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인식을 바꾸면 일자리가 창출된다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핸디커넥트

구수정 | 기사입력 2016/04/17 [12:18]

‘장애’ 인식을 바꾸면 일자리가 창출된다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핸디커넥트

구수정 | 입력 : 2016/04/17 [12:18]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핸디커넥트(HandiConnect) 

 

2014년 12월에 창립된 <핸디커넥트>는 베트남 장애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뉴질랜드에 수출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의 베트남 유학생들이 하노이와 후에의 장애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자원봉사에서 시작된 <핸디커넥트>는 그 수익금으로 장학사업 등 베트남 장애인 공동체를 지원한다. 뉴질랜드 각 대학의 건물을 담은 고급 입체카드 등의 상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으며 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안경, 이동 보조기구, 자세 유지기구 등 첨단 보조기구 개발과 판매도 추진 중이다.

 

가내수공업으로 불공정 임금에 저항한 여학생

 

호찌민시의 한 커피숍에서 열린 베트남 사회적기업인 모임. “저희 아직 살아있습니다!”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자기 소개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 한 여성이 불쑥 손을 들었다. “늦어서 죄송하지만 이 자리에서 꼭 핸디커넥트를 소개하고 싶어서요.” 근사한 입체카드를 펼쳐 든 그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신감 넘치고 생기발랄한 브리핑에 모두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려 들었다.

 

▶ <핸디커넥트> 사장 응우옌 티 껌 번(26세). 뉴질랜드 대학 캠퍼스를 담은 입체카드를 소개하고 있다.  ⓒ 아맙

 

이 사회적 기업가는 “시간 관계상 자기 소개를 1분으로 제한했는데 벌써 10분을 넘고 있네요”라며 사회자가 웃으며 말을 자르자, 그제야 벌개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열정적이면서도 순수한 그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던지, 모임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맙>도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신청했다.

 

스물 여섯의 나이로 <핸디커넥트>를 이끌고 있는 청년사업가 응우예 티 껌 번의 이야기 속에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굵직굵직한 삶의 역경과 도전이 담겨 있었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두 번째 만남이네요. 지난번 사회적 기업인 모임 때 입체카드를 들고 열정적으로 <핸디커넥트>를 소개하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도 벌떼 같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뚫고 달려가 명함을 드렸지요. (웃음)

 

응우옌 티 껌 번(핸디커넥트 사장. 이하 ‘번’): 그때 제 소개가 좀 길었죠? (웃음) 사회적 기업인 모임에는 처음 참석했어요. 실은 많이 낯설고 떨렸는데 <핸디커넥트>를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과욕을 부렸네요. 그런 제 모습조차 예쁘게 봐 주시니 정말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수정: 신문 기사를 보니 <핸디커넥트> 이전에도 농촌여성 공동체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있더군요.

 

번: 어머니가 의사였는데요, 후에의 농촌여성들과 함께 가내수공업을 시작하셨어요. 저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는데, 커튼이나 테이블보 같은 걸 주로 만들었죠. 당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시간 당 7천동(한화 약 4백원)에 불과했어요. 아무리 제 고향이 농촌이라고 해도, 여성들이 하는 세밀한 바느질 작업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이었죠. 게다가 노동 강도는 또 아주 높았고요.

 

저는 어머니와 같이 일하는 10여 명의 여성들과 함께 크로셰(Crochet, 코바늘 뜨개질)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장신구나 액세서리에 자수를 넣거나 레이스를 다는 방식의 수공예품을 만들었죠. 바느질 경력 10년 이상의 이 여성들은 솜씨가 워낙 뛰어나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적정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됐죠. 저의 크로셰 프로젝트는 2011년 베트남 청년기업가 창업캠프에서 2등상을 수상하면서 신문에 보도되기도 했어요.

 

‘청년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없다?

 

수정: 예전부터 장애인이나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관심이 있었나요?

번: 2012년에 유엔인구기금(UNFPA) 초청으로 하노이에서 열린 국제포럼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베트남의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했는데, 특히 청년 문제가 핵심 주제였습니다. 베트남의 교육부장관, 환경부장관을 비롯해 각 부처 고위공무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청년 장애인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궁금합니다”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그런데 “청년 장애인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특별한 정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답변하더군요. 너무 실망한 저는 농촌여성들과 함께 사업했던 것처럼 언젠가 청년 장애인들과도 함께 일해보겠다는 뜻을 품게 되었어요.

 

▶ 뉴질랜드 곳곳에서 열리는 바자회에서 베트남 유학생들의 자원봉사로 판매되는 <핸디커넥트> 상품들  ⓒ 아맙

 

베트남 사람들은 손재주가 뛰어나 기술을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요. 장애인들도 여건만 된다면,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한번은 미국의 독립기념관을 탐방한 적이 있는데요, 휠체어 탄 장애인이 자신과 똑같이 휠체어 탄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있더라고요. 저에겐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교육을 비롯한 환경을 개선하면, 베트남에서도 장애인 일자리 창출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수정: <핸디커넥트>는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번: 뉴질랜드의 오타고 대학에서 공부할 때 처음으로 공정무역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제 3세계에서 생산된 커피와 차를 비롯해 각종 수공예품이 공정무역을 통해 판매되고 있었는데, 베트남 상품은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 고향인 후에와 하노이에 있는 장애인직업교육센터와 연결해 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가져와 베트남 유학생들이 뉴질랜드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원활동을 조직했죠. 저와 친구들은 주말 장터나 바자회 등을 찾아다니며 열쇠고리, 인형, 기념카드 등을 판매했는데 뉴질랜드 사람들의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들은 특히 입체카드를 좋아했죠.

 

저희는 오코타 대학에서 열린 창업경연대회 ‘어데이셔스’(Audacious, 대담한)에 출전하기도 했어요. 40개 팀이 경쟁하는 본선에 올랐는데, 우수 프로젝트 팀 15위에 선정되어 상금 5천 달러와 함께 뉴질랜드의 한 우수 기업에게 3개월간 무료 자문을 받는 지원도 받았고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그동안 아껴둔 장학금으로 호찌민시에 <핸디커넥트>를 창립해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습니다.

 

베트남과 뉴질랜드, 사람과 사람을 잇다

 

수정: 유학생들의 자원봉사 활동이 국경을 넘나드는 사업으로 발전한 거군요? <핸디커넥트>의 사업에도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을 것 같네요.

 

번: 네, 우선 뉴질랜드에 있는 베트남 유학생들의 헌신이 있었어요. 그들은 지금도 베트남과 뉴질랜드를 오갈 때 자신의 수화물을 줄이고 대신 수공예품을 운반하는 방식으로 <핸디커넥트>의 운송비를 절감해주고 있죠. 또 하노이, 호찌민시, 후에에 있는 대학생들이 제품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뉴질랜드 사람들 도움이 컸어요. ‘베트남의 장애인들이 만든 상품이며 수익금을 환원해 그들의 삶을 지원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뉴질랜드인들은 너도나도 지갑을 열어 제품을 구매해 주었거든요. 처음 <핸디커넥트>을 창업했을 때 예상보다 너무 빨리 물건이 동이 나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는 뉴질랜드에서 22개 기념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리차드 톰슨이란 분의 도움으로 사업이 탄력을 받았어요. 그분의 지원으로 상품 판매가 원활해졌고 <핸디컨넥트>의 홍보와 상표 개발, 상품 포장에 대해서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베트남의 <하노이 창조적기업인 클럽>에서 포장 디자인을 개선할 수 있게 지원해주기도 했고요.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의 <핸디컨넥트>가 있게 된 거죠.

 

▶ 뉴질랜드 언론에 소개된 <핸디커넥트> (HandiConnect)  ⓒ 아맙

 

수정: 베트남 곳곳에는 여행자들의 눈길을 끄는 기념카드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핸디커넥트>의 입체카드는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개성이 있더군요.

 

번: ‘여행자 거리’를 걷다 보면 기념카드를 파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죠. 요즘엔 아오자이를 입은 베트남 여성, 시클로 운전사, 노틀담 성당, 벤탄 시장 등의 모형이 담겨 있는 입체카드가 유행입니다. 처음엔 저희도 그런 류의 입체카드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뉴질랜드 대학교 건물을 담은 고급 입체카드를 생산해 판매하고 있어요. 학생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다닌 대학 캠퍼스를 담은 기념품 하나 정도는 간직하고 싶지 않겠어요? 베트남과 달리 뉴질랜드는 건물에 대한 저작권이 존재해서, 저희는 저작권을 확보해 다양한 종류의 입체카드를 만들고 있죠. 앞으로 세계의 대학캠퍼스를 담은 카드를 만들어 수출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입체카드에서 전문 기술이 요구되는 부분은 외주를 주고요, 단순 공정만 별도로 장애인들에게 맡겨 제작하고 있는데요. 다른 곳에서는 아주 간단한 공정의 경우 카드 한 장 당 5백동(한화 약 25원)을 주지만, 저희는 그 두 배인 1천동을 지불합니다. 까다로운 디자인의 경우에는 2천~2천5백동을 주지요. 매번 느끼는 거지만 장애인들은 책임감이 투철하고 정말 열심히 작업합니다. 그분들의 열정에 부응할 수 있도록, 보다 나은 노동 조건과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장애인 보조기구의 가격혁명, 대중화 꿈꾸며

 

수정: 기념카드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금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요?

번: 수익금은 후에와 하노이에 있는 장애인직업교육센터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나머지는 현재 개발하고 있는 핸디글래스(Handiglass) 사업에 투자합니다. 최근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스마트 안경이 출시되고 있는데요, 저희가 개발 중인 핸디글래스는 지체장애인을 위한 스마트 안경이라 할 수 있어요. 눈동자 움직임을 읽어 컴퓨터에 신호를 보내 마우스 기능을 대신합니다. 눈을 깜빡이면 아이콘을 클릭할 수 있죠. 고개를 끄덕이면 실내 조명을 켜고 끌 수도 있습니다. 약 10억 동(한화 약 5천1백만 원) 규모의 프로젝트인데요, 예산의 70%는 핀란드 정부로부터 지원받았고 나머지는 <핸디컨넥트>의 카드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 호찌민시 장애인 지원단체 아름다운 인생(DRD)을 방문해 <핸디커넥트> 이야기를 소개하는 번 씨   ⓒ아맙

 

수정: 핸디글래스 사업과 같은 미래 지향적 사업 아이템이 더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번: <핸디커넥트>는 장기적으로 장애인 보조기구 개발, 판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미국에 있는 비영리단체 D-Rev(Design Revolution)를 벤치마킹하고 있어요. 하루 4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을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곳인데,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구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요. 장애인들을 위한 전자 팔‧발‧손 등의 인공사지는 수천 달러에 달해서 정작 장애인들은 구매하기 어려운데요. 이곳은 80달러에 불과한, 저렴하면서도 성능 좋은 인공사지를 판매해요.

 

그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 그리고 전문가들의 지원과 협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죠. <핸디컨넥트>도 <D-Rev>처럼 자세 교정이나 식사 등 장애인의 일상 생활을 보조하는 기구를 개발, 판매하고 싶어요. 간단한 보조 기구 하나만 있어도 지체장애인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고 일어나 걸을 수도 있는데, 가격이 비싸서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예전엔 스마트폰이 천 달러 넘기도 했지만 지금은 백 달러짜리 저렴한 보급형 스마트폰도 많잖아요. 이처럼 장애인 보조기구의 가격 혁명, 대중화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수정: 베트남 사회적 기업 가운데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기업들이 많은데요. <핸디컨넥트>가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의 모델이 있다면요?

 

번: 최근 하노이나 호찌민시에 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교실을 열어 IT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늘고 있는데, 교육이 끝난 후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들의 자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지요. 얼마 전 장애인 미용사 탄 씨를 알게 되었어요.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 미용사들을 양성하고 계시더군요. 장애인이 서로 돕고 의지하는 공동체 모델을 보면서 다양한 방식의 장애인 지원사업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기업 이름을 장애(handicap), 수공예품(handicraft), 연대(connection)를 조합해 핸디컨넥트라고 지었는데요, 그 이름처럼 연대의 힘으로 장애인들이 스스로 행복을 일구어 나가는 공동체를 꾸리고 싶습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아맙> 카페: 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베트남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