입력 : 2013/05/09 [15:47]
필자 김붕앙씨는 재일동포 3세로, 코리아NGO센터 도쿄 사무국장입니다. 이 글은 지구촌동포연대(KIN) 홈페이지 www.kin.or.kr <동포사회는 지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재일동포 거주지에서 잇따르는 혐한(嫌韓) 시위
 
▲ 2월 24일 츠루하시에서 있었던 혐한시위에서 한 여중생이 ‘남경 대학살이 아니라 츠루하시 대학살을 실행하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유투브에 공개되어 한국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작년 여름부터 재일동포가 다수 거주하고 있는 도쿄 신주쿠 오오쿠보와 오사카의 이쿠노쿠 츠루하시 지역에서는 한국인과 재일동포에 대한 ‘증오 언설’(憎惡言說, hate speech)을 동반한 집회가 반복되고 있다.

 
올해 2월 10일과 11일, 오오쿠보에서 일어난 시위에서는 ‘좋은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 ‘당장 목매달아라, 조센진’ 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렸다. 2월 24일 츠루하시에서는 한 여중생이 ‘남경 대학살이 아니라 츠루하시 대학살을 실행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인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사람들의 언사가 너무나도 강렬하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인종주의와 배외주의(排外主義, 외국 사람이나 외국의 문화, 물건, 사상 따위를 배척하는 주의 혹은 정치이념) 행동이 한층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한(嫌韓) 시위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듣거나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러한 행동은 중국계 상점과 중국인 주민들이 많은 도쿄 이케부쿠로(池袋)에서도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범죄의 온상, 재일 특권’…지겨울 정도로 보아온 혐오
 
4월 21일 오오쿠부에서 열린 시위의 제목은 ‘일본인 차별을 없애라 in 신오오쿠보(新大久保)’이다. 국적 상으로 보면 불과 0.5% 정도를 차지하는 한국/조선적 사람들과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98%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사람들을 차별하고 있고, 일본인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날은 특정 민족을 ‘죽인다’고 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대량 학살처럼 어떤 집단의 멸종을 목적으로 한 대량 살육행위)를 뜻하는 용어는 아무래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표현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반일극좌집단은 몰살하자’라는 표현이 나왔다.
 
과연 ‘반일극좌집단’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또 ‘반일극좌집단’이라면 몰살을 시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반대가 되는 ‘친일극우집단’의 몰살은 용인되는 것인가. 이 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주체야말로 바로 그러한 집단이지 않은가.
 
▲ 2010년 12월 4일 간신바시공원을 덮친 ‘재일(조선인)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의 모임’ 멤버들 © 페민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모임_교사’ 제공
최근 신주쿠 오오쿠보에서 반복되고 있는 배외주의 시위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분노를 넘어 피로감과 허탈감을 느낀다.

 
‘재일 특권’이라든가 ‘한국인/조선인이 일본에서 범죄만 일으킨다’거나 하는 말은 이미 10년 이상 인터넷에서 지겨울 정도로 봐 왔다. 내가 이전에 활동했던 재일동포 관련 단체의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이러한 근거도 없는 추한 말들이 끈질기게 올라왔다. 그래서 정작 우리들이 만나고 싶었던 재일동포들은 홈페이지에 접속 자체를 하지 않게 돼 버렸던 아픈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보았던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하게 도시의 길거리에서 일어나게 된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재일동포들에게 평온하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올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돌아가’라는 말의 폭력성을 아는가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배외주의에 항의하는 행동도 최근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고, 그 규모는 회를 거듭할 수록 커지고 있다. 그리고 배외주의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전부터 활동해 왔던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아닌 듯하다. 현재의 배외주의 움직임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고 느껴,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결심한 사람들인 것 같다.
 
추한 배외주의에 대해 반발이 일어날 정도의 ‘건전함’이 아직 일본 사회에는 있다는 것에서 희망을 느끼게 해 준다.
 
단, 그 중에서 아무래도 위화감을 강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 배외주의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 “돌아가”라고 하는 말이다. (배외주의 반대 시위에서 사용된 플래카드 중에는 “レイシスト帰れ” 즉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돌아가라’ 같은 것이 있다.-편집자주) 바로 재일동포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싫으면 조선반도로 돌아가라’고 공격 받아온 것과 똑같은 말이다.
 
피해자에 대한 차별과 모욕의 말을 굳이 차별을 가하는 자에게 돌려주는 전법도 있을 수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이 ‘돌아가’라는 말이 정말 그 정도까지 깊은 생각을 가지고 사용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필시 재일동포가 이 말에 상처받는 가장 큰 이유는 ‘돌아갈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면서 사용되는 것에 내포된 폭력성 때문이다. 배외주의를 표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어디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일까.
 
시위대 안에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신주쿠 오오쿠보 지역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혹시 그 중에는 재일동포가 한 사람이라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이 ‘돌아가’라는 말이 맹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에 그저 한숨이 나올 뿐이다.
 
한국도 배외주의 행동이 나오지 않길 바라며
 
어떻게 해서든 일본 사회에서 배외주의 집회와 시위를 없애고 싶다. 단, 그 과정에서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과 주장을 제대로 선택해야 할 것이다. 투쟁을 고무하는 자극적인 말만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 괴롭다.
 
한국의 재외동포 입장에서 말하자면, 한국에서도 이러한 배외주의 표현이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일본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용서할 수 없는 배외주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의 추한 언사로 응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일본인을 매도하는 것에는 지지를 보낼 수 없다. 우리들의 조국은 ‘타인에 대해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제대로 보도록 노력하는 나라’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재일동포에게 가장 큰 응원이 되기 때문이다.
 
[번역: 이은영 지구촌동포연대 간사] [일본어 원문보기: www.facebook.com/1999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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