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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남성성의 감옥을 탈출하는 법
비명에 가까운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③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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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기획단이 그동안 논의한 내용과 변화를 위한 질문과 제안을 담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섹스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어느 날 음악을 하는 친구가 홍대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보러 갔다가, 공연 끝나고 홍대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일곱 명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무성애자다. 성적 이끌림을 느끼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성욕조차 경험한 적이 없다. 또한 나는 젠더퀴어(genderqueer, 젠더를 남녀 두 개로 나누는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뜻함)지만, 지정 성별이 남성이고 사회적으로도 남자로 인식된다.

 

그 날도 무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이었다. 초면의 남자가 우리 쪽으로 오더니만 갑자기 “말을 끊어서 죄송한데 섹스를 안 좋아한다고요? 제가 돈을 내 줄 테니 저희 같이 안마방 갈래요? 섹스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 안 해봐서 그렇지…”라고 말하면서 마치 내가 웃기를 기다리는 마냥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쁜 것을 초월하는 당황스러움에 반응을 못했다. 같이 있던 친구들 사이에 성소수자가 여러 명 섞여 있었고, 그들은 정체성을 거부당하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친구들이 나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 같았다. 결국 반응할 생각조차 안 들어서 그냥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그 남자에게 화를 내면서 가라고 했다. 그는 한 마디 툭 내뱉고 갔다.

 

“고자 새끼.”

 

나는 오랫동안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이런 식의 경험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섹스를 싫어하는 남자가 어디 있어요?”라는 질문과 “고자 새끼”라는 말을 들은 것은, 단순히 내가 무성애자라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남자로 인식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없이 들었던 “고자” 소리,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놀다가 무성애자라고 이야기했을 때 못 믿겠다며 자신이 시험해보겠다고 같이 모텔을 가자고 했던 여자도 생각나면서, 단순히 무성애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성애자 “남자”여서 그렇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다.

 

성욕 과잉의 남자들

 

▶ 발렌타인 데이에 “동의하고 하는 행진.” 퀴어혁명(queer revolution) 망토를 두른 필자.  ⓒ 한국성폭력상담소

오랫동안 나는 이러한 고민을 피해갈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주위에 “일반적인” 친구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성소수자로 정체화를 한 이후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성소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들 사이에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섹스 이야기, 특히 섹스와 관련된 나를 향한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사회로 진출하면서 내 주위 사람들을 내가 선택한 사람들로만 채울 권한이 점점 없어졌다. 남성적인 성에 대한 대화에 노출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한편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서 느낀 점이 있다. 우리 남자들은 스스로 과도하게 섹슈얼리티를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스스로에게 우리가 성욕 과잉(hypersexual)이라는 것을 내부적으로도, 외부에도 교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는 항상 섹스를 좋아한다. 언제나 섹스를 원한다. 섹스가 불쾌해서도, 불편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만들어내고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적용시키고 있는 남성적 섹슈얼리티 규칙들 중 몇 개다. 이걸 이해하고 나니 그동안 겪은 많은 경험들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 시절 외국인애인을 사귀고 있을 때였다. 데이트를 하다가 어떤 선배를 길에서 만났다. 그런데 선배는 내 애인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 니 여친 몸매 죽인다. 근데 외국여자 애들, 진짜 잘 대주냐?”라고 물어보았다. 내가 안 좋은 표정을 짓자 그 선배가 내게 욕을 했던 경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술집에서 알바를 하며 보았던 손님들 생각도 났다. 회사 회식으로 온 것처럼 보이던 남자 단체손님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사람이 ‘2차로 모두 성매매 업소에 간다’고 했을 때, 불편해 보였지만 아무 말 못하고 눈치 보다가 밖에 나가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사과하던 남자도 있었다.

 

‘너도 공범이 돼줄 거지?’

 

내가 이렇게 파괴적이고 해로운 남성적 섹슈얼리티를 자각한 유일한 남자는 아닐 것이다. 아니, 나는 오히려 이러한 섹슈얼리티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늦게 깨달은 편일 것이다. 이미 많은 남자들은 이러한 잣대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불편하고, 불쾌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싫다고 말을 못하는 데에 있다.

 

홍대에서 그 남자가 나의 반응을 기다린 것도, 선배가 그 말을 하고 나서 내가 반응을 하지 않자 화내고 욕한 것도, 자신이 성폭력적인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물음으로써 나한테 “너도 공범이 돼줄 거지?”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남자들 사이의 약속으로서의 성폭력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욕설과 함께 ‘고자’라며 나를 자신들의 세계에서 퇴출시키려는 말을 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어쩌면 스스로를 방안에 가둬놓고 문을 잠그는 셈이다. 그렇기에 다른 남자들이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음담패설을 하거나 추파를 던지고 괴롭히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며, 여자에게 술을 먹여서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선배에게 “그건 강간입니다”라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동의하고 하는 행진” 행사 중에서 치마 퍼포먼스 장면.  ⓒ 한국성폭력상담소

 

남자들의 세계에서 그려지는 섹스가 아무리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워도, 불편해하거나 불쾌하지 말라는 요구. 그러한 요구는 “너도 공범이지?”를 넘어 이제는 공범이어야만 남자라는, 남자들 사이의 소속감을 강화하는 암호처럼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남자라는 위치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권력을 알고 있고 그 위치에서 박탈된 사람들이 어떻게 배제되는지 보고 자란 우리는, 이러한 요구에 “예”라고 대답하고 계속 스스로를 이렇게 폭력적인 틀에 가둬 놓는다. 우리는 수감자이자 그 수감자를 감옥에 가둬놓고 감시하는 감시자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고 있다.

 

강간에 대해 남자들이 회피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 감옥 같은 방에 탈출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굳게 잠겨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우리는 그 열린 문 밖으로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고, 그 기회는 예나 지금이나 늘 우리에게 있었다.

 

내가 언제든지 ‘우리에게 나갈 기회가 있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탈출구가 없는 방에 갇혀있는 것은 우리가 이러한 폭력적인 섹슈얼리티의 행동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고 참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의 피해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우리는 그 문을 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해서 이 책임을 받아들이고 문을 열자는 것이다.

 

그 방에서 나오기 위해서 직면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방문의 자물쇠를 열 열쇠 같은 것이다. <킹콩걸-‘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를 쓴 페미니스트 작가 비르지니 데팡트는 인터뷰 도중에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강간은 항상 여성의 주제로 다루어진다. 내가 45세인데 30년 넘게 강간에 대하여 여성들이 모이는 것을 봐왔다. 나는 지쳤다. 나는 이제 남자들이 모여서 제발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어떻게 남을 강간을 할 수 있지? 강간을 멈추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지? 이런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여자들의 힘만으로 너희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으니까. 남자들에게는 강간은 언어가 없는 칠흑 같은 어둠, 마치 밤과도 같다. 이곳에 빛을 비추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남성들은 폭력적으로 형성된 남성적 섹슈얼리티에 대한 책임감을 피하기 위해서,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회피한다. 남자가 피해자일 때, 남자가 가해자일 때, 어떠한 상황이든 우리는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남성이 가해자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모든 남자를 일반화시키지 마라, 저건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미친놈”의 얘기다 등이다. 혹은 피해자를 향해 네가 옷을 그렇게 입어서, 네가 술 취해서, 네가 먼저 유혹해서 등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이것이 남성적 섹슈얼리티에 내재된 폭력성을 회피하고 은폐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성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도 꺼려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남성일 때, 그 사실을 기존에 갖고 있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의 불을 키우기 위한 장작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하지만 남성 간 성폭력에 관련된 연구를 찾아보면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미국에서 진행된 감옥에서 일어나는 동성 간 강간에 대한 ‘Human Rights Watch’ 조사를 따르면, 가해자들은 대부분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이다. 즉, 이성애자여도 동성 사이에 권력적인 위치를 점령한 것을 강간으로 표출하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서 하지는 않는다.

 

많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스트들이 강간을 여성 이슈로 만들면서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시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일 때조차 남성들은 피해생존자의 목소리를 묵살시키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너는 노력도 안 하고 쉽게 섹스를 했는데 그게 어떻게 강간이야? 감사해야 할 일이지”에서 시작해서 “여자한테 강간당하다니 남자 맞냐?”를 넘어 “남자가 어떻게 강간을 당할 수 있냐”라는 이야기까지 자주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강간에 대한 어떠한 논의를 회피한다.

 

“남성성 김장하기”, 탈출구의 캠페인

 

우리는 남성성의 일부가 되어버린 폭력적인 섹슈얼리티에 대해 느껴온 불편함, 불쾌함, 상처, 그리고 아픔을 표현해야 한다. 그것이 탈출의 길의 첫 발자국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끼리 생긴 침묵의 약속을 깨야만 한다. 그것은 남을 위한 어떠한 희생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생존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남성성 김장하기” 간담회.   ⓒ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러기 위해서 성폭력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폭력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이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문을 여는 행위이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를 위한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는 도중에 가끔 ‘왜 무성애자가 섹스와 깊은 연관성이 있는 캠페인에 관심가지고 참여했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남자들 사이에 강간을 넘어서 남성적인 섹슈얼리티의 불편하고 불쾌하고 아픈 곳까지 모두 들쑤시는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걸어 나가는 길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새로 걸어가야 하는 길이기에, 그 문을 여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혼자서 두려워하고 망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1월 15일에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에서 “남성성 김장하기”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들을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개최한 행사죠.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후속 모임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3월 4일 금요일 오후 7시 반,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같이 폭력적인 남성성의 방에서 탈출할 길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이제 이 답답한 방의 문을 활짝 열고, 같이 걸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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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01 [09:49]  최종편집: ⓒ 일다
 
나무 16/03/01 [11:29] 수정 삭제  
  솔직한 글에 감동 받았어요~
kook 16/03/01 [21:40] 수정 삭제  
  저도 감동...반갑고 고마운 마음이네요.
이런 이야기들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예니 16/03/01 [23:06] 수정 삭제  
  고맙습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선인장 16/03/02 [03:49] 수정 삭제  
  담담한 어조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는 것 같아 잘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하는 글이었어요. 무성애자의 시선이 이렇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성욕과잉의 사회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폭력으로써 작동하는지 짚으신 것도 정말 와닿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민아 16/03/02 [10:01] 수정 삭제  
  감동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16/03/02 [16:11] 수정 삭제  
  여자들끼리 백 날 이야기 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었는데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존중과 연대의 악수를 청합니다. 홧팅!
지네 16/03/02 [18:00] 수정 삭제  
  반가워요. 솔직하게 꺼내준 이야기들 고맙게 읽었고 나누고 싶은 글입니다..
16/03/03 [17:02] 수정 삭제  
  남성분이 쓰셨다고 하는데, 일단 이 답글을 쓰는 저의 정보를 바탕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성별이나 성적 관심사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답글을 달겠습니다. 1. 단순히 무성애자가 아닌 무성애자 "남자"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무성애자 여성에 대한 경우를 확인하지 않고서 글쓴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남성"이 폭력적인 남성성을 가지고 있다 라는 얘기를 하시는건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사료됩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2. Hypersexual은 말 그대로 Hyper-Sexual입니다. 과잉성욕(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과잉성욕자' 라는 표현이 특별히 존재하고, 실제로 글에 있는 와 같은 예시는 절대로 일반적이지 않다고 사료되며, 이러한 예시의 사상을 글쓴이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남성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굉장한 오류입니다. 3.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회피한다는 얘기는 정말 살면서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대학생활이 있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MT를 간 적도 많습니다. 어떤 MT를 가서 레크리에이션 하나를 끝내고 저녁 먹기 전에 잠깐 쉴 동안 TV에서 강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야기를 거북해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 예로 든 내용 또한 저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때까지 꽤 많은 해를 살아오면서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회피를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남성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고 이것은 슬프지만 사실이라는 것은 제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제 주변만의 문제일까요? 글쓴이께서 안타까운 경험을 하셨다고 다수가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 글 전체적으로 성급하게 일반화가 된 경우가 많습니다. 글쓴이 개인의 일부 경험을 전체의 문제로 다수의 문제, 일반적인 문제로 설정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직접적/잠재적으로 받는 위협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에 대해서 많은 남성은 무관심하지 않고, 여성과 대화를 통해 이해할 생각이 존재합니다. 모든 남성들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많은 남성들은 누군가의 부인이거나 남자친구이거나 오빠/남동생 입니다. 폭력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은 눈에 띄지만, 눈에 띄는 사람만 보면서 그 사람들이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소통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이 사실을 명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6/03/03 [17:04] 수정 삭제  
  중간에 예시를 복사-붙여넣기 했는데 잘렸네요. '성욕 과잉의 남자들' 항목의 3번째 문단 첫번째 줄 작은따옴표 안의 내용입니다.
coffin 16/03/03 [19:34] 수정 삭제  
  보기드문 기사네요.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라 댓글로 남깁니다. 성교육에서 이런 내용이 논의된다면 진짜 좋을 텐데 말이죠.
ㅇㅇ 16/03/03 [22:57] 수정 삭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매년 2만 건 이상의 성폭력이 발생하며 가해자의 99%는 남자입니다. 근데 무슨 '내 주변 남자들'을 반박의 근거로 들며 일반화의 오류를 운운하네
noi 16/03/04 [04:17] 수정 삭제  
  긴글쓰신 사람도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반박으로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네요. 그것도 MT에서 있었던 단 한번의 경험을 말입니다. 의미없는 반박입니다. 경찰청이나, 통계청의 자료라도 확인해 보시죠. 술집만 가도, 폭력적인 남성들의 언사는 넘쳐납니다. 아니 술집이요? 인터넷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죠.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사료와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눈가리고 아웅해봤자, 남성들이 내보이는 성적 폭력성에 대한 문제는 길거리에 버려지는 담배꽁초만큼이나 흔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남성들이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남성성사이에서 폭력성이 암묵적으로 허용되고 있다고 해석하는것이 옳을 것 같네요. 저도 친구가 하는 성적 농담에는 불쾌하단 의미를 내비칠 수 있지만, 직장 상사가 남자끼리있으니 하는 말이라며 하는 언짢은 말들은 그냥 참아야 하거나 동조해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한알 16/03/06 [22:40] 수정 삭제  
  문을 열고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에 저도 마음이 확 열리는 기분입니다. 문을 열고 나올 결심을 하게 해주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슝슝 16/03/09 [07:20] 수정 삭제  
  목소리를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자들이 모여 '남성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들이 꾸준히 있었으면 좋겠네요.
돌돌새 16/03/09 [20:02] 수정 삭제  
  새로운 소제의 글에 감명받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 16/03/11 [00:12] 수정 삭제  
  대낮 서울 주택가 동네음식점, 여자손님들 바로 옆자리에서 음식점주인아저씨가 친구를 접대한답시고 여중생 성매매에 대해 담소(?)나누는 한국. 대낮 서울 주택가 00역 지하철 30대남자공무원 두명이 사람들 지나다니는 바로 옆에서 끽연하며 여중생 성매매를 담소(?)나누는 한국.
북유럽과 프랑스는 성매수도 가부장주의 자본주의에 의한, 갑의 을에 대한 성폭력임을 인정하고 성매수자는 범죄화 성매매자는 비범죄화했지요.

양육 돌봄노동 등을 여성들이 독박쓰는 지역일수록 남자아이들은 아버지 등의 남자가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남성의 몸으로서 어떻게 공존해야하는지 학습되지못하는 정서적 문제가 심하다고하지요. 남자아이들이 오히려 2차성징시기에 남성의 몸으로서 민망함과 열등감이 많은듯도하고요. 남중 남고를 거치며 민주주의와는 요원해지기도합니다.

가정 학교 사회가 민주적공동체로서 다양성 공존이 윈윈이라는 신뢰감을 줄때 성교육도 가능한데, MB정권이후 오히려 역행하며 온라인환경에서 국정원댓글 등 어른들에 의해 병리적 심리를 경험해버린 아이들이 심히 우려되는 요즈음(문제를 인정하고 함께 노력한다면 아이들은 회복도 빠르겠습니다만), 경험담 감사합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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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남기신 님,
이견이 아니라 같은 하늘 다른 경험으로 보이는군요.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되지않냐고 이견을 주셨던 프랑스의 비운의 왕비가 떠오르는군요.

상식적으로는 경험담을 읽으면 우선, 실제로 존재한 당사자의 고통을 어려운 고백으로서의 글을 인정해드립니다.
그 당사자와 달리 ‘나의’ 개인적 경험이 덜 고통스러웠거나 좋은 경우였다면 ‘나의’ 시야의 좁았음을, 자신은 덜 고통받고 살아왔음을 깨닫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요.
그리고 자신이 덜 고통스럽게 살수있었던 가정환경 주변환경의 어떤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가 공유할 가치가 있다면 사회적으로 공유하기위해 노력하고, 그러지못한다면 이또한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런데, 님의 댓글은 개인적인 관념적 불편함 또는 좁은 시야에 의한 방어심리로 애매하게 보여서 안타깝습니다.

위 글쓴분의 요지가, 문제의식있는 (사회적성별 남성인)글쓴이가 문제의식없는 일부(?)남성들로부터 일반화되어왔던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그리고 한국의 군국주의적 서열적 남성문화가 어떤식으로 가해자에 동조하듯 침묵이 강요되어왔는가에 대한 경험들을) 고백한 글입니다.
위 글을 쓰신 분은 성희롱 성폭력 등에 대해 문제의식이 분명하신듯합니다. 문화운동으로 치마입고 거리행진도 하시고 경험담도 공유하시고 '다양성을 인정못하고 강제적으로 일반화해버리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실천하고계시니까요.
즉, 일반화에 대한 억울함에 있어 글쓰신분이 이견님보다는 훨씬더 일가견있으실거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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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남기신 님,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잠입수사하는 성범죄자 유형이 사회적으로 명망있게 이중생활하는 유형입니다.
(미국은 원래 동물학대를 중범죄로 다뤄왔는데, 최근엔 동물학대와 사람 대상 범죄의 연관성을 통계화, 동물학대자의 차후 사람 대상 잠재적 범죄 차단을 목표로 체계화한다고 국내방송에도 보도됐었지요.)

한국은 여전히 (다시금?) 전체주의적이고,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보고(외국남성과 결혼한 자국여성들이 공무원에게 민원을 넣으면 자국여성들에게 “남편나라로 가시오~”라고 하는건 방송에서도 여러번 언급됐었지요.) 남성의 아내 여친에 대한 (성)폭력에 대개 침묵하는게 사실입니다. 민주주의국가들과 달리 가정(성)폭력을 이웃들이 뻔히 알고도 신고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리고 극소수의 남성들이) 성추행(미수) 성폭력(미수)에 피해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상습적인 성추행성폭력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가정 동네 학교 일터에서 일상적으로 지속됩니다.
이견님 이견처럼 성폭력에 대해 이 사회가 침묵하지 않는다면, 가족 친척 동네오빠아저씨 동급생 선후배 교사 교수 의사 경찰 판검사 국회의원 등에 의한 성추행 성폭력 사건들의 신고율과 기소율이 90%는 되겠지요. 한국은 신고율 기소율 낮은 인권후진국입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낮은 군대 내 피해여군 성추행 성폭력사건 기소율은 MB정권이후 하락하다 현정권이후 기소율 0%가 되었다고 보도도 많이 됐습니다.

즉, 그나마 신고해도 예전에는 경찰이 접수를 안했고, 지금도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있는 남자가 이유없이 그랬을까” “명망있는 인사인데 법정까지 갈거냐, 나중에 어쩔꺼냐”며 검사가 피해자를 회유하며 기소를 잘안해주는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겪은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 오히려 가해자에게 동조하듯 사건을 왜곡 축소하는 공권력과 사회의시선이 피해자들을 침묵시키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하고 아이들성교육 남성문화 대중심리 등에 병리적 영향을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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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남시긴 님,
특정 단어를 검색하다 특정기사 하나만 보고 들어와서 댓글 다는 분들 중에는 타인의 고통스러운 경험담과 용기있는 시도를 되려 부인하며 방어심리로 일관하는 분들 계시더군요. 이런분들도 각각의 트라우마가 있으실겁니다.
용기내셔서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고 표현해보는쪽으로 방향을 바꿔보시길바랍니다. ‘일다’ 등의 독립언론의 글들을 꾸준히 읽어보시는것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나의 진짜 이야기'를 말하는 용기를 내는데 도움되실겁니다.
행인1 16/03/27 [03:20] 수정 삭제  
  좋네요 글. 정말 좋은 글입니다.
17/10/02 [14:06] 수정 삭제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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