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은 원전을 재가동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하지만 설령 전체 원전을 즉시 폐로 시킨다 해도, 원전에서 나온 ‘핵 쓰레기’, 즉 사용 후 핵연료는 남는다.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고레벨 폐액을 유리 고체화한 ‘고레벨 방사능 폐기물’을 캐니스터에 담아 40~50년 간 냉각시킨 후, 3백미터 이상 지하에 버리는(심지층 처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바로 그 ‘고레벨 방사능 폐기물’의 최종 처분 장소를 둘러싸고 홋카이도 북부의 마을 호로노베초가 흔들리고 있다.
핵폐기물 시설 유치에 반대하는 홋카이도 북부연락협의회의 공동대표 구세 시게츠구 씨의 기고를 싣는다.
낙농업과 핵은 공존할 수 없다
홋카이도 호로노베초(町, 일본의 지방자치단체 중 시(市)와 촌(村)의 중간 단위)는 완만한 구릉 지대에 있으며, 낙농업을 기간 산업으로 하는 인구 2천5백명 규모의 작은 마을이다. 주변 마을들도 낙농업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홋카이도 북부에 위치한 이 일대는 축복 받은 자연 환경을 활용하여 방목형, 초지형 낙농업이 발달했다.
나는 호로노베초의 옆 마을인 도요토미초에서 낙농을 경영하며 치즈와 아이스크림을 가공, 판매하고 있다. 우리 공방은 호로노베초에 있는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 처분 연구시설’로부터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직진 거리에 위치한다.
1981년에 호로노베초 의회는 원자력 관련 시설을 유치하기로 했고, 1984년에는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의 중간 저장과 처리를 위한 연구 시설을 포함해 ‘저장공학센터’를 유치하기로 결의하였다.
이후 홋카이도 도지사를 비롯한 주변의 지자체와 도민들이 핵 폐기물 관련 연구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 호로노베 문제를 둘러싼 기나긴 공방이 시작되었다.
이왕 땅을 파낸 것, 핵 처분장으로 활용하자?
홋카이도 의회의 반대 결의와 주변 지자체의 반대 결의에 따라 호로노베초 주변에는 핵 폐기물 연구시설 유치 반대 운동 포위망이 형성되었다. 고착 상태가 이어지던 가운데 다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1998년의 일이다. ‘저장공학센터’가 들어오려던 계획은 일단 백지화되었다.
이 사업의 주체인 동력로연료개발사업단(이후 일본원자력 연구개발기구로 변경됨. 이하 ‘일본원자력기구’)은 다시금 심층지 연구를 하겠다며 도와 마을에 연구 계획을 신청했다. 이 계획은 ‘핵의 반입이 없으며, 처분장화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층 처분 연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연구 기간은 20년, 연구가 끝나면 땅을 다시 메우겠다고 하였다.
호로노베초와 홋카이도청은 이 계획을 승인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핵 반입이 없다고 하지만, 이 연구는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을 파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 것, 파낸 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자”며 결국에는 핵폐기물 처분장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연구가 끝날 때까지 20년 간 장기간의 반대 운동을 이어가기로 맹세했다. (현재 13년 경과.)
최근 홋카이도신문은 5월 15일자 기사에서, 일본원자력기구의 노무라 시게오 이사가 호로노베초 의회와의 간담회에서 연구 종료 후에 갱도를 메우는 것은 “아깝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폐기물 대책없음…원전 재가동 계획은 사실상 파탄
일본은 1999년에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 처분 방법에 관한 방대한 자료(정식 명칭 “일본에서의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 지층 처분 방식의 기술적 신뢰성”. 통칭 ‘2000년 레포트’)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일본에는 넓고 안정적인 지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하 3백미터보다 깊은 곳이라면 어디든 지층 처분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는 ‘특정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하지만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후보지는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다. 고치현 도요초의 초장이 손을 들었지만, 반대하는 주민들에 의해 소환이 결의되어 선거를 진행한 바, 반대파 후보가 이겨 처분장 계획이 뒤집혔다.
핵 폐기물 최종 처분장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흔히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말하듯 원전 재가동 계획이 사실상 파탄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각 원전 부지 내에는 사용후 핵연료가 꽉 차 있는 실정이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추출한다던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의 재처리 공장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꿈의 증식로 몬주’(2011년 후쿠이현에 설치된 고속증식로)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 ‘핵연료 서클’ 역시 파탄 난 것이다.
호로노베에서 심지층 연구계획이 시작된 지 13년, 현재 7년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정되어 있던 계획의 절반 정도밖에 실행되지 않았는데 이미 예산은 고갈되었다. 실시 주체인 일본원자력기구는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대상을 늘리고자 하고 있으며, 호로노베초 역시 연구 기간의 연장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보조금’으로 처분장 유치를 유도하는 방식은 부적절
호로노베 연구의 최대 목적은 ‘단층’ 유무와 ‘수맥’ 관련 조사이지만, 현재 가로 세로 갱도를 파고 갱도가 유지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그 역시 대량의 용수와 가스가 발생하여, 대량의 시멘트와 철골로 감싸는 방법으로밖에 형상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가스를 빼내기 위해 일 년 내내 강제 환기를 시키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핵 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결정하기 위해 최초 조사가 될 문헌 조사를 몇몇 지자체에 타진하고 있는데, 호로노베초장이 의회 답변 중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실언을 한다거나(후에 철회), 호로노베초 상공회 일부가 처분장 유치를 위한 기성회의 준비 모임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신문에 보도되는 등 수상쩍은 움직임이 표면화되고 있다.
한편 2012년 9월 11일, 일본학술회의는 내각부 원자력위원회로부터 위탁 받아 지층 처분에 대한 제언을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현재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고한다, ⓶고레벨 방사성 폐기물을 천년 후 미래까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지 현재 단계에서는 예측할 수 없다, ③전원3법 교부금(전력 관련 세 가지 법률의 총칭. 이 법은 전력개발이 이루어지는 지역에 국가가 보조금을 교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에 의해 입지를 유도하는 방식은 부적절하다.
국가는 한 번 잡은 단서를 결코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이런 저런 방법으로 개입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지역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는 지속적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움직임을 감시하면서 고레벨 방사성 폐기물 처분 ‘연구소 철거’라는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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