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의 이분법을 넘어선 긴 여행

<바후차라 마타> 공연을 앞두고③ 연출의 작업노트

배요섭 | 기사입력 2014/03/25 [22:01]

성(性)의 이분법을 넘어선 긴 여행

<바후차라 마타> 공연을 앞두고③ 연출의 작업노트

배요섭 | 입력 : 2014/03/25 [22:01]

 

4월 5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릴  <바후차라 마타: Beyond Binary> 시연회 사진    © 뛰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새로운 공연이 <바후차라 마타: Beyond Binary>라는 제목으로 2014년 4월 5일부터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남/녀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성(性)에 관한 가능성을 처음 엿보게 된 것이 인도 여신 바후차라 마타였다. 그렇게 인도의 신화와 서사시에서 출발한 <뛰다>의 탐구는 인도의 성소수자들, 한국의 성소수자들과 만나며 우리의 현재 이야기가 되었다.

 

<바후차라 마타: Beyond Binary>가 탄생하는 과정은 2010년 인도 공연팀과 공동 작업을 시작하게 된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성(性)에 대해 ‘다르게’ 탐색한다는 것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것과도 같았다. 이제 그 항해일지를 공유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고민과 열정이 담긴 시간들 속으로 초대하고 싶다.

 

당신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예술가들에게 묻다

 

2010년 8월. 인도에서 <하륵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인도팀으로부터 다음 공연을 공동 제작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2011년 8월. 일단, 서로의 전통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뛰다>팀이 열흘간 인도 ‘문화예술탐방’ 여행을 떠났다.

 

2012년 1월. <뛰다>와 인도 남부 퐁디체리에 있는 극단 <아디샥티>(Adishakti)의 한 달간에 걸친 창작 레지던시. 이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들의 공동체, 히즈라(Hijra). 그리고 그들이 섬기는 신 바후차라 마타(Bahuchara Mata). 이 두 단어가 나를 계속 따라다녔고, 성(性)과 관련된 질문들이 내 안에서 계속 피어나게 되었다.

 

2012년 9월. <아디샥티>와의 두 번째 창작 레지던시는 한국의 화천에서 3주간 진행했고, 전남 광주에서 발표했다.

 

▲  2012년 9월에 진행된 두 번째 창작레지던시의 결과물 <바후차라 마타: 제3의 성> 광주 공연.   © 뛰다

 

‘당신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당신 안에 남성과 여성이 어떤 비율로 들어있는가?’ 라는 질문을 레지던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작품을 만들어 내기엔 3주라는 시간은 짧았지만, 하나의 질문으로부터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경험이었다.

 

나는 이 질문이 배우의 몸을 통해 답해지기를 바랐다. 결국 누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하는 것은 몸을 통해서 드러나고 몸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나 마음도 몸을 통해서 반영된다고 믿는다.

 

그 형식이 상투적이든 전형적이든 어쨌든 남성이라는 것, 여성이라는 것은 사회 속에서 규정된 어떤 틀 안에서 정의될 수 있다. 하지만 그 틀 안에서 머무를 수 없을 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하는 새로운 질문이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발견된 불꽃이다.

 

하나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질문을 찾았고, 더 많은 의문들을 덤으로 얻게 되었다. 그 의문은 지금 현실의 존재들을 향하게 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속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 묘한 경계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사람들의 목소리. 그것들을 담아내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다음 지점이라는 것이 조금 더 명확해졌다.

 

성소수자들이 들려준 이야기

 

 2013년 8월, 인도 세 도시에서 성소수자들과 만나 인터뷰했다.  © 뛰다

2012년 12월. 이 프러덕션의 마지막 창작 단계를 준비하던 중, 예산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인도측 프로듀서인 인코센터가 다음해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일정이 미뤄지게 된 것이 차라리 우리에겐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사실 좀 더 깊은 리서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뛰다>는 3년만에 다시 공연을 통해 인도를 방문할 수 있었다. 힌두메트로플러스 연극페스티벌에 초청된 우리는 첸나이와 뱅갈로, 하이데라바드 세 도시를 다니며 공연을 했다. 그 틈틈이 인도의 성소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또 LGBT 인권센터와 상담센터 담당자들을 만나, 인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트랜스젠더, 게이, 양성애자, 코띠(인도에서 여성적인 동성애 남성을 일컫는 중 용어 중 하나), 히즈라, 레즈비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보다 그 만남 자체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그 이야기들을 이해한다기보다는, 그 물리적인 만남을 순순하게 느끼게 되었다.

 

사람과의 교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만남은 그것 자체였다. 뜨거운 눈물로, 떨리는 악수로, 따뜻한 포옹으로, 가벼운 눈인사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만남이었다.

 

리서치하는 가운데 틈틈이 우리는 2014년 공연에 참여할 인도 배우들을 만나보았다. 인도 남부 각지에서 오디션에 찾아온 80여명의 배우들, 무용수들과 함께 나흘 동안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중 8명을 다시 초청해 사흘 동안 밀도 있는 워크숍을 가졌고, 네 명의 인도배우들이 결정되었다.

 

한 줄짜리 시 “하이쿠” 장면을 만들다

 

2014년 1월 ~ 2월. 지금까지 리서치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2주 동안 사전 워크숍을 화천에서 진행했다. 지금껏 우리가 만나왔던 사람들을 배우들이 몸을 통해 살려내는 연습이었다.

 

▲  2013년 8월, 인도에서 진행된 배우 오디션     © 뛰다

 

2주 간의 사전 워크숍을 마치고 인도로 향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모은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은, 연구실에서 실험하고 분석하고 시뮬레이션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데이터를 다루는 도구가 배우들의 몸이라는 점만 달랐다.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정해진 것은 없었지만 대략적인 판들에 대한 그림은 있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신화와 과학 그리고 인터뷰이다. 이 삼각형의 구조가 어떻게 형성될지 알 수는 없다. 그저 한 단계씩 진행해가면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인터뷰한 인물들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리기로 했다. 배우들은 그 많은 인물들 중에서 한 인물을 선택해 3분~7분짜리 독백을 하나씩 만들었다. 몇일 동안 정처없이 즉흥연습을 하면서 각자의 독백이 만들어졌고, 그 독백들을 읽고 들으면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서로 나누었다. 한국어와 영어, 따밀어로 된 독백들이었다.

 

그 외의 인물들 중에서 각 배우들은 4-5명의 인물들은 더 선택하고, 그 인물들의 꼭 하고 싶은 말을 다섯 문장으로 정리했다. 그 문장들을 다듬고 걸러내어서 짧게는 한 문장, 혹은 두어 문장으로 만들었다. 이 짤막한 말들을 가지고 10초~30초 짜리 짧은 장면들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 장면을 “하이쿠 장면”이라고 이름 붙였다. 일본의 한 줄짜리 시에서 따온 말이다. 아주 짧은 말들이지만, 이 말들이 더 명확하고 진실되게 전달되기를 원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어떤 식으로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가 닿게.

 

과학자들을 등장시켜라

 

▲  ‘과학자 장면’을 연습 중인 배우들.    © 뛰다

<진화의 무지개>, <정신심리학>, <쿤달리니>, <무성애를 말하다> 등의 책을 읽으며 성(性)에 관한 과학적 논리들을 찾아갔다. 우리가 얻고 싶었던 것은 어떤 해답이나 변명이 아니라, 오히려 답할 수 없다는 자기 위안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맞는 말도 많았고, 지나친 추측이나 억지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설명함으로써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을 등장시켜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장황한 말로 설명하게 했다. 모든 것이 설명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과학적 논리 위에 존재하는 현실은 ‘옳고 그르다고 평할 수 없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장면이 그런 임무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 본 후, 다시 멀리 떨어져 보았을 때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여기까지가 인도에서 만든 장면들이다. 마지막 한 지점인 ‘신화의 틀 안에서 우린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은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채 4주 동안 계속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마지막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기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한 기운이 나를 깨울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이 여행은 첸나이에서 버스로 아홉 시간 떨어진 딴자후르라는 마을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아주 크고 오래된 절이 있다는 탄자후르, 그 마을이 고향인 배우 글래디가 우리를 안내했다.

 

무대, 의상은 인물의 영혼까지 드러내야 한다

 

무대는 그 사람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공간이다. 하나의 인물이 다른 인물로 변화하는 공간이다. 무대 위에 배우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다. 작은 거울이 있고, 분첩이 있고, 옷들이 있고, 작은 방석이 있다. 인물에서 인물로 변화하는 과정들을 드러냄으로써 몸과 몸이 담고 있는 그 영혼의 본질이 드러나길 바란다.

 

무대 디자이너는 배우 하나 하나를 위한 경대를 만들기 위해 인도의 복잡한 뒷골목을 헤매고 인도의 허름한 작업실의 목수들을 만났다. 무대에는 의자들이 놓인다. 각양각색의 이 의자들을 찾기 위해 디자이너는 첸나이 밤거리를 탐색한다. 버려진, 쓰러진 의자들을 모은다. 색을 벗겨내고, 시간을 다시 입힌다.

 

그렇게 3주간 하나씩 모아진 의자들이 극장의 똑같은 의자들 앞에 놓여진다. 똑같은 수백 개의 의자들 사이에 특이한 모양의 의자들 몇 개.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무대에 서서 이 그림을 본다면 어떨까.

 

배우들의 진실된 목소리

 

▲  배우 글래디(오른쪽)의 이야기를 무대에 들여오기로 했다.   ©뛰다

2014년 3월. 화천은 춥다. 인도 배우들에게 차가운 공기는 낯설다. 아침에 다같이 모여 울력을 한다. 겨우내 마른 풀들을 모아 태우고, 장작을 쪼개고, 연습실을 청소하고, 밥을 짓는다. 땀이 나는 것이 감사하고, 마음껏 뛸 수 있는 공간이 감사하고, 깜깜한 밤 달빛이 감사한 날들이 지나간다.

 

남은 3주간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 작품의 두 번째 파트를 완성하는 것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함께 딴자후르 여행을 했던 배우 글래디 개인의 이야기를 무대에 들여오기로 한다. 오가는 버스 안에서 나누었던 그녀의 삶에서 우리는 어떤 단서를 발견하리라 믿었다.

 

즉흥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즉흥은 그녀의 깊이 있는, 그녀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는다. 그것은 작은 목소리로도 큰 힘을 갖는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둘러싼 공간 안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움직임들을 만들어 간다.

 

이 장면이 시작되기 전, 관객은 무대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관객을 움직일 수 있을까? 나는 관객이 무대에 앉아 자신이 앉아있던 객석의 자리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들이 앉았던 의자. 똑같은 모양의 의자. 그 앞에 놓여진 각양각색의 의자. 그 그림을 배경으로 배우들의 몸에 기억된 이야기를 보게 된다. 여성과 남성이 온전히 들어있는 존재로서의 몸. 그래서 모든 가능성들이 존재하는 몸. 몸의 무한한 가능성. 우리 몸의 신성함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아직 항해 중인 지금, 우리가 어디에 가 닿을지 모른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걷기를 수 차례하고 난 뒤, 여전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을 더듬고 있다. 어느 한 순간 한 마디 말로 모든 것이 명쾌해질 수 있을까? 몸짓 하나가, 소리 한 줄기가 그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배우들의 진실된 목소리가 이런 어리석은 기대에 답해주리라 믿는다.

 

<바후차라 마타> 공연 예매 안내  http://bit.ly/1gV3l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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