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말,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서 청소, 경비 일을 하던 스물세 명의 노동자들이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학교에서 청소, 경비 용역회사와 계약을 체결할 때, 비용 절감 차원으로 인원을 감원하겠다고 제안한 업체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노조에서 반발하자, 회사 측은 인원 감원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근로 시간을 8시간에서 5.5시간으로 줄여 사실상 임금 삭감안을 제시했다. 135만원에서 95만원으로, 약 1/4만큼 줄어든 월급은 올해 보건복지부가 정한 최저생계비 167만원(4인 기준)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는데 타격을 줄 수 있는 액수이다.
‘청소 일하는데, 해고시킬 줄은 생각도 못했죠’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에 학생들이 들어오기 한 달 전인 2014년 2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김모씨(55세)에게 청소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자녀가 셋인데다 아직 고등학생인 막내를 생각하면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학교에서 청소 일하기 전에도 일은 했었는데 짧게 몇 시간 아르바이트 하는 정도여서 퇴직금도 없고 돈도 그다지 안되니까. 형편이 좋아지면 몰라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학교에서 청소하면 고정적으로 임금도 준다고 하고, 오래 할 수 있는 데를 가자라고 생각하던 차에 구인공고가 나서 들어왔죠.”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점점 더 낮아지고 나빠지면, 노동자의 삶의 질 또한 그만큼 낮아지고 나빠진다. 부당한 임금 삭감안을 들고 온 회사 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스물 세 명의 노동자는 연세대학교 본관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그것이 4월 23일부로 100일을 넘겼다.
겨울에서 봄, 그리고 조만간 다가올 여름, 두 번이나 철이 바뀌는 동안 학교와 용역회사의 태도에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연세대학교는 학교 안에 대자보를 붙이거나 구호를 외치는 경우 1인당 1회 50만원, 천막을 치우지 않으면 하루에 100만원을 지급하게 하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 상태다.
농성 중인 청소, 경비 노동자들의 천막 바로 옆, 연세대학교 본관 앞 돌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유명한 성경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문구는 연세대의 교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천하지 않는 진리가 과연 진리일까? 용역회사의 관리 감독 책임을 지는 원청회사로서 학교가 이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하지 말고, 갑자기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과 소통을 재개하길 바라는 것은 노동자들만의 바람은 아니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부터 본관까지 걸어가는 동안 청소, 경비노동자의 농성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현수막과 대자보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람은 청소의 대상이 아닙니다” 라고 적힌 씁쓸한 현수막에 발길이 조금 더 오래 머문다.
최소한의 ‘용역근로자 보호지침’도 무색한 대학들
2012년 정부가 발표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은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간접고용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침이다. 소속되어 있는 용역회사와, 실제 파견되어 일하며 관리를 받는 원청회사라는 두 ‘갑’들 간의 계약 속에서 간접고용노동자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열악한 현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지침이다.
회사가 바뀌더라도 가급적 ‘고용 승계’는 물론 노동 조건도 기존보다 낮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 보호지침을 준수하는 공공기관과 대학교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연세대학교의 사례 외에도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불합리한 해고와 저하된 노동 조건의 문제는 지역과 공, 사립 대학교를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다.
4월 2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주최로 서울경기지부 총 15개 대학 내 간접고용노동자의 고용승계와 생활 임금 보장을 위한 집단교섭 릴레이 파업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분회 박정애 분회장은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발표되었지만 공공기관을 포함해서 이 지침을 지키는 데는 한 군데도 없다고 한다. 특히 한예종은 올해 용역 계약 맺으면서 열 명 감원시켰다. 왜 갑자기 감원하는지 물으니 ‘시중임금단가’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 이렇게 지침을 지키지 않으니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또 “같은 국립학교인 키스트처럼 시중노임단가에 준하는 시급을 준수하는 곳도 있지만 한예종을 포함해서 카이스트, 국악원에서도 시중임금단가를 지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노동권 보장 없는 ‘대학구조개혁’ 이대로 괜찮은가
이처럼 대학사회 안에서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처우가 횡행하는 데에는 지난 해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이하 대학구조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대학구조개혁이란 2023년까지 대학정원을 16만 명까지 줄이겠다는 것으로, 계획대로라면 대학별 평가 후 등급을 매겨 재정 지원을 달리할 것이고, 최하위 점수를 받은 대학은 퇴출까지 될 수 있다. 대학들은 학사 구조의 선진화, 경쟁력 강화, 재정 절감 등의 이유를 가지고 대학구조개혁에 임하고 있다.
대학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규모를 줄이거나 고용 유연성을 높이고 있다. 가장 먼저 손쉬운 것부터 풀어가려는 듯이 비정규직, 간접고용된 ‘사람’부터 바꾸고 줄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대학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본보기’로 작용될 수 있다. 학과를 통폐합하거나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간접고용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개의치 않는 계약을 용역회사와 맺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간접고용노동자의 해고와 부당 대우 문제는 대학이 용역회사를 앞세워, 스스로 손도 대지 않고 해결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이다.
한혁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서비스지부 조직국장은 “대학구조조정의 핵심은 신자유주의 맥락 하에 벌어진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나 부당 대우의 다음 타깃이 어디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교수건 청소노동자건, 대학 안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결국엔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가 직종 구분하지 않고 함께 연대해서 해결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를 비롯하여 대학 내부에서도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대학 내 공공성 회복의 차원으로서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대학생 네트워크’도 결성되었다.
대학생 네트워크의 허성실 학생은 “인구 감소로 등록금 수입이 줄어들 전망이 보이니까 대학은 수익성이 낮은 학과를 없애서 비용을 절감하고 정부도 학교에 줄 재정 지원을 아끼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엔 학생들에게 교육받을 권리를, 노동자에게 일할 권리를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또 “전국 사립대학 적립금 규모가 12조를 넘어섰다고 하는데, 대학이 자본으로 팽창하고 있지만 정작 사회적 역할 면에 있어서는 그만큼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대학구조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지고 있는 일방적인 학과(학교) 통폐합, 간접고용노동자에 대한 책임 회피와 부당 대우, 시간강사 대량해고 등의 문제는 결국 대학의 본 목적인 진리 추구,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근본마저 흔들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대학이 진정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돌이켜볼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연세대 본관 앞 천막 농성장에서 만났던 청소노동자 김모씨(55세)에게 학교에 바라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근로 조건 저하 없는 고용 승계. 다른 거 없어요. 임금을 전보다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총장님 연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 연봉 깎으라고 하면 깎으시겠어요? 아닐 거잖아요. 그런데 청소노동자들에게 이렇게까지 가혹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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