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노동자의 지친 어깨를 ‘토닥토닥’

인천 간석동에 터 잡은 돌봄 종사자 쉼터

나랑 | 기사입력 2015/03/03 [11:24]

돌봄 노동자의 지친 어깨를 ‘토닥토닥’

인천 간석동에 터 잡은 돌봄 종사자 쉼터

나랑 | 입력 : 2015/03/03 [11:24]

“언니, 최강으로 눌렀어?”

“그럼. 우리는 여기 저기 아픈 데가 많아서 웬만큼 세게 해서는 풀어지지도 않아.”

 

요양보호사들이 어깨 마사지기와 다리 마사지기로 마사지를 하며 담소를 나눈다. 요새 돌보고 있는 이용자는 어떤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수다 떨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좀 씻기는 듯하다.

 

인천 간석동에 터 잡은 돌봄 종사자 쉼터 '토닥토닥'서 마사지를 하며 담소를 나누는 요양보호사들© 일다

 

올해 1월 30일,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동에 문을 연 이곳은 사단법인 <나눔과함께> 부설기관인 돌봄 종사자 쉼터 ‘토닥토닥’이다.

 

‘토닥토닥’은 인천여성회, 마음지기, 건강과나눔, 인천근로자건강센터, 나눔과함께 총 다섯 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개소했다. 요양보호사를 비롯한 돌봄 노동자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지원하고, 돌봄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넓히기 위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야기 나누며 마사지 하는 ‘톡톡쉼터’

 

저녁이 되자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인천모임에 소속된 요양보호사들이 하나 둘씩 ‘토닥토닥’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이날은 한 달에 한 번 정기 모임이 있는 날. ‘토닥토닥’의 건강지원사업 기획팀장인 김미애씨가 이들을 맞이한다.

 

함께 만둣국을 끓여먹고 교육장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한다. ‘올해 하고 싶은 일’을 발표하는 시간에는 “다이어트”, “성경 필사(치매 예방에 좋아서)”, “작년부터 시작한 중국어 회화 마스터”, “클라이밍 도전” 등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야무진 계획들을 내놓는다.

 

모임이 끝나자 삼삼오오 모여 마사지를 한다. 톡톡 쉼터는 이야기 ‘톡(TALK)’과 마사지 ‘톡톡’이 있는 공간이다. 안마의자, 발 마사지기, 어깨 마사지기 등 구비돼 있어 돌봄 노동자들이 동료들과 얘기하며 마사지를 할 수 있다.

 

▲  돌봄종사자 쉼터 '토닥토닥'의 톡톡쉼터에서 요양보호사들이 마사지를 하고 있다.   © 일다

 

교육장 뒤편에 마련해 놓은 짐볼과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운동을 하기도 한다. 아로마 쉼터에서는 허브찜질팩을 할 수 있고, 파라핀 왁스, 저주파 자극기 등을 이용해 간단한 물리치료도 스스로 할 수 있다.

 

요양보호사, 매일 물리치료 받아야 할 수 있는 일

 

2013년 기준으로 요양보호사는 전국적으로 26만 명에 달하며, 인천에만 1천500명이 넘는다.

 

산업안전보건공단과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이 2012년에 펴낸 <요양보호사 근골격계 질환 예방 매뉴얼 보고서>에 따르면, 시설 요양보호사(501명)의 98.9%와 재가 요양보호사(442명)의 95.3%가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용자를 직접 들거나 자세를 옮겨주기, 목욕 시켜주기 등 과도하게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하는 일은 팔이나 어깨 통증,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유발한다. 또 안마하기, 기저귀 갈기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손가락이 저려오고 주먹이 쥐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집으로 찾아가는 재가 요양보호사의 경우, 본래 업무가 아닌 집안일, 은행 업무 등을 요구 받기도 한다. 심지어 명절 음식까지 해달라고 하는 이용자도 있다. 요양기관에서는 그런 요구는 들어주지 말라고 하지만, 일을 놓치게 될까 봐 바닥 청소에 손빨래까지 해주다 보면 무릎, 손목 등이 시큰거린다.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인천모임 소속인 오 모씨(53세)는 2009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오씨는 어깨 물리치료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아파도 일을 대체할 사람이 없으니 쉴 수가 없고, 어깨 통증은 사라질 날이 없다.

 

일을 하면서 소변을 자주 참다 보니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다. “혹시 감기라도 걸려서 어르신에게 옮길까 봐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한다”고 말한다.

 

“나란 존재는 없는 거, 그게 제일 힘들어요”

 

▲  '토닥토닥'은 돌봄 종사자들이 자신의 얘길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다

고정임(48세)씨는 작년에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인천나눔돌봄센터’라는 협동조합 형식의 장기 요양기관을 만들었다. 요양보호사가 마치 가정관리사처럼 집안일까지 해야 하는 등, 불합리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요양보호사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비교적 이른 나이인 40대 초반에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한 고씨는 육체적인 힘듦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예쁘게 파마를 하고 출근을 해요. 그러면 일반직장은 동료들이 알아봐 주잖아요. 새 옷을 입었을 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재가 요양보호사들은 아침에 죽어라고 출근을 해서 문 열고 들어가면 그때부터 ‘나’는 없는 거예요. 어르신들이 며느리나 딸에 대한 욕구를 요양보호사한테 다 풀어놓으세요. 본인만 알아드려야 되고 나란 존재는 없는 거, 그게 제일 힘들더라고요.”

 

고씨는 “처음에는 서비스 정신이 앞섰는데, ‘그냥 직업’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요양보호사들이 동료들을 만나 자신의 애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양보호사는 돌봄 서비스 제공자로서 감정노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용자가 치매에 걸린 경우, 요양보호사의 사소한 감정 표현도 과장되거나 왜곡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이 올라와도 대부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용자나 이용자 가족들로부터 폭언을 듣고 폭행을 당하거나, 성폭력 피해를 입는 사례도 있다.

 

돌봄 노동자의 재충전과 힘 모으기!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전국요양보호사협회 인천모임,(2월 12일)   © 일다

‘토닥토닥’을 운영하는 주체 중 한 곳인 인천여성회는 2010년부터 ‘요양보호사의 건강권’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요양보호사 제도가 시행된 초기인 2009년 당시 여성의 새로운 일자리로 떠오르던 요양보호사 관련 사업을 기획하며, 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일을 해 보기도 했다.

 

중년 여성들이 자격증을 딸 때에는 자부심이 크고 일에 대한 의욕도 높지만, 막상 취업을 하면 이용자들로부터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열악한 노동 환경에 골병 들어가고 있는 현실을 목격했다.

 

2010년부터 요양보호사 건강지원 사업을 시작해서 작년에는 인천여성가족재단, 인천근로자건강센터와 함께 ‘근골격계질환 스트레칭 교실’과 ‘마음치유 교실’을 열었다. 그리고 그 성과가 ‘토닥토닥’ 개소로 이어진 것이다.

 

‘토닥토닥’은 올해에도 스트레칭 교실과 마음치유 교실을 진행할 계획이다. 일하면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에 대해서 교육하는 ‘찾아가는 산업안전보건 교육’도 실시한다. 돌봄 종사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수첩’도 만들 예정이다.

 

김미애 건강지원사업 기획팀장은 돌봄 노동자의 재충전과 역량 강화가 곧 돌봄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협회가 있는 줄 모르던 분이 이 공간을 통해 협회라는 곳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의 권리나 노동조건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 변화도 있을 수 있어요. 당장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일하는 분들이 마음 편하게 일하고 자주 모이다 보면 제도를 바꿀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지겠죠.”

 

‘좋은 돌봄’이 순환할 수 있게 허브 역할 하고파

 

▲  '토닥토닥'의 아로마 쉼터.   ©일다

일을 시작한 지 6년 된 베테랑 요양보호사 황순숙(63세)씨에게 ‘토닥토닥’에 대해 묻자, “몸이 찌뿌둥할 때 와서 풀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오 모씨(53세)도 “이곳에 오면 내 애로 사항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해진다”면서 자주 들를 거라고 한다.

 

고정임(48세)씨는 혼자 일하면서 대화 나눌 상대가 없는 재가 요양보호사들이 이곳에 오면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또 점심 식사를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일하다 보면 공백 시간이 있는데 요양보호사들이 갈 곳이 없어요. 오전에 4시간 일하고 오후에 또 일하러 가야 하는데 점심 먹을 곳이 마땅치 않죠. 길거리에서 드시기도 하고 역 앞에서 드시기도 하는데 여기 오셔서 드시면 좋겠어요.”

 

이곳을 이용하는 여성노동자는 요양보호사 뿐만이 아니다. 김미애 팀장은 ‘토닥토닥’이 생기면서 다양한 직종의 돌봄 노동자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공간이 갖는 힘이다.

 

원래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이상 세 개 직종을 지원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간이 생기면서 지역의 다양한 돌봄 노동자들이 찾아왔다. 김미애 팀장은 “(다른 직종의 돌봄 노동자를) 생각보다 빨리 만나게 되었다”며, “공간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현재 지역아동센터 교사들이나 청소년 지도사들이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궁리 중이다.

 

돌봄 노동자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 주는 곳, 다양한 직종의 돌봄 노동자들이 교류하며 복작거리게 될 공간, ‘토닥토닥’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어디선가 누군가를 돌보고 자기 에너지를 다 쏟아내면서 일하는 분들이 이곳에서 에너지를 채워 가면 좋겠어요. 돌봄 종사자는 누군가를 돌보고, ‘토닥토닥’은 돌봄 종사자를 돌보고, 그렇게 ‘좋은 돌봄’이 순환할 수 있게 하는 허브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김미애/ ‘토닥토닥’ 건강지원사업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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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5 [14:53]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다. 요즘 희먕적인 뉴스가 얼마나 고픈지... 토닥토닥 오래 잘되었음 좋겠다.
  • 보름 2015/03/03 [18:43] 수정 | 삭제
  • 따뜻한 공간이 생겼네요. 기사 보는 것만 해도 즐거운 맘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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