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를 하는, 그 중에서 성을 파는 사람은 젊고 화려한 20-30대 여성으로 상상된다. 하지만 성매매 현장에는 언제나 노년의 여성들이 있었다. 수십 년 세월을 “가정동네”가 아닌 “이런 거 하는 동네”에서 흘려보냈음에도, 이들의 경험은 성매매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들은 60-70대의, 성판매를 하고 있거나 쉬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을 만났다. 순자, 말자, 영자 언니는 서로 다른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고 생활해왔다. 세분께 당신들의 일과 삶, 그리고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청했고 이를 기록했다. 이 기록들이 노년의 성판매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
노년 성판매 여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
여성을 향한 성적 폭력, 성적 대상화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가부장제 역사 속에서, 여성 개인들의 삶과 성매매는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연결 지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쉽지가 않다.
순자, 말자, 영자 언니에게 있어서 성매매란, 30년 넘게 이어온 일이며 그들의 생애 전반에 촘촘히 박힌 경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은 그것이 ‘성매매’이기 때문에 긴 시간동안 자기 경험을 밖으로 말할 수 없었다. 당사자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것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데, 주변에서는 성매매에 대한 온갖 해석과 규정과 공격이 가해진다. 어쩌면 성을 파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과 낙인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개인적인 것으로 삼켜야 했는지도 모른다.
성매매를 둘러싼 개인적인 경험과 사회적인 시선의 모순을 몸으로 겪어낸 성판매 여성들에게, 성매매 경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묻는 행위는 낯설고 불쾌한 침범일 수도 있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는 이처럼 침범일 수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기록되었다. 이는 지원을 하는 자와 지원을 받는 자 사이의 관계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룸>은 인터뷰 참여자들과 ‘성매매’를 연계로 만났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성매매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었고, 이분들의 생애 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인터뷰 참여자가 허락하지 않은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으려고 했다. 또한 지원하는 자와 지원 받는 자 사이에 권력이 작동할 수 있는 이 관계를 끊임없이 인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실제로 인터뷰 참여자들과 <이룸> 활동가들이 맺고 있는 관계가 어떤 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이 기록들은 ‘성매매 피해 지원 상담소’라는 위치에 기대어 드러낼 수 있는 목소리였으며, 같은 이유로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팔자(八字)와 성매매
성매매 상담소에서 활동하며 내담자인 성판매 여성들로부터 참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바로 팔자론, 운명론이다. 영자 언니도 그렇게 말했다.
“팔자는 못 바꿔. 하느님의 하느님도 못 바꾸고 부처님의 하느님도 못 바꿔.”
이분들은 좀처럼 남 탓을 하지 않는다.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조장된 도시에 대한 열망과 이주, 자본의 이윤 착취에 소모되었던 여성노동자들의 현실, 부재한 복지 체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져야하는 책임, 아버지와 남편에게 종속된 딸과 아내로서의 삶을 전부 스스로의 욕구이자 선택이라고 말한다.
최현숙 씨가 듣고 옮긴 3인의 여성 구술생애사 책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이매진, 2013)에는 연표가 들어있다. 구술한 여성 세 분과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나란히 적은 이 연표는 개인의 삶이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의 큰 사건들과 얽혀 구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순자, 말자, 영자 언니는 서로 다르기도 비슷하기도 한 ‘욕구’를 따라 성매매집결지를 ‘선택’했다. 이분들의 욕구에 작동한 정치적인 힘은 팔자(八字) 뒤에 교묘하게 숨어서 모든 책임을 당사자 개인에게 전가한다. 그 욕구의 배경이 되는 정치적인 힘이 무엇인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어디서부터 어떤 방식으로 물어야 하는 것일까?
노년의 세 성판매 여성들은 성매매집결지를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있었으니 익숙하고 편한 곳이지만, 동시에 폭력과 억압과 불평등한 관계를 경험하게 했고 지금도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성매매는 나를 먹여살려주고 아이들을 양육하게 해준 동시에, 이곳이 아니었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폭력과 모욕을 겪게 한 일이다. 이러한 모순과 당사자의 양가감정을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이 사회가 노년의 성판매 여성들에게 부과해온 막중한 책임을 지금이라도 나누기 위한 첫 단계일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순자, 말자, 영자 언니의 생애 중에서 성매매라는 조각에 집중했다. 하지만 성매매 외에도 이분들의 생애를 구성하는 조각들은 다양하고 많다. 그것들은 성매매 경험이 있으냐 없느냐와 별개로, 2015년을 살아가는 60-70대의 빈곤한 여성들의 삶과 닮았다. 순자, 말자, 영자 언니가 부당하게 지고 있는 삶의 무게는 다른 60-70대 빈곤 여성들의 어깨 위에도 놓여 있다. 노년 성판매 여성들의 생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년, 빈곤, 아픈 몸, 여성으로서의 삶이라는 숲을 조망해보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음’을 증명해야만 하는 여성들
살면서 내 삶의 방향을 종합적으로 설정하고 계획하여 요모조모 따진 대로 살아온 사람, 그리고 그러한 결정과 선택, 혹은 떠밀림에 관하여 누구나 이해할만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유독 자신의 삶의 궤적을 납득이 되도록 설명하고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증명해내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성판매 경험이 있는 여성은 그 ‘어쩔 수 없음’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누구든, 질문을 받은 여성들은 나에게 성매매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는 것을 이 사회가 인정할 만한 논리로 답변해야만 비난받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사회가 인정하는 논리-보통 성착취의 피해자이거나 혹은 자유로운 성노동자 이미지로 대표된다-로 스스로를 증명하려 한다.
사람들은 성판매 경험자에게 묻는다. 궁금하니까, 무언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으니까 질문하는 것이지 큰 악의는 없다. 다만 질문하는 자와 답변하는 자의 위치가 고정된 채,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이 사회가 인정할 만한 선택을 해왔다는 걸 증명하도록 그렇게 관계가 설정되어 있을 뿐이다. 이 사회의 불평등한 힘이 반영된 관계다. 우리는 성판매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 속에서도 그 힘의 역학 관계를 느낀다. 이번 인터뷰도 권력이 작동하는 관계 속에 있었다.
때문에 ‘질문하기’라는 행위는 생각할수록 어렵다. 예를 들어 “왜 이 일을 선택했나요?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없나요?” 라는 질문을 보자. 다른 선택지가 있음에도 성매매를 ‘선택’한 개인의 책임과 의지를 묻는 것이다. 이런 질문은 성매매를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성판매 여성들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기 쉽다. 그러나 한편, 이런 질문을 하지 못한다면 어떤 질문이 가능할까? 하는 고민도 드는 것이다. 침묵해온 사람들에게 질문을 가리고 또 가려서 한다는 것은, 다시금 이들을 고립시키는 일의 반복이 아닐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인터뷰를 위해 힘든 고민의 과정을 거치면서도, 분명한 한 가지는 대답(증명)하는 자로 고정되어 있는 성판매 여성들의 위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판매 여성은 답하기를 거부할 수 있다. 그리고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왜 내가 당신을 설득해야 하는지 되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성매매를 둘러싼 질문과 답변, 공공의 논의는 비로소 힘의 균형을 잡고 소통 가능한 장이 열릴 수 있을 것 같다.
증명해야만 하는 자인 순자, 말자, 영자 언니는 <이룸>의 인터뷰에 참여하면서, 이 사회와 닮아있는 논리와 언어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언어의 틀 안에 갇힐 수 없는 자신들의 감정과 해석을 풀어내기도 했다. 이 기록에서 그 단서들이 적절히 드러났길 바란다.
성매매도, 전업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없는
세 분의 귀한 목소리는 현재 ‘탈성매매 지원’ 체계와 반성매매 운동이 채울 수 없는 지점, 혹은 간과하고 있는 부분들을 확인시켜주었다. 한국 사회에서 고령의 여성노동자는 최저임금을 간신히 맞춘 박봉을 받고, 쇠약한 몸에 과한 육체노동에 따른 각종 질환을 얻으며, 노동 과정에서 빈번한 성희롱과 무시, 부당 대우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성매매만 아니면 ‘괜찮은’ 일인 것처럼 전업을 권한다.
반면, 전업을 하지 않으면 성매매가 본디 갖고 있는 폭력성과 업주에 의한 착취, 구매자에 의한 폭력과 빈약한 협상력 등의 문제를 돌파할 방법 역시 변변치 않다. 이쪽도 저쪽도 좋은 선택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막막함에 압도당하지 않고 순자, 말자, 영자 언니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남겨준 생각거리들을 끈질기게 이어나가려 한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고 공유했으니, 그곳으로부터 시작되는 고민을 현장에서 풀어내는 것이 우리의 책임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독자들의 책임이 또한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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